‘혈세 1500억 투입’ 법난기념관 논란 “애초 계획부터 잘못됐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11.30 09:59
  • 호수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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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예산만 확보하고 토지매입 못해…정부·국회, 불교계 눈치 보며 쉬쉬

혈세 1500억원가량이 투입되는 ‘10·27 법난기념관’ 건립 사업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계획 때부터 적절성 논란이 일었던 데다 사업이 2년째 표류하고 있는데도 예산만 확보해 놓는 실정이다. 정부는 책정해 놓은 예산 대부분이 ‘불용’ 상태로 남아 있는데도 또다시 신규 예산을 편성했다. 국회에서 예산을 심사 중인 정치권 또한 불교계의 눈치만 보면서 ‘쉬쉬’하는 모양새다.

 

10·27 법난이란 1980년 10월 신군부가 ‘불교계 정화’라는 명분으로 승려와 불교계 관계자를 강제로 연행·수사하고, 전국의 사찰 및 암자 등을 수색한 사건이다. 이에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며 지난 2008년 10·27 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특별법)을 제정했다. 특별법에는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기념관 건립이 명시됐다. 하지만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 인근으로 사업 부지가 변경되면서 사업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때문에 사업 초기부터 여타 사업 예산과 비교되면서 종교계 편향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성역화 불사 조감도 © 뉴시스

땅값만 760억원, 유례없는 지원

 

10·27 법난기념관 건립을 위한 총 사업비는 1670억원이다. 이 중 90%인 1513억원을 정부가 지원하고, 조계종이 157억여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특별법에 따라 진행되는 사업이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데도 불구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도 거치지 않았다.

 

때문에 사업 초기부터 논란이 불거졌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면서 예산 낭비 사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세금을 쏟아 붓게 된 배경에는 기념관 위치의 영향이 크다. 기념관이 세워지는 조계사 일원은 서울 중심부에 있다. 토지 매입을 위한 용지보상비가 막대할 수밖에 없다. 전체 예산 1670억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60억원이 기념관 부지매입 비용으로 배정됐다. 당초 기념관 부지로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인근을 검토했으나 상징성 등을 이유로 조계사 인근으로 부지를 확정했다. 이로 인해 예산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심지어 정부가 혈세로 조계종에 땅을 사준다는 비판도 제기됐었다. 기념관이 완공되면 건물과 토지가 조계사에 귀속되도록 돼 있었다. 논란이 일자 정부는 민간보조 사업에 토지매입비를 지원해 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입장을 선회했다. 예산을 편성하면서도 이 문제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가, 토지는 국가 소유로 하되 기념관은 조계종 소유로 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소유권 논란이 일단락됐다.

 

물론 과거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과거사 관련 여타 기념관 사업과 예산 규모 면에서 차이가 크다. 2015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에 따르면, 2004년 건립된 거창사건 추모공원의 경우 사업비로 총 192억8200만원이 투입됐다. 1999년 건립된 민주항쟁기념관은 160억원,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은 국비 383억원이 책정됐다. 2008년 세워진 제주 4·3평화공원도 국비 592억원이 투입됐다. 수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4·3사건 추모사업 예산보다 2배가량 많은 셈이다.

 

종교계 편향 논란도 제기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독교·불교·천주교 등 종교문화시설 건립에 책정된 예산은 총 329억5000만원이다. 이 가운데 법난기념관 건립 지원금으로 60.7%인 200억원이 책정됐다. 올해는 전체 예산 709억여원 가운데 632억9200만원이 기념관 건립 지원에 배정됐다. 90% 수준이다.

 

ⓒ 시사저널


어떻게 이 같은 일이 진행됐을까. 이유는 건립 사업을 주도한 ‘10·27 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의 구성에서 찾을 수 있다. 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위원회의 위원은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者)와 관계 공무원 중에서 국무총리가 위촉 또는 임명’하도록 규정돼 있다. 위원장을 포함한 11인 이내의 위원 가운데 차관급 정부위원 4명과 민간위원 7명으로 구성되도록 짜여 있었다. 2008년 위원회 구성에 대한 협의에서 조계종은 민간위원 7명을 전원 불교계에서 추천했다. 협의 과정에서 예비역 장성 1인을 포함하고 일부 인사를 교체하긴 했지만 사실상 불교계 인사를 대부분 포진시켰다. 불교계가 자신들의 명예 회복 방안을 설계하고 강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셈이다.

 

 

토지매입 사실상 0%…실현 가능성도 떨어져

 

사업계획 단계에서부터 잡음이 많았던 10·27 법난기념관 건립 사업은 2015년 예산이 확보되면서 탄력을 받게 된다. 예산 심사 과정에서 조계종 관계자들이 정부 관계자와 국회의원들을 압박하면서 2015년부터 예산이 포함됐다. 10·27 법난기념관 건립지원을 위해 책정된 예산액은 지난해와 올해 총 833여억원. 지난해엔 200억원, 올해는 632억9200만원을 배정했다. 2017년도 예산안에는 228억원이 새롭게 포함됐다.

 

하지만 예산은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2015년 집행액은 14억8500만원에 불과했다. 올해는 8월말까지 한 푼도 집행되지 않았다. 지난해와 올해 예산(833억원) 가운데 1.8% 정도만 집행된 셈이다. 800억원 이상의 예산이 창고에 쌓여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새롭게 예산을 추가 편성했다.

 

예산 집행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부지매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법난기념관은 크게 2개 동으로 세워질 예정인데, 이 가운데 1동 예정지 중 사유지가 75.5%, 서울시 땅이 7%이다. 2동 예정지는 100% 사유지다. 일부 땅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의로 된 곳도 있다. 조계종 측은 매입이 필요한 21필지 가운데 현재 2필지만 확보한 상태다. 그나마도 계약만 진행하고 기부채납 절차 등이 남아 등기상 소유권 이전조차 완료되지 못한 상황이다.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된 지 2년 가까이 흘렀지만 토지매입은 10%도 이뤄지지 못한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매입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배정된 예산으로는 공시지가의 2배 정도 이내에서 매입이 가능한데 실제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근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시세가 평당 7000만~8000만원인데 조계종 측에서 5000만원도 안 주려고 한다고 들었다”며 “나 같아도 안 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부지의 한 상가 주인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현재 시세는 공시지가의 5배를 웃돈다. 서울 도심이라는 점과 개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시세다. 하지만 위원회에서 의뢰해 진행된 KDI 적정성 검사에서는 공시지가의 2.5배 정도를 기준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이 때문에 조계종에서 요구하는 금액에 땅을 넘기면 비슷한 규모로 근처에서 장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건물주의 입장이다. 반면 조계종 측에선 부지매입과 관련해 파는 사람들이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요구해 협상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통상적으로 예산 집행 실적이 저조하면 신규 예산 편성이 쉽지 않다. 국회 또한 10·27 법난기념관 설립 예산의 문제를 이미 알고 있다. 예결위는 올해 심사보고서를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종교문화시설 건립 사업의 저조한 집행률을 지적했다. 문체부에 ‘종교문화시설 건립’에 대한 집행관리가 미비한 점이 있다고 판단해 ‘주의’ 조치를 내렸다. 법난기념관 추진이 부지매입에서 막히면서 현재 예산집행이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예결위는 “문체부는 종교문화시설 건립 사업계획의 집행 가능성 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는 등 집행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2015년 7월2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를 찾아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종교계 눈치에 올해 예산도 ‘프리패스’

 

올해 예산 심사 과정에서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유사한 지적이 이어졌다. 교문위는 예비심사보고서에서 “사업주체와 토지소유주 간의 매입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인, 향후 전망 등과 관련한 당사자의 의견과 예산 세후항목 중 공사비는 토지매입이 돼야 집행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토지매입비·공사비 등의 예산규모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예산안도 정부 원안대로 228억원이 그대로 반영됐다. 담당 상임위의 감액 의견에도 예결위 논의 과정에서 또다시 예산이 배정됐다. 예결위 논의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오제세 의원은 집행률 저조를 이유로 감액 의견을 제시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돈 하나도 못 쓰는데 그냥 계속 추진할 계획인가”라며 “(예산을) 좀 줄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정관주 문체부 제1차관은 “종교계인 조계종하고 약속된 사업”이라며 “쌍방 간에 예산 현황을 맞춰 매년 지급해야 할 액수를 약속해 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 차관은 다만 “향후 2018년까지 만약에 기념관 건립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라면 조계종과 협의해서 건립 계획을 수정·보완할 예정”이라며 “정부 원안대로 (예산안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법난기념관은 불교계의 ‘역린’과도 같은 사업”이라며 “통상적으로 벌써 좌초됐어야 할 사업이지만 종교계 눈치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불교계의 역린’ 10·27 법난은…

“참으로 참담했다. 이미 많은 스님들이 도착해 있었다. 옷을 늦게 갈아입는 스님에게 그들은 발길질과 쇠몽둥이질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퍽퍽 내려치는 소리와 고통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떤 스님은 벌써 얼굴에 피멍이 들었고 어떤 스님은 고통스럽게 가슴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그들은 나를 의자에 거꾸로 세워 콧구멍에 수건을 씌우고 고춧가루를 퍼넣고 거기다 양동이의 물을 들이부었다. 이름하여 고춧가루 물고문. 다짜고짜 고문을 강행하면서 나에게 몇 차례나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계속 잠을 재우지 않고 눈에 서치라이트를 비추면서 고문을 가하면 정신이 몽롱해져 사뭇 헛소리를 했다.”(월정사 원행스님)

1980년 10월27일 새벽, 신군부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합동수사단은 조계종 총무원을 비롯한 전국 사찰을 급습했다. 다음 날 계엄사령부는 ‘사이비 승려 및 불교계 내 폭력배 소탕에 관한 발표문’을 언론을 통해 내보낸 뒤 전국에 ‘도피자 은신 예상처 수색지시’ 명령을 하달했다. 10월30일 오전 6시, 포고령 위반 수배자 및 대공(對共)용의자를 검거한다는 명목으로 전국 사찰 3733곳과 암자 1607곳 등을 일제히 수색했다. 당시 동원된 군·경 합동 병력만 3만2076명에 달했다.

당시 총무원장인 월주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인사 1776명이 검거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강제 연행된 뒤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실제 불교계 수배자는 단 1명에 불과했고, 1499명은 훈방조치 됐다.

곧바로 불교계는 저항했다. 11월22일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와 12개 대학은 ‘10·27 불교계 탄압사건’을 ‘법난’으로 규정하고, 전두환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최초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1984년 10월27일에는 조계사에 15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여 ‘법난 규탄 및 규명대회’를 개최했고, 이때부터 각종 불교단체에서 법난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1986년 9월7일 열린 전국승려대회(왼쪽사진), 1988년 10월27일 10·27 법난 진상규명을 위한 불교도 실천대회(오른쪽사진) © 10·27법난피해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제공

1988년 8년 만에 최초로 사과 담화문이 발표됐다. 강영훈 당시 국무총리는 “비상계엄하에서 있었던 불교계 수사로 말미암아 불교도 여러분 및 불교의 자존에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됐던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과잉수사로 인해 귀중한 개인의 인권과 신성한 교권이 침해되고 불교계의 명예와 권익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힌 결과를 초래하게 된 데 대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9년 5공특위 청문회에서 당시 사회정화 조치가 특정 종교에 대한 탄압으로 비친 점을 사과하면서 집행기관을 세심하게 챙기지 못해 죄송하다는 면피성 발언을 했다.

10·27 법난의 진상규명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노무현 정부 때다. 참여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뤄지도록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착수했다.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5년 조사 대상에 10·27 법난 사건을 포함했다. 조사 결과 “특정 종단에 사법적 잣대를 무리하게 적용한 국가권력 남용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인정됐다. 그러면서 명예회복과 피해회복 방안에 대해 조계종 측과 협의를 통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했다. 이후 2007년 여야에서 발의된 10·27 법난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특별법이 2008년 공포됐다.

특별법에는 명예회복에 관한 사항으로 ‘기념관 건립’을 명시했다. 피해자 개인에 대한 배·보상을 규정하지 않아 불교계의 명예를 회복시켜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여겨졌다. 2009년 5월 강원도 양양 낙산사 인근에 건립 부지를 선정하려고 했다가, 법난이 발생한 상징적 장소인 서울 조계사 일원으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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