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대표한다"던 트럼프, '슈퍼리치' 내각 꾸리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2.0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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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캠페인을 벌일 때 대중에게 어필하고 엘리트를 포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백인 저소득층의 분노가 그를 당선시켰다. 그러나 트럼프가 지명한 행정부의 주요 직책 인사를 보면 지금까지는 그를 끌어올린 지지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지명되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 일색이다. 트럼프의 차기 정부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부자 집단을 꾸려질 기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는 최근 수 주 동안 3명의 억만장자(자산 10억 달러 단위의 부유층)를 정부의 주요 각료에 뒀고 최소 2명의 백만장자(자산 100만 달러 단위의 부유층)를 임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자신처럼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해왔다. 때문에 그런 실력을 정부에서 살릴 수 있는 사람을 기용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나린히 선 윌버 로스 WL로스 앤 컴퍼니의 회장. 자산이 25억달러에 달하는 그는 트럼프 차기 정부의 상무장관으로 임명됐다. ⓒ 연합뉴스

트럼프가 11월30일, 자신의 첫 상무장관으로 임명한 사람은 사모펀드 WL로스 앤 컴퍼니의 회장인 윌버 로스였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자료에 따르면 12월1일 기준으로 로스의 총 자산 규모는 약 25억 달러(2조9000억원)에 달한다.

 

또한 토드 리케츠를 상무차관에 지명했는데 그는 올해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시카고 컵스의 소유하고 있다. 그 역시 총 자산 규모가 약 17억 달러(2조원)에 이른다.

 

차기 재무장관으로 낙점 받은 사람은 골드만삭스의 전 파트너로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스티븐 므누신이다. 교육부 장관은 미시간의 자선 사업가로 유명한 벳시 디보스가 임명됐는데 그의 일가가 보유한 자산은 51억 달러(약 6조원)다. 

 

트럼프가 재무, 상무, 교육 및 교통부 등 4개 부처 장관으로 지명한 사람들의 총 자산 규모는 최소 81억 달러(9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월스트리저널의 얘기다. 이 신문은 포브스 추산 자산 및 자산공개보고서(FDF)을 분석하고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조정해봤는데 이번 트럼프에서 앞선 4개 부처에 임명된 사람들의 재산을 따지면 이전 정부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3년에 지명한 4사람의 총 자산액보다 4 배 이상 많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기에 지명한 4사람의 총 자산 합보다는 무려 20배가 많다. 

 

트럼프의 정권 인수인계위원회의 제이슨 밀러 대변인은 트럼프의 인선을 두고 '승자의 내각'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런 승자들의 경력과 능력은 미국 중산층이 좀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의 이전 발언과 이번 인사의 불일치다. 선거 유세 때 그는 월가의 헤지펀드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월스트리트에 과세 하겠다" "월스트리트에는 거품이 있다" "나는 월스트리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돈을 일절 받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수많은 노동자에게 가난과 슬픔의 고통만을 남겼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격차'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미국 사회에서 트럼프의 수사는 제대로 먹혔다. 득표를 분석해보면 박빙으로 진행된 이번 대선에서 연수입 5만~9만9000달러의 세대가 트럼프에 찬성표를 많이 던졌다. 이 소득 구간의 트럼프 지지율은 50%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46%)를 앞섰다. 

 

물론 이전 정부에서도 '슈퍼리치'를 장관에 임명한 적은 있다. 2013년 오바마는 상무장관에 페니 프리츠커를 지명했는데 당시 그의 자산 규모는 18억5000만 달러(2조1700억원)에 달했다. 그는 하얏트 호텔 창업자의 딸이다. 조지 W 부시 역시 2006년 재무장관에 헨리 폴슨을 지명했는데 그는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다만 장관 그룹 중 한명에 불과했던 이전 정부와 달리 이번 트럼프 정부에는 슈퍼리치가 그룹을 지어 입각한 점이 다르다.

 

이미 비판은 시작됐다. 민주당에서 대선 후보로 나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정권.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의,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에 의한,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를 위한 정권"이라고 트윗을 올리며 야유했다. 트럼프는 워싱턴을 '기득권 투성이'라고 맹비난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그리고 억만장자인 자신이 미국의 노동자 계급을 대표한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바닥 민심을 자극했다. 그의 부유한 장관 선택이 위선으로 공격당하는 지금, 그를 지지했던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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