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Insight] 김정은 ‘작은아버지’에게 권력 뺏기나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07 10:03
  • 호수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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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일 옹립 추진說…우리 정부 “가능성 낮다”

집권 5주년을 맞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32)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홍콩발 보도가 나왔다. 김정은 권력을 축출한 뒤 그 대안으로 김평일 체코 주재 북한대사(62)를 옹립하는 방안이 평양의 핵심 파워엘리트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김평일 대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으로 이른바 ‘백두혈통’의 곁가지로 불린다.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숙부뻘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통치 기반을 한창 다져가던 김정은에겐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11월 중순 기사에서 북한 권력 안팎에서 김정은 교체 여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스토리를 실었다. 김정은이 리영호 군총참모장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을 숙청한 데 환멸을 느낀 북한 군부 고위층들이 이들과 마찬가지 운명을 맞을까 우려하고 있다는 게 배경이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도 갈수록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와 관련,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이 군 고위 인사에 대해 잇달아 무자비한 처형을 단행한 데 따른 군부 원로들의 분노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란 첩보가 있다”고 귀띔했다. 후계자 시절 군부 과외교사 역할을 하던 리영호 군총참모장을 집권 반 년 만에 숙청한 걸 두고 군부 핵심부에서는 ‘출발부터 뭔가 예감이 좋지 않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리영호의 경우 처형까지는 면했지만 이후 인민무력부장을 포함한 최상층부 군부 지도층이 줄줄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자 김정은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는 후문이다. 소식통은 “특히 60~70대 고위 군 수뇌부 처형을 부하들뿐 아니라 부인과 며느리, 손녀까지 강제 참관토록 하고, 전신을 발가벗겨 처참하게 사형시킨 걸 두고 ‘이건 광기 어린 폭군의 모습’이란 비판이 군부 쪽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1994년 4월18일 핀란드 대사로 재직 중인 김일성의 아들 김평일 © 연합뉴스

“김평일 최고지도자 될 자격 있다”

 

‘아주주간’은 김평일에 대해 지도자의 품성과 리더십, 백두혈통이라는 점, 북한체제를 개혁·개방으로 이끌려는 성향 등 최고지도자로 옹립될 만한 3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을 탈출해 서방으로 망명한 고위 인사들이 북한 주민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김일성의 가족 중 한 명을 망명정부를 이끌 수반으로 추대하려 할 것이란 점도 ‘아주주간’은 지적하고 있다.

 

김일성과 후처(後妻) 김성애 사이에 태어난 김평일은 1977년 여름 김일성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곧바로 인민무력부 장교로 복무했다. 무엇보다 김일성의 모습을 빼닮아 권력 내 핵심층과 주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의 직함과 함께 여성 조직의 최고위 자리인 여성동맹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성애의 영향력은 김평일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줬다. ‘평양 치맛바람’의 원조라 할 정도로 기세등등하던 김성애는 남동생 김성갑이 권력남용으로 처벌당하는 사태에 이르면서 제동이 걸렸다. 1980년 10월 6차 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일이 후계자 지위를 거머쥐며 권력을 잡자 김성애는 물론 김평일과 그 형제들은 하루아침에 ‘곁가지’로 밀려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다. 고위 탈북인사는 “그나마 김평일을 따르고 챙겼던 인물이 항일빨치산 출신인 전문섭의 아들 전위라는 인물”이라며 “하지만 김정일의 견제와 감시가 워낙 심해 결국 포기했고 김평일은 누구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인물이 됐다”고 전했다.

 

당대회 이듬해인 1981년 유고 주재 북한대사관 무관으로 부임했던 김평일은 3년 뒤 귀임해 대좌(우리의 대령급) 계급으로 인민무력부 작전국 부국장을 지냈다. 김정일과 달리 군복무 경험도 쌓은 것이다. 하지만 88년 헝가리 주재 대사를 시작으로 핀란드와 폴란드, 체코 대사를 전전하며 현재까지 사실상 해외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 김평일의 친누나인 김경진도 남편인 김광섭 오스트리아 대사를 따라 해외근무를 시작한 이후 24년째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성애의 경우 올해 92세이지만 아직 사망 발표나 첩보가 없다”며 김정일과 김정은에 의해 은둔생활을 강요받으며 여생을 마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평일과 김정은 위원장의 관계는 구체적으로 파악된 게 없다. 다만 2015년 7월 평양에서 열린 제43차 대사(大使)회의 당시 김정은과 해외공관 대사들이 한자리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장면이 노동신문에 공개됐는데 여기에 김평일이 포착됐다. 외교관 출신 탈북인사는 “의례적인 행사인 데다 두 사람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사진을 함께 찍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누구보다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 아들 중 막내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한 것도 이런 측면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자리를 굳혀가던 2009년 6월 이복형인 김정남을 살해하기 위해 중국에 암살단을 파견했다가 중국 당국의 제동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한·미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누구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인물”

 

김평일 옹립 추진설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현실로 나타나기는 쉽지 않은 시나리오라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정은이 나름대로 권력을 장악해 통치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라 군부의 쿠데타나 유고(有故) 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김평일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감시와 견제가 철저해 김정은 대안세력으로 등장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대북 부처 당국자는 “북한 권력이란 물레방아를 돌리기에는 김평일은 너무 오래전에 흘러가버린 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냥 흘려버리기보다 김평일 대안설이 나온 배경을 면밀히 살펴 평양 권력 내부의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주재 외교관을 포함한 김정은 체제의 파워 엘리트들이 줄줄이 탈북·망명하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군부 원로세력이 김정은 통치에 상당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어 극단적 상황에 맞닥뜨릴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당국도 긴장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고위 탈북인사는 “홍콩 언론의 보도 수준이라 해도 김정은의 권력에 위해(危害)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 국가안전보위부 3과인 해외반탐국이 보도 경위나 추가 정보 등을 파악해 김정은에게 대책을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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