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등장한 ‘탄핵’, 21세기 한국을 점령하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2.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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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서 탄핵제도가 처음 등장한 곳은 14세기 영국이었다. 일반적인 사법절차로 처벌이 쉽지 않은 고위 공직자에게 형사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의회가 헌법이나 법률로 파면하는 제도가 탄핵이다. 1376년 영국 의회는 최초로 탄핵을 결정하는 판결을 내렸는데 당시 국왕인 에드워드 3세의 측근으로 악행을 일삼던 래티머 남작 4세 윌리엄이 탄핵 대상이 됐다. 이걸 계기로 이후부터는 대신이나 국왕의 측근 등 정치적 인물이 탄핵의 대상이 됐다. 영국은 탄핵이 결정되면 단순히 그 직책을 박탈당하는데 끝나지 않고 벌금형이나 징역형도 받게끔 만들어진 구조였다. 하지만 19세기 이후부터 내각불신임권이 생기자 영국의 탄핵 제도는 이름으로만 남게 됐다.

 

영국헌법의 영향을 받은 미국은 그들의 역사에서 2번의 탄핵소추가 있었다. 처음 탄핵소추를 받은 이는 앤드루 존슨 전 대통령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재선될 때 부통령이었는데 링컨이 암살되자 자연스레 미국의 17대 대통령을 물려받았다. 그는 의회와의 관계가 매번 문제였다. 당시 존슨은 에드윈 스탠턴 육군장관을 부당 해임한 사건으로 탄핵을 받고 말았다. 그러나 탄핵재판소를 구성한 공화당원 6명이 3권 분립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부결투표를 던지면서 존슨의 탄핵은 불과 한 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두 번째 탄핵이 바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 이른바 '르윈스키 스캔들'이었다. 클린턴은 1998년 12월 모니카 르윈스키 성추문 사건에 대해 사법방해와 위증 혐의로 탄핵소추 됐는데 다음 해 2월 상원 표결에서 부결돼 가까스로 파면을 면했다

 

프랑스는 국가반역죄의 경우에만 탄핵 대상이 된다. 하원이 탄핵을 발의하고 상원이 이를 심사하는 미국과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하원과 상원 모두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가결되면 최고재판소에서 이를 두고 결정한다. 이때 최고재판소는 상원과 하원의 의원들로 구성된다. 프랑스에서 1958년 5공화국이 들어선 이래 대통령이 실제로 탄핵을 당한 사례는 없었다. 올해 11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대상으로 야당의원이 탄핵안을 발의한 것도 부결됐다. 르몽드 기자 2명이 발간한 대담집 '대통령이 이걸 말하면 안되는데(Un pr´esident ne devrait pas dire ma)'에서 올랑드 대통령이 국가 기밀을 털어놓았다는 이유였다. 의회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당시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4%였다.

 

올해 8월,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국가회계 부정 혐의와 비리 의혹 등을 받으며 결국 탄핵당했다. ⓒ AP연합

1세계에서 탄핵이 이뤄지지 않지만 3세계로 오면 다르다. 올해 8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여성 정상으로 꼽히던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물러나야 했다. 1992년 브라질은 페르난두 콜로르 지멜루 당시 대통령을 탄핵한 바 있고, 이번이 역사상 두 번째 탄핵이었다. 호세프는 국영은행 자금을 몰래 끌어다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사용한 회계부정 혐의, 그리고 유전개발권을 둘러싼 비리 의혹 등을 받고 탄핵당했다. 

 

탄핵을 당하진 않았어도 비슷한 형태로 권좌에서 쫓겨난 경우도 있다. 2015년 9월 오토 페레스 몰리나 과테말라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당시 과테말라 검찰은 세관 비리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그 종착점이 대통령이었다. 장관들이 사업체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그에 따른 뇌물을 받은 사건은 칼끝이 대통령을 향했다. 검찰은 의회에 대통령의 면책특권 박탈을 요청했고 의회는 이를 수용했다. 사실상의 탄핵이었다. 몰리나는 결국 스스로 물러나 법원에 나가야했다. 

 

20세기 이후 탄핵을 당하거나 탄핵을 당하기 전 스스로 물러난 정치지도자는 십수명이다. 그리고 이중 대다수는 남미와 동남아 등 우리보다 정치후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나라들이다. 그리고 그 리스트에 '한국'과 '박근혜'라는 이름이 이제 올라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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