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와 ‘문화’, 두 가지 키워드를 모두 갖고 싶은 광주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0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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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① 광주
1995년 시작해 올해로 11회를 맞는 비엔날레 때문인지 요즘 중․고등학생들에게 광주는 ‘문화예술’ 도시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사실 30대 중반의 필자에게 광주는 문화예술의 도시라기보다는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졌던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전시회 풍경보다는 시내 곳곳에 보이는 도로표지판이나 버스정류장에서 ‘5.18민주광장’, ‘4.19로’ 같은 지명을 발견하면 ‘여기가 광주구나’ 실감했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과격한 시위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운동’이란 그저 소수의 열정적인 사람들의 몫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광주시민들의 희생과 열의는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사건으로 박제화 되는 듯 했다.

특히 2015년11월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구(舊) 전남도청 일대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대규모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서면서 광주는 하나의 전환점을 맞고 있는 중이다.​

 

광주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 연합뉴스


민주화 성지에서 문화중심도시로

 

‘문화도시’ ‘창조도시’를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대한민국 광주 역시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광주가 새로운 도시발전 전략으로 문화도시를 내세우기 시작한 건 2002년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이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부터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계획을 수립했고, 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이자 새로운 문화적 거점이 될 장소로 추진됐다.
 
아시아문화전당을 설계한 우규승 건축가는 구 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 등 역사적 장소들의 아우라를 살리기 위해 전당 시설의 대부분을 기존 지표면보다 낮게 배치했다. 그 결과 실제 완공된 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 도심의 주변 경관 속에 완전히 녹아있었다.

지상층은 녹지공간이 부족한 도심의 문제를 해결하고 시민들에게 열린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공원과 광장 등 오픈스페이스로 조성됐다. 특히 잔디가 깔린 시민공원은 지면에서부터 약간의 경사를 이루며 이어져 있었다. 도심을 산책하다 이곳에 들러 가만가만 잔디를 밟으며 자연스럽게 들러 쉬었다 갈 수 있게 한 센스가 돋보였다. 기존 도시구조와 조화롭다. 주변 경관을 압도하는 화려하고 과시적인 건물을 짓는 대신 조화로운 건물의 양식을 도입한 설계자와 이를 받아들인 광주시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시아문화전당 내 시민공원으로 조성된 ‘하늘마당’. 도시를 거닐던 누구라도 슬쩍 들러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게 한 배려가 돋보인다. ⓒ 김지나 제공


처음 국제건축설계경기에서 이 설계안이 당선됐을 때, 일각에서는 스페인의 항구도시 빌바오 지역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같이 가시적인 효과가 있는 건축물로 변경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공모전 주최 측이 지하화를 사전에 모의했다는 유언비어도 퍼졌다.
반면 광주시민들은 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이 상징하는 5.18민주화운동 자체가 광주의 랜드마크라는 주장으로 이에 대응했다. 이런 논의는 광주가 문화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런 아시아문화전당이 정권교체, 시민단체와의 갈등, 내부 운영문제, 국정 비선실세 개입 의혹 등으로 개관한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불협화음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숨은 도시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폴리’

 

광주비엔날레 특별프로젝트 ‘광주 폴리’는 아시아문화전당과 함께 광주 구도심 지역의 문화적 자극제가 되고 있는 디자인프로젝트다. ‘폴리’란 원래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특별한 기능이 없는 정원 장식물을 지칭하는 단어다. 최근 현대 조경, 건축에서는 장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다. 
폴리는 공공시설물일수 있고 예술작품일수도 있다. 폴리를 어떻게 이용할지는 온전히 사람들의 몫이다. 광주폴리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총 3차례의 프로젝트를 거쳐 조성됐다. 건축가나 예술가들이 만드는 소형 건축물로 쇠락해가는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도심재생사업이다. 이 중 1차 폴리는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이었던 승효상 건축가가 기획하고 국내외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옛 광주읍성터를 따라 11점의 공공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이 주된 활동내용이었다.
 
처음 광주폴리가 완성됐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특별한 의미가 없고 장소적 맥락과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엉뚱한’ 조형물이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실제로 1차 폴리 중 어떤 작품은 성벽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폴리라고 미처 인지하지도 못한 채 지나칠 정도였다. 또 다른 작품은 장소와 전혀 상관없는 조형물 같았다.
 
하지만 ‘도시 내에 만들어지는 모든 건축물과 조형물이 반드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어야 할까?’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전남도청 일대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구현된 것이라면, 광주 폴리는 구도심의 숨겨진 매력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장소로 전환시키기 위한 일종의 ‘일탈’인 셈이다.​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 프로그램으로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광주의 구도심에 소형건축물을 짓는 광주 폴리 프로젝트가 1일 준공돼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은 광주 동구 구시청사거리에 설치된 도미니크 페로의 `The Open Box'. ⓒ 연합뉴스


현대 대도시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빠르게 변화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때로는 엉뚱하고 삐딱하게, 관습에서 벗어난 일탈을 해보는 것이 종종 도시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광주 구도심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이 벌어졌던 현장으로 기념되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전라남도 도청 이전 이후의 구도심 쇠퇴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에도 직면해 있다. 뿐만 아니라 광주비엔날레가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과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모든 기억과 장소의 맥락을 다 반영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혹은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생각해본다면 시민들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기는 폴리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새로운 정체성도 만들어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곳이다. 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폴리는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아시아문화전당에는 광주시민들의 염원과 자긍심이 담겨 있다. 광주폴리를 통해 시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5월의 광주를 기억하고, 문화예술을 즐기고, 구도심의 새로운 매력을 찾아낼 수도 있다. 내외부의 갈등과 정치적 논란, 일부 논객들의 섣부른 판단으로 광주의 문화적 잠재력이 퇴색되는 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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