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폐쇄성'이 '판결의 보수성' 만든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2.1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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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0일, 광화문에는 촛불이 넘실댔다. 7차 촛불집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기뻐하는 민심으로 가득 찼지만 "탄핵안 가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들도 흘러나왔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나눠주는 '손바닥 헌법책'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탄핵의 결정을 넘겨받은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는 긴장도 느껴졌다.

 

이런 긴장감의 바닥에는 '헌재는 보수적이다'는 생각이 깔려있어서다. 그리고 헌재의 보수성은 헌법재판관의 다양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과거부터 나왔다. 과연 이런 주장은 타당할까.

 

헌재의 탄생은 1988년 9월에 이뤄졌다. 헌재가 만들어진 뒤부터 재판관을 이미 지냈거나 지금 지내고 있는 46명의 이력을 살펴봤다. 그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들 가운데 절대 다수는 판검사 출신이다. 특히 판사 출신이 압도적인데, 46명 중 37명이나 된다. 나머지 9명은 검사 출신이다. 법학 교수나 순수 변호사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법관 중심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은 헌재의 보수성의 중요한 이유로 언급된다. (사진=연합뉴스)

헌법재판소법 제5조는 재판관의 자격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5조 1항은 "재판관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직(職)에 15년 이상 있던 40세 이상인 사람 중에서 임명한다. 다만, 다음 각 호 중 둘 이상의 직에 있던 사람의 재직기간은 합산한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변호사, 그리고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인된 대학의 법률학 조교수 이상의 직에 있던 사람도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헌재는 판사와 검사를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단 한 번도 문을 연 적이 없다. 헌재 구성원의 폐쇄성은 "사회적 다양성과 변화를 헌재가 인정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 데 원인이 되고 있다. 

 

헌법에 대한 전문성보다 '공안' 출신이라는 이력이 부각되는 재판관도 있었다. 1994년 재판관이 된 정경식 전 재판관(1994~2000년)은 대검 공안부장을 지냈다. 그는 김영삼 정부 때 재판관에 임명됐는데 1992년 부산지검장 시절 '초원복집' 사건 때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공무원의 선거개입금지를 위반한 인물이 헌재에 입성했다는 뜻이 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때 주심을 맡았던 주선회 전 재판관 역시 공안통이다. 대검 공안부장을 지냈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심리하게 될 현직 재판관 9명 중 2명이 검사 출신인데 이들 모두 '공안통'이다. 박한철 헌재소장이 대검 공안부장 출신이며 2012년 새누리당이 지명한 안창호 재판관 역시 대검 공안기획관을 지낸 공안통이다. 과거 헌재 구성 시기를 볼 때 9명의 재판관 중 검사 출신이 2명인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공안통만 2명으로 구성된 전례는 없다.

 

일찍 법조인 생활을 접고 민간 영역에서 10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한 사람은 7명이다. 이중 6명은 판사, 1명은 검사 출신이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온 나머지와 달리 그나마 민간 경험이 있는 그룹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7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재판관을 지낸 송두환 전 재판관은 1982년 판사에 임명된 뒤 1990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7년간 민간에서 활동한 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판관으로 지명했다. 송 전 재판관은 군대 내에서 국방부 장관이 정한 ‘불온서적’을 소지할 수 없도록 한 군인복무규율 조항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을 때 "헌법이 보장한 정신적 자유의 핵심인 ‘책 읽을 자유’를 제한하면서 도서선정에 대한 객관적 기준 없이 군당국이 자의적으로 금지도서를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소수의견을 밝혔다.

 

헌재 재판관이 얼마나 획일적인지는 이들의 출신 대학을 보면 명확해진다. 서울대 법대가 46명 가운데 31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려대 법대는 4명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성별은 사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을 정도다. 1988년 만들어진 헌재에 첫 여성 재판관이 나온 때가 2003년이었다. 전효숙 재판관이 처음 임명된 뒤 두 번째 여성인 이정미 재판관은 8년이 지난 2011년에 등장했다. 46명의 재판관 중 여성은 이 두 명에 불과하다.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이전 등 이미 국가의 주요한 결정을 좌우했던 헌재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변화의 뜻을 담보하지 못하는 건 불행한 일이다. 민변의 한 관계자는 "헌재를 바꾸려면 인적 구성을 다양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독일처럼 재판관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찬성으로 임명하는 걸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헌재법이 개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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