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과 비문이 제3지대서 만나기 위한 조건
  • 김현 뉴스1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13 10:16
  • 호수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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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변수는 개헌론과 반기문의 선택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2월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서 향후 정치권의 향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간 대한민국 사회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탄핵 정국’이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일단 매듭지어지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넘어간 만큼 정치권이 다음 스텝을 위한 모색에 나설 것으로 예상돼서다.

 

특히 조기 대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탄핵안 표결 과정에서 드러난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주류 측과 비박(비박근혜)·비주류 측 간 갈등이 분당으로 현실화될지 여부가 관심사다. 또 이번 기회에 제왕적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개헌론을 고리로 이른바 ‘제3지대론’이라는 정계개편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오른쪽)과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11월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현 시국과 개헌, 그리고 제3지대론’을 주제로 열린 시국토론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의화·손학규 “친박-친문 대안세력 형성”

 

정치권에선 ‘포스트 탄핵’ 정국을 주도할 이슈로 ‘개헌’을 꼽는 의견이 적지 않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월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권력이 집중돼서 국정 농단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권력 및 정치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권의 한 수도권 재선의원도 “앞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대통령 통치 스타일에 대한 논란이 있지 않겠느냐”며 “조기 대선으로 인해 개헌을 완료하긴 어렵다고 하더라도 국회 안에 기구를 만들어 하나의 안을 만들어 가거나 대선후보군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걸고 논란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누리당 비주류 성향의 한 초선의원도 “이젠 탄핵 촛불이 개헌 촛불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고, 김철근 동국대 사회과학대 교수 역시 “탄핵안이 이제 막 가결됐으니 곧바로는 아니겠지만, 앞으로 개헌 정국으로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이 ‘포스트 탄핵 정국’에서의 개헌론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제3지대론’을 내건 정계개편을 촉발시킬 수 있는 핵심 변수라는 점에서다. 헌재의 탄핵 인용 여부를 떠나 조기 대선은 이미 현실화됐고, 개헌을 둘러싼 대권 주자 및 각 세력 간 입장차는 대선 정국과 맞물린 정계개편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개헌론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의원들 사이에선 “앞으로 개헌파와 호헌파로 나눠지게 될 것”이라며 “개헌에 대한 명분이 힘을 얻는다면 개헌파들 간 합종연횡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실제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정계개편’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은 탄핵 정국에서부터 시작됐다. ‘제7공화국’을 주창(主唱)하고 있는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과 개헌론자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11월26일 회동을 갖고 개헌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뒤,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의 패권주의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세력을 형성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 전 의장은 최근 통화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고 있고,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지면 정기적인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 전 의장은 외연확대를 꾀하고 있는데,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등이 그 대상으로 거론된다.

 

김무성 전 대표와 남 지사, 김종인 전 대표는 모두 개헌론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한 이들은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이른바 여권의 비박(비박근혜)-야권의 비문(비문재인) 인사들이 뭉치는 ‘제3지대론’을 주도할 인사로 꼽힌다. 김 전 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탄핵 찬성론을 펴면서 동시에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지사도 권력 분산형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종인 전 대표 역시 개헌론을 고리로 ‘비(非)패권지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지금은 탄핵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결이 다른 주장을 펴왔지만, 안 전 대표 측 주변에선 제3지대 흐름이 가속화될 경우 입장을 선회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손 상임고문과 정 전 의장 등 개헌파들의 구상대로 개헌파 결집이 이뤄지게 될 경우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등 현 시점에서의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인사들 간 첨예한 대치전선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는 최근 탄핵 정국에서 개헌론이 불거지자, “헌법에 무슨 죄가 있느냐. 헌법이 피해자”라며 호헌론을 펴고 있다. 최근 지지율이 급등세를 타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친노 진영 인사로 분류되는 안희정 충남지사도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론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내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문 전 대표 측 인사들은 개헌을 논의하는 순간 비박(비박근혜)과 비문(비문재인) 주자들이 한데 모이는 제3지대가 커질 것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더라. 그래서 강하게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라며 “호헌파들과 개헌파들 간 싸움이 치열해지면 이를 명분으로 정계개편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기문-안철수 연대론’ 살아 있는 카드

 

제3지대론을 띄울 또 하나의 변수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언급된다. 민주당 내 전략통 의원은 “개헌과 함께 제3지대를 부상시킬 수 있는 요인은 반 사무총장”이라고 말했다. 그간 반 총장은 친박 대권 주자로 인식돼 왔지만, 탄핵 정국에서 박 대통령은 물론 친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등하면서 기성 정당이 아닌 독자노선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소위 반 총장의 측근들도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반기문 정당’의 태동을 꾸준히 흘리고 있다. 반 총장이 내년 1월 귀국할 경우 정치적으로 운신할 폭을 넓히기 위한 사전 포석 작업으로 읽힌다. 때문에 당장은 실현되긴 어렵겠지만 대선 정국 속에서 ‘반기문-안철수 연대론’은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관건은 새누리당 내 상황이 어떻게 변화되느냐에 달려 있다. 제3지대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새누리당 내 비박·비주류가 분당을 결행해야 하지만, 탄핵 가결을 계기로 친박·주류 측이 급격하게 세가 약화될 경우 비주류가 분당보단 재창당 등 당내 투쟁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내 주도 세력만 교체하는 선에서 끝난다면 제3지대 정계개편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야권의 한 재선의원은 “비박과 비문이 만나는 제3지대론이 현실화되는 데 있어선 새누리당의 변수가 가장 크다”며 “새누리당이 쪼개지고 비박이 나오는 상황까지 된다면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친박이 탄핵 이후 쪼그라들고 비박 중심으로 새로 재편된다면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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