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과 맞물린 ‘대선 정국’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6.12.13 15:35
  • 호수 14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기 대선 가시권…‘문재인·반기문·이재명’ 3强 선두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대선 주자들의 행보도 두드러지게 빨라지고 있다. 2017년 12월20일로 예정됐던 대통령 선거일이 ‘확’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정치는 생물처럼 움직인다”는 말이 또 한 번 입증됐다.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탄핵안은 최장 180일 이내에 판결받게 된다. 그렇다면 최장 6월 중순까진 탄핵 심판이 내려진다. 탄핵안이 인용(찬성)되면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내년 8월경에 차기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셈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 절차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처럼 2개월 정도 소요된다면 내년 2월 중순부터 대선 정국으로 빨려 들어간다.

 

박 대통령이 탄핵 심판 기간 중에 하야(下野)할 경우에도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이래저래 2017년 12월 대선 출마를 염두에 뒀던 대권 잠룡들과 참모진의 정치공학 계산이 복잡해졌다. 탄핵 정국이 시작된 마당에 ‘대선 운동’을 드러내놓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칫 “대권욕에만 사로잡혔다” “잿밥에만 관심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촛불 민심’만 눈치 보며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탄핵이 결정되면 두 달(60일) 안에 당 내 경선과 대선을 모두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각 당의 후보자는 대선 24일 전에 후보등록을 마쳐야 한다. 각 당 후보자는 한 달 정도 ‘짧은’ 기간 동안 정해져야 한다. 한마디로 한 달은 당내 경선, 나머지 한 달은 대선 운동을 해야 하는 셈이다. 2012년 대선 때 민주당은 두 달 정도 당내 경선 과정을 거쳐 문재인 후보를 선출했다. 그나마 잠재 후보가 많은 민주당은 “비상시국이기 때문에 한 달 안에 당내 경선을 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탄핵만 인용되면 바로 대선 체제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왼쪽부터) © 시사저널 박은숙·최준필·청와대 제공

문재인·이재명 ‘고구마 vs 사이다’ 논쟁

 

반면 새누리당은 두드러진 후보조차 없다. 그나마 유승민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거론된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탈당해 ‘제3지대’를 모색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새누리당은 정당 기능조차 사실상 정지됐다. 당내 일각에서 “내년 조기 대선은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탄핵 정국으로 정치 일정이 복잡하게 꼬여 있지만 잠룡들의 행보는 분주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상위권에 포진한 대선 예비 주자들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2월8일 발표한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 결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23.5%),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8.2%), 이재명 성남시장(16.6%),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7.5%) 순이었다. ‘문재인-반기문-이재명’ 3강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

 

한때 새누리당 후보로 거론됐던 반 총장은 여권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대신 ‘제3지대’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야권 주자로 나설 경우 야권 잠룡들과의 혈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반 총장은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12월31일 임기를 마치고 귀국 예정된 시점은 1월 중순. 귀향하자마자 바로 대선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를 받쳐줄 조직도 현재는 없다. 정치권의 합종연횡으로 ‘제3지대’가 구축돼야 하는데 그러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반 총장 심정도 다급하겠지만, 국내 팬클럽도 급해졌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불미스러운 일도 생기고 있다. ‘반기문 대통령추대 국민대통합 추진위원회’(추진위원장 유한열 충청총재)가 정운찬 전 국무총리 이름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정 전 총리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현역 지자체장 사퇴 시점도 앞당겨져

 

야권 주자 간 신경전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촛불 정국에서 지지율이 급상승한 이재명 성남시장과 문재인 전 대표 간에 때아닌 ‘사이다 대(對) 고구마’ 논쟁이 벌어졌다. 사이다는 ‘청량함’을, 고구마는 ‘답답함’을 빗댄 인터넷 속어.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재명은 사이다, 문재인은 고구마로 불린다’는 말에 문 전 대표는 “사이다는 금방 목이 마른다. 탄산음료는 밥이 아니다.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며 우회적으로 각을 세웠다.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 시장은 “목마르고 배고플 때 갑자기 고구마를 먹으면 체한다. 사이다를 마신 다음 고구마로 배를 채우면 든든하게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문-이’는 이후 “우리는 한 팀”이라고 수습했지만 휴화산일 뿐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당내에서 대선행(行) 티켓을 놓고 결국 외나무다리에서 일합(一合)을 겨룰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대권 행보를 걸었던 문 전 대표와 달리 이 시장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처해 왔다. 이 시장은 2월18일 본지 인터뷰에서 ‘다음 정치 수순은 무엇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없다. 닥치면 할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맞춘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런데 9개월이 지난 11월24일 인터뷰에선 ‘내년 대선 전망’에 대해 “내년 대선도 미 대선과 아주 흡사한 형태로 흘러갈 것”이라며 “내가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며 대선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문 전 대표와 함께 ‘친노 그룹’으로 분류되는 안희정 충남지사도 대선 가도를 걷고 있다. 민주당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11월23일 기자와 만나 안 지사에 대해 “시대정신을 잘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서로 존댓말 하는 사이였다. ‘친노’라고 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적자(嫡子)는 안희정 지사와 이광재 전 지사다”라며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와 싸우려 하지 말고 자신의 얘기를 해야 한다.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가겠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문 전 대표가 혹시 ‘꺾이면(지지율이 떨어지면)’ 그때 나서면 된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추미애·김무성 뒷거래 의혹’ 발언 등으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촛불 정국에서 지지율은 정체됐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도 촛불 정국에서 선명성을 부각시키려 했지만 지지율은 미미하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새로운 변수도 생겼다. 바로 이재명·박원순·안희정·남경필 등 현역 지자체장이 사직 결심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53조 4항은 보궐선거 시 현역 지자체장이 선거일 30일 전까지 사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이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대권 잠룡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행보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