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대책 세워달라?" 헌재를 탄생시킨 건 '집회'였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2.1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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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월26일. 서울 중구 정동빌딩 16층에서는 헌법위원회 위원 8명이 마지막 '월례회의'를 가졌다. 전체 위원수는 9명인데 이날은 한 명이 불참했다. 이들의 임기는 6년으로 1987년 4월21일이면 임기가 마무리 되는 상황이었다.

 

헌법위원회는 위헌법률심사권, 고위공무원 탄핵심판권, 위헌정당해산결정권 등의 권한을 가진 헌법기관이었다. 그 권한을 보면 지금의 '헌법재판소'와 닮았다. 헌재의 전신이 바로 이 헌법위원회다. 그런데 위원들은 임기 6년 동안 자신들의 권한을 한 번도 행사한 적이 없었다. 이날의 마지막 회의인데도 그들의 주제는 '세상사는 이야기'였다. 특별한 안건도 없이 간략한 업무보고를 들은 다음 서로 담소를 나눈 뒤 40분 만에 회의를 끝냈다.

 

위헌법률심사권은 현대 정당정치에서 다수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다. 하지만 헌법위원회로 권한이 넘어온 1972년 유신 이후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 앞선 이들이 모인 때는 전두환 정권인 5공화국 시절이었다. 위헌적 요소를 따질만한 법률이 많았던 시기였다.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국회 기능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대신하게 됐는데, 5개월간 189개의 법률을 무더기로 통과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 속에 위헌적이라고 지적받는 법률도 적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는 이해가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던 때였다.

 

ⓒ 연합뉴스

유신체제가 시작됐던 1972년부터 1981년까지 헌법위원회에 제청된 위헌심사제청신청은 단 한 건도 없었다. 5공이 시작된 1981년 이후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를 두고 "헌법위원회가 헌법적 가치 판단을 하기보다는 법률의 형식논리적 적용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하는 일 없는’ 헌법위원회가 1987년까지 존재했다.

 

1987년 6월10일, 6·10 항쟁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6월 한 달 내내 국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개헌’을 요구했다. 그리고 결국 6·29 선언을 끌어내면서 개헌 요구는 수용됐다. 시민들의 힘으로 얻은 개헌 선언, 그리고 시작된 개헌안 준비 작업. 개헌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중요하게 떠오른 화두 중 하나가 사법권의 독립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였다. 국민들의 힘으로 얻은 개헌인 만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해졌고 그걸 담보해내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역할이 필요했다.

 

당시 정치 아래에서 억압받던 사법권을 제도적으로 독립시키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기위한 여러 필요조건들이 제시됐는데 그 중 하나가 헌법재판제도를 합리적으로 마련하는 방안이었다. 법률의 위헌심사 기능을 비롯해 헌재의 재판기능을 사법부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독립된 기관에 맡길 것인가가 논란이 됐다. 

 

제1공화국과 제3공화국에서는 법원이 헌법재판기능을 맡았다. 제2공화국과 제4공화국, 그리고 제5공화국에는 일반 법원과는 별개로 독립된 기관을 설치했다. 다만 제2공화국 때는 헌법재판소가, 제4공화국부터는 헌법위원회가 설치됐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이 중요해지자 결국 독립기관의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쪽으로 선회했고, 결국 개헌과 함께 헌법재판소는 탄생했다. 따지고 보면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전국적인 집회가 헌법재판소를 탄생시킨 원천이었다.

 

2016년 12월14일. 헌재는 경찰청에 공정하고 원활한 심판 진행을 위해 헌재 주변 집회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재판관의 신변 안전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헌재 배보윤 공보관(54)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가적으로 엄중한 탄핵심판이 불편부당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에 집회질서에 관한 대책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에 대한 헌재의 요청에 대해 "재판의 공정성과 신속성을 위해 헌재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반응과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곳이니 그런 불편은 감내를 해야 한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집회의 결과물로 탄생한 헌재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그들이 집회에 관한 대책을 요구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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