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수비 카테나치오의 변형, 첼시의 EPL 독주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20 11:35
  • 호수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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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백 시스템 앞세운 첼시의 EPL 독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첼시는 올여름 이적시장의 주연이 아니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영입한 맨체스터 시티와 조세 무리뉴 감독이 취임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연일 놀라운 선수 영입을 할 때도 첼시의 행보는 조용했다. EPL 외국인 구단주 돌풍의 시발점이었던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지갑은 과거처럼 흔쾌히 열리지 않았다. 2015~16시즌 리그 10위까지 추락하며 챔피언스리그는커녕 유로파리그 출전권도 쥐지 못한 부진이 큰 이유였다.

 

하지만 16라운드를 마친 현재 첼시는 2016~17시즌 EPL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 리버풀에 승점 6점이 앞선 여유 있는 1위다. 7라운드 헐시티전 2대0 승리 이후 무려 10연승을 달렸다. 이적시장 지출 1위였던 맨시티가 선두에 승점 7점 뒤진 4위, 2위였던 맨유가 무려 13점 차인 6위를 기록하고 있어서 첼시의 상승세는 더 두드러진다.

 

10연승을 기록하는 동안 첼시는 25골을 넣는 화력을 과시했다. 더 놀라운 것은 실점이 단 2골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경기당 0.2실점의 경이로운 수비력이다. 대부분이 예상하지 못했던 첼시의 선두 질주를 분석하는 영국 현지 언론과 전문가, 팬들의 의견은 공통적이다. 첼시가 최고의 선수는 영입하지 못했지만 최고의 감독 안토니오 콘테를 영입했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이끄는 첼시가 최근 10연승을 달리고 있다. 사진은 첼시의 디에고 코스타가 12월11일 WBA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는 모습. © AP연합

이탈리아에서 온 혁명가, 첼시를 구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콘테 감독은 ‘혁명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첼시는 그에게 첫 해외 도전이다. 자국에서 선수 생활(레체·유벤투스)을 끝낸 그는 2004년부터 시작한 지도자 생활도 줄곧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이어왔다. 2부 리그인 세리에B에서 지도력을 검증받은 그는 2011년 여름 친정팀 유벤투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승부조작 사건의 중징계로 세리에B에 강등됐던 유벤투스는 세리에A 복귀 후 예전의 모습을 좀처럼 찾지 못했다. 콘테 감독의 취임은 유벤투스의 암흑기를 끝내는 한줄기 빛이 됐다. 부임하자마자 2011~12시즌 무패 우승을 이끈 그는 3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2013~14시즌에는 세리에A 역대 최다승점 우승의 성적을 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직후부터 2년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역대 가장 허약한 공격진의 대표팀이라는 평가 속에서도 콘테 감독은 전술로 한계를 극복하는 능력을 보였다. 유로 2016 조별리그에서 벨기에, 16강에서 스페인을 차례로 2대0으로 꺾으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8강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독일에 패했지만 대회 최고의 명승부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의 스리백 시스템이 집중 조명을 받았다.

 

유벤투스 감독 부임 전까지만 해도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공격적 축구를 추구했지만 어느 시점부터 콘테 감독은 극도의 실리 축구를 추구하는 지도자로 변신했다. 유벤투스, 이탈리아 대표팀, 첼시는 모두 명성에 걸맞은 성적을 바라는 대중의 이상이 큰 팀이다. 그러나 실제 스쿼드 수준이나 선수들의 정신적 상태는 바닥을 치는 게 현실이었다. 그 괴리를 메우기 위해 콘테 감독은 위기관리에 돌입했다.

 

첼시 부임 후 그는 강한 규율을 내세웠고 조직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했다. 선수의 이름값에 상관없이 팀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된 선수를 기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팀의 주장인 존 테리, 부주장인 이바노비치도 예외는 없었다. 언론과 팬들이 방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 디에고 코스타는 콘테 감독의 신뢰 속에 득점 선두로 올라섰다. 임대만 오가던 만년 유망주 빅터 모지스는 당당히 주전이 됐다. 그리고 강팀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 수비부터 리빌딩을 시작했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 © AP연합


‘공격적인 스리백’이라는 발상의 전환

 

시즌 개막 후 초반 6경기에서 3승1무2패의 평범한 성적을 낼 때만 해도 이탈리아 무대를 처음으로 벗어난 콘테 감독을 향한 시선은 불안했다. 특히 그 2패가 우승 경쟁자인 리버풀과 아스널에 당한 것이라는 이유로 조급한 영국 언론은 경질설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때 콘테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포백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존 테리를 중심으로 한 단단한 포백은 첼시 축구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그는 과거의 유산과 과감히 단절했다.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내세웠던 스리백으로 돌아갔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미드필더 숫자를 줄이고 전문 수비수를 늘리는 스리백은 안전 제일주의를 추구하는 구시대적 산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볼의 점유와 앞에서부터 수비하는 전방 압박을 강조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과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콘테 감독은 자신의 고집을 밀고 나갔다. 대신 콘테 감독은 스리백에 공격의 개념을 추가했다. 왼쪽 측면 수비수인 아스필리쿠에타를 스리백 스토퍼로 쓴 것이다. 아스필리쿠에타는 빠른 발로 상대의 주요 공격수를 막는 동시에 공격으로 전환할 때는 적극적인 오버래핑도 가능했다. 루이스와 케이힐은 수비수지만 정확한 킥을 갖고 있어 빠른 공수 전환을 이끌었다. 돌파 능력이 뛰어나고 힘이 좋은 모지스는 윙포워드에서 윙백으로 전환시켰다. 안정적인 수비 후 빠른 공수 전환, 거기에 3명의 수비수가 다양한 루트로 공격에 가담하는 변화는 스리백도 공격적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콘테 감독은 10월과 11월 잇달아 EPL 이달의 감독상을 받는 쾌거를 누렸다. 콘테 감독은 “스리백은 내게 플랜D에 해당하는 후순위였다. 첼시는 좋은 찬스를 만들 수 있는 팀이다. 하지만 찬스를 살리기 전 실점을 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것을 수정한 것만으로 모든 게 잘되기 시작했다”며 작은 발상의 전환이 일으킨 거대한 파장을 설명했다.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에서 도르트문트, 바이에른 뮌헨의 게겐프레싱으로 넘어간 축구 전술의 유행은 이제 콘테 감독의 스리백을 주인으로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탈압박에서 압박의 시대로 넘어갔던 흐름은 보완된 카테나치오(빗장수비)의 시대를 보고 있다. 콘테 감독이 준 영감은 이미 많은 지도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중국 무대로 진출한 최용수 장쑤 쑤닝 감독,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극적인 부활을 한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도 콘테 감독의 스리백을 따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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