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굿바이 박정희!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6.12.20 12:58
  • 호수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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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저널 2016년 송년호 커버스토리는 ‘올해의 인물’입니다. 한 명이 선정되는 게 보통입니다. 이번에는 둘입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듀엣입니다.

 

저도 이 두 사람 이름이 지겨워서 이 칼럼에서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불가능할 듯합니다. 이 점 양해를 구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올 하반기 한국을 들었다 놨다 한 핵폭탄급 이슈입니다. 역사의식이 희박한 한국에선 걸핏하면 단군 이래 최대·최고를 외치는데, 이 사건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21세기가 한국이 문명개화(開化)의 시대라고 굳게 믿고 있다면 말입니다.

 

이 둘로 인해 연말 분위기가 스산합니다. 이미 체감경기는 IMF 때보다 심각합니다. 그때는 그래도 고도성장 직후여서 정부도 가계도 여윳돈이 많았습니다. 소득격차도 작았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정반대입니다. 상황이 이러한지라 개인이 나라 걱정할 겨를이 없는데도, 나라 살리려고 이 추운 겨울에 수백만 국민이 거리로 나와 고생했습니다.

 

© 연합뉴스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 가결은 전적으로 민심 덕분이지만, 국민들의 고생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역사는 발전하기도 하지만 퇴보할 때도 많은 탓입니다. 다만 촛불집회를 계기로 자각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크게 바뀔 것이라는 시그널입니다.

 

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애용하던 말 중에 ‘적폐(積弊)’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좀 어려운 한자말인 탓에 국어사전 조회 수가 급증했을 정도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이 단어를 즐겨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최순실씨와 함께 해 온 각종 국정 농단 의혹은 적폐 그 자체였습니다. 이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제2의 박근혜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게 됐습니다.

 

이 적폐의 상당수는 개발시대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정경유착이 그러하고 권력의 사유화(私有化)가 그러합니다. 불통과 무능은 그 결과겠지요. 이런 프레임을 짠 인물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사후 여야로 정권이 교체됐지만 이런 적폐는 청산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비극은 이런 낡은 틀을 깰 큰 인물이 청와대 주인으로 없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년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최순실 사태가 안 터졌으면 박정희 관련 기사가 주목받았을 타이밍입니다.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를 한 몸에 압축시킨 인물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박정희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관련 여론조사가 없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부정적인 평가가 늘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저희만 해도 박정희 탄생 100주년 특집을 중단했으니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의도한 바 아니지만 부친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킨 셈입니다.

 

내년에 박정희를 뛰어넘는 큰 인물이 나와 낡은 틀을 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각자 먹고살기에도 허덕이는 대다수 국민들이 더 이상 나라 걱정 안 해도 되도록 말입니다. 올 한 해 나라 살리느라 다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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