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는 방파제” 러시아가 시리아를 옹호하는 이유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12.2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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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터키 러시아 대사의 총격 사망에서 보는 러시아의 중동 개입 이유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열린 한 사진전 개막식. 12월19일 한 남자의 뒤로 젊은 터키인 남자가 다가와 총을 쐈다. 총에 맞아 쓰러진 노년의 남자를 뒤로 하고 총을 쏜 남자는 외쳤다. "알라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 그리고는 터키어로 외쳤다.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를 잊지 말라."

 

총을 쏜 남자는 현자에 투입된 경찰 특공대에 의해 사살됐다. 그는 22살의 터키 경찰이었다. 총을 맞은 남자는 안드레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였다. '알레포'와 '시리아'가 등장한 범인의 말에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러시아에 대한 보복 살인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알레포에 집중적으로 공중 폭격을 가해 엄청난 인명피해를 발생시켜왔다. 러시아의 일방적인 도움 덕분에 시리아 정부군은 반군이 장악한 알레포 동부지역을 약 4년 만에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피를 부른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 하지만 이번 살인은 더욱 많은 피를 부를 수도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의 제임스 닉시 연구원 역시 "러시아군이 복수를 이유로 더 많은 피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드레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를 쏜 터키인 범인은 "알레포를 잊지말라"고 외쳤다. ⓒ AP연합

중동에 의존할 필요 없는 러시아의 중동 개입

 

요즘 중동 정세를 말할 때 러시아를 빼놓을 순 없다.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에 엄청난 군사 원조를 실행하고 2015년부터는 직접 군사개입까지 시작한 게 러시아다. 2016년 1월부터는 시리아 평화회담이 시작됐는데 회담 테이블에 앉을 반군의 범위, 예비 조건 등을 놓고 미국과 대립하면서 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 개입은 항상 있어왔고 그래서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에너지와 수송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다른 탓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 생산국이라 중동의 에너지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륙 국가이기 때문에 물류의 대부분을 육상으로 옮길 수 있다. 해상 운송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는 얘기다. 에너지와 해상 운송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매번 중동에 개입해 온 미국과 대비된다.

 

2013년 기준으로 러시아의 에너지 자급률은 184%를 기록했다. 국내 생산 에너지만으로 완전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원유에 대한 수입 의존도 역시 필요치 않다. 중동의 에너지 자원에 전혀 의존할 필요가 없는 국가다.

 

해상 수송은 어떨까. 러시아 연방통계국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러시아 전체 화물 통행량은 82억643만 톤이었는데 이중 56억3500만 톤이 자동차를 통했고 13억8100만 톤이 기차를 통했다. 에너지 자원 등은 파이프라인으로 옮겨지는데 이것도 무려 100억1951만 톤이다. 해상 수송 화물량은 고작 700만 톤에 불과했다.

 

한때 러시아는 중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지만 '냉전'을 유지하려는 전장으로 활용했을 뿐이었다. 냉전시대 소련은 중동 등지의 친소(親蘇) 세력에 군사원조를 하거나 그들을 돕기 위한 군사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도 끝났다. 동시에 러시아가 경제적 위기를 맞자 이러 개입은 크게 후퇴했다. 러시아의 군사적 존재감은 중동에서 완전 사라지진 않았지만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미미했다. 그 러시아가 2010년대 들어 다시 중동에 복귀한 거다. 

 

러시아는 왜 중동에 돌아왔고 시리아를 옹호할까. 얼마나 개입했기에 이런 살인 사건이 발생할 정도일까. 중동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러시아가 중동에 개입하는 이유를 아는 건 이번 러시아 대사 살인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혹시 시리아가 러시아의 주요 무기시장이라서 그럴까. 아니다. 러시아에 시리아는 작은 손님일 뿐이다. 실제로 시리아 내전이 터지고 시리아로 무기 수출이 어렵게 됐지만 막상 러시아의 무기 수출액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세계 100위 안에 드는 러시아 대규모 군수업체들의 지난해 무기 수출액은 301억 달러로 2014년보다 오히려 6.2% 증가했다. 여전히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무기수출대국이다.

 

IS 근거지인 시리아 알레포 외곽 알바브 지역이 공습을 받은 모습. 러시아 공군이 폭격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 AP연합

“체제 전환의 물결을 어디선가 눌러 세울 필요가 있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시리아의 지정학적 배경보다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러시아 군사정책 전문가인 고이즈미 유 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연구원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방국에서 벌어지는 체제 전환의 물결을 어디선가 눌러 세울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우방국은 권위주의적 통치 구조를 가진 국가가 많다. 그리고 이들은 민주화 운동에 따른 정권 붕괴의 위험을 항상 안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조지아(2002년), 우크라이나(2004년), 키르키즈스탄(2005년) 등 구소련 국가들을 휩쓸고 간 '컬러 혁명'과 '아랍의 봄'은 그런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이대로 체제 전환이 계속되면 시리아를 잃을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통치 체제를 지닌 구소련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도 파급될 수 있다는 점을 러시아는 우려했을 수 있다"는 게 고이즈미의 지적이다. 앞선 구소련 국가들의 통치자는 모두 고령으로 권력 이양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내정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러시아 정부의 강한 의심도 한몫했다. 이런 체제 전환의 원인을 해당 국민의 요구보다는 서방의 지원에서 찾고 있어서다. 올해 8월 78세의 고령으로 병원에 누워있던 이슬람 카리모프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도 러시아의 고민이었다. (그는 9월에 사망했다) 러시아 정치 분석가인 알렉세이 마르티노프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 우즈베키스탄에서 불발로 끝난 쿠데타의 배후 세력인 미국의 정치 공학 기술자들이 이번에도 다시 한 번 그런 시도를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고 주장했다. 서방의 인위적 개입이 만들어낸 시민운동을 경계하는 발언이었다. 마르티노프는 대표적인 친 크렘린 인사로 손꼽힌다.

 

이처럼 러시아 상층부가 갖는 음모론적 이야기가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구도를 볼 때 시리아는 항상 러시아가 위협 받던 체제 전환의 물결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때 후퇴했던 러시아의 중동 개입이 최근 들어 다시 활발해진 이유를 설명해주는 답변 중 하나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아사드 정권의 유지는 러시아에 중요한 숙제가 된다. 시리아에서 실시하는 러시아의 공습이 IS(이슬람국가)보다 다른 반(反)아사드 세력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IS나 또 다른 반정부 세력도 아사드 정권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러시아가 볼 때는 동일한 타깃일 수 있다. 

 

러시아에 중요한 점은 중동의 교두보가 무너져 러시아의 우방이 내정불안을 연쇄적으로 겪는 일을 막는 것이다. 이런 목표만 달성할 수 있다면 굳이 아사드 개인의 거취는 중요하지 않다. 지난해 11월 시리아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2차 국제회담에서 러시아 측은 아사드 대통령 퇴진의 대가로 아사드파가 차기 정부를 이어받는 것을 비밀리에 제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IS 대응'이라는 단순한 이유도 군사개입의 명분에 포함될 수 있다. 시리아 내전 초기에는 체첸 출신 용병이 IS측에 참여하고 있었다. 현재는 러시아 및 구소련에서 수천 명 규모의 사람들이 IS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지난해 7월 IS는 러시아 북카프카스 지역에 지부를 수립했다고 선언했고 그런 것을 푸틴은 관대하게 보지 않는다. 특히 이곳은 극단주의 조직인 '카프카스 에미리트'의 활동무대기도 하다. 게다가 시리아에서 전투경험을 익힌 이들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로 돌아오고 있기에 러시아의 대응도 한결 다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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