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의 총아에서 충무로 블루칩 된 변요한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21 11:09
  • 호수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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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승·류준열·박정민 등 독립영화는 스타 배출의 보고

만약 3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로 남아 있는 어떤 것을 되돌릴 수 있을까.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라는 기시감이 든다면 그 짐작이 맞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기욤 뮈소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몇 가지 설정을 바꿨지만 기본 설정은 같다. 우연한 기회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로운 알약을 얻게 된 의사 한수현(김윤석). 30년 전으로 돌아간 그는 과거의 자신(변요한)을 만난다. 30년의 시간차를 사이에 둔 두 수현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일어나는 어떤 사건을 막으려 하면서, 수현의 과거와 현재는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판타지 멜로의 외피를 걷어내면 결국 이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는 ‘시간’에 대한 영화다. 둘로 나뉜 존재가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두고 충돌하고 때론 합심하며 한수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드라마인 셈이다. 동일 인물을 연기하는 두 배우의 호흡이 작품의 질을 좌우하는 최우선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의 수현을 연기한 배우 변요한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선배 배우 김윤석과 대등한 에너지로 한 인물을 만들어가야 하는 주체이자 관객의 안내자가 되어야 하는 쉽지 않은 역할. 게다가 젊기 때문에 조금 더 미숙하고, 같은 이유로 훨씬 복잡한 감정의 파고를 겪는 인물이라는 복잡한 설정을 변요한은 모자람 없이 소화해 낸다. 몇몇 장면에서는 그가 이 이야기를 이끄는 실질적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는 이의 감정을 압도한다. 성공적인 상업영화 주연 데뷔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배우 변요한 © 롯데엔터테인먼트

변요한, 독립영화 활동 시절부터 소문 자자

 

상업영화 주연은 처음이지만, 변요한은 독립영화 활동 시절부터 이미 소문이 자자한 것을 넘어 슈퍼스타에 가까운 배우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인 그는 단편 《토요근무》(2011)를 시작으로 숱한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첫 1년에만 그가 촬영한 단편영화가 무려 30여 편. 당시 목표는 ‘단편영화제의 칸’이라 불리는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진출이었다고 하는데, 변요한은 2012년 《목격자의 밤》으로 그 꿈을 이뤘다.

 

《목격자의 밤》의 주인공은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 지훈(변요한)이다. 어느 날 밤 뺑소니 사건을 지켜 본 유일한 목격자가 된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 중 누구에게서 돈을 받을 것인지 고민한다. 영화는 폭력적인 협박과 도덕적 딜레마 사이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따라간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온갖 상황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압박감을 견디는 지훈의 표정과 심경이 극 전체를 빼곡하게 채운다. 3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지만, 이 안에서는 배우 변요한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또렷하게 목격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는 인물의 ‘위기 상황’에 강한 배우다. 진가는 벼랑 끝에 선 듯 위태로운 인물을 연기할수록 드러난다. 내내 고요한 가운데 어느 순간 그것이 폭발하는 에너지를 보여줘야 할 때, 변요한은 본능적으로 끓는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연기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도 한층 더 완숙한 형태로 드러난다.

 

배우 스스로 ‘스물일곱 살의 뿌리’라는 애정 어린 호칭으로 부르곤 하는 《들개》(2013)도 변요한의 강점을 증명하는 영화다. KAFA(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 연구과정 6기 졸업작품인 이 작품은 변요한의 첫 장편영화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사제 폭탄을 제작하며 녹이는 정구(변요한).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폭탄 때문에 생겼던 과거의 사건을 감추면서까지 누구보다 간절하게 사회의 질서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정작 자신이 폭탄을 터뜨릴 용기는 없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게 폭탄을 배달하던 그는 그 자체로 시한폭탄 같은 인물 효민(박정민)을 만나며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을 겪는다. 뒤이은 작품인 《소셜포비아》(2014)에서 변요한이 연기한 경찰 지망생 지웅 역시 자신의 상황에 발목 잡힌 인물이다. 현실에서 도피해 욕망을 배설했던 SNS라는 실체 없는 세계가 어느 순간 역으로 나의 현실을 덮쳐오는 순간의 공포. 그 한가운데 있는 지웅의 딜레마는 영화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소셜포비아》에서 변요한과 호흡을 맞췄던 이주승과 류준열(위 사진) 그리고 《들개》의 박정민 © CGV아트하우스·무비꼴라쥬

독립영화 출신, 일련의 경험치로 똘똘 뭉쳐

 

독립영화는 배우 변요한이 단기간에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다. 모든 것이 준비된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출발했다면, 배우가 현장 전체의 공기를 읽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돌발변수가 많은 독립영화 현장을 먼저 거치면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 제작 공정에 대한 이해가 본능적으로 쌓일 수밖에 없다. 배우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최선을 다해 역량을 선보여야 하는 직업군이다. 그러니 독립영화 출신 배우들은 가능성이라는 모호한 말로 포장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경험치로 똘똘 뭉친 상태가 된다. 좋은 기회를 만난다면 자신의 역량을 120% 이상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들인 것이다.

 

실제로 독립영화는 영화와 TV 드라마를 넘나드는 좋은 배우들을 발굴하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말 많은 배우들이 있지만, 《소셜포비아》에서 변요한과 호흡을 맞췄던 이주승과 류준열, 그리고 《들개》의 박정민이 당장 떠오른다. 이들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방황하는 칼날》(2013)로 상업영화 데뷔를 치른 이주승은 《대결》 등 개봉작에서도 단단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류준열은 개봉을 앞둔 《더 킹》뿐 아니라 정지우 감독의 스릴러 《침묵》(가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 등 차기작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올해 초 개봉했던 《동주》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문인 송몽규를 연기한 박정민 역시 스크린과 TV, 연극 무대까지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독립영화를 통해 검증된 이들이 좋은 배우의 풀을 넓혀가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이들이 TV 드라마를 통해 인지도를 얻고, 그렇게 스타성을 검증받은 뒤에야 주연급 배우로 충무로에 입성한다는 것은 씁쓸함을 안기기도 한다. 충무로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독립영화에서 좋은 배우들의 싹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제2, 제3의 변요한이 지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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