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태에 유독 빛 발한 ‘최순실 교수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12.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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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없습니다.”

12월15일 국정농단 국조 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경숙 전 이대 체육대학장의 답변은 부정으로 가득했다. 김 전 학장이 일부 교수들에게 최순실씨(개명 후 최서원)의 딸 정유라(개명 후 정유연)에 대한 ‘학점 관리’를 지시한 사실이 교육부 감사에서 이미 드러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김 전 학장은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 그 과정에서 ‘권력의 사유화’에 앞장서며 유독 뛰어난 활약상을 보인 이들이 있었다. 일부 교수들이다. 안종범 전 대통령실 정책조정수석,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김경숙 전 이화여대 체육대학장…. 이들의 공통점은 직업란에 ‘교육자’라는 세 글자가 적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12월15일 '최순실게이트' 국정조사에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관련 인사가 출석했다. 출석한 이대 관계자는 최경희 전 이대 총장(앞줄 오른쪽), 김경숙 전 이대 체육대학장(앞줄왼쪽), 남궁곤 전 이대 입학처장(뒷줄가운데) 등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상아탑을 나와 정권의 울타리 안에 발을 들인 그들은 누구보다도 권력지향적이었고 추악했다. 안종범 전 수석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재정학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던 경제학자였다. 하지만 2007년부터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명망 있던 교수는 정권의 충실한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그는 포스코 계열 광고사 강탈, 차은택씨 측근의 KT 전무 발탁, 최순실씨와 차은택씨가 지배한 광고기획사 더 플레이그라운드에 일감 몰아주기 등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스포츠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김종 전 차관 역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출신이다. 김 전 차관은 12월7일 2차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선 고영태씨가 “김종 전 차관은 최순실씨의 수행비서처럼 보였다”라고 할 정도로 충실한 ‘종’ 노릇을 하며 최순실의 이익을 챙기는 데 앞장섰다. 김 전 차관은 삼성에 압력을 가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지원하도록 한 혐의가 적용됐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출신인 김종덕 전 장관 역시 권력의 하수인일 뿐이었다. 최순실씨를 등에 업고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했던 차은택씨의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로, 차 씨가 최순실씨에게 추천해 장관에 임명됐다. 그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최순실씨의 이권에 장애가 되자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사퇴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부정 학점 취득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일부 이대 교수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12월15일 청문회에서 보여준 이들의 태도는 학자로서 최소한의 윤리의식도,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국정농단’ 교수들에게 ‘시대적 양심’으로서의 마지막 고백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불행하게도 그들이 쓴 두꺼운 가면만을 또 다시 확인해야 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철저히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한 ‘최순실 학자‘들을 두고 “‘어글리 폴리페서’의 끝을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폴리페서(polifessor)란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가 합해진 말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현직 교수를 이르는 말이다. 

 

타락한 '폴리페서'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게 된 세 명의 교수들. 왼쪽부터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 사진공동취재단·시사저널 박은숙

교수직을 유지하면서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순 없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정계의 부름에 응해 전문 지식을 정책화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학자와 정책전문가 사이에서 조율을 적절히 하는 학자들도 많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학자 출신’이란 꼬리표를 단 인사들을 무분별하게 영입하는 경향도 적지 않았다. 선거철 인재 수요가 많은 틈을 타 캠프의 부름을 받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정치인으로 탈바꿈했다가 낙선하면 슬그머니 학교로 돌아오는 일부 교수들은 ‘폴리페서’란 단어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심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선 종종 정치참여 활동으로 정계나 관계와 접점을 찾는 교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타락한 폴리페서는 다시 ‘프로페서’가 될 수 있을까.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폴리페서들 일부는 이미 직위 해제가 되거나 학계로 복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2월12일 한양대학교는 김종 전 차관을 직위해제하기로 했다. 안종범 전 수석도 11월말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해 수리되면서 성균관대 교수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차은택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여전히 숙명여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지만 학생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최순실 씨와 차은택 씨의 비리를 묵인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종덕 전 장관 역시 학내 반발로 홍익대 복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긴급 학생총회를 열어 김 전 장관에 대한 해임 요구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서울대 의대 교수이면서 서울대병원장을 맡고 있는 서창석 전 대통령 주치의도 학내에서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학계와 교육계가 스스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에 동참한 한 교수는 “같은 교수로서 참 부끄럽다”며 “타락한 폴리페서에 대한 논란은 학계의 분위기가 성과 교수의 대외 인지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해가는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시대의 양심’이란 직무를 저버린 일부 교수들. 한국의 국민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이들의 추악한 민낯을 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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