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막힌다고 民心 막아선 안 된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press.com)
  • 승인 2016.12.27 09:09
  • 호수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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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헌재 등 30m까지 접근해야”…집시법 개정안 논의 중

1.3km, 900m, 500m, 200m 그리고 100m. 8번의 촛불집회 동안 시민들은 청와대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 나갔다. 10월29일과 11월6일 열린 1차, 2차 촛불집회 당시 경찰은 청와대와 1.3km 남짓 떨어진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부터 시민들을 막아섰다. 그러나 11월13일 3차 집회 전, 집회 주최 측이 낸 집행정지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청와대 900m 지점인 내자동 로터리까지 진입이 허용됐다. 이후 법원은 계속해서 주최 측 요구를 들어줬고, 4차 500m(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5차 200m(청운동 주민센터)에 이어 마침내 6차 집회 때 역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앞 100m(효자동 삼거리)까지 행진로를 열어줬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에 따르면, 청와대 관저와 국회의사당, 헌법재판소 등 주요 국가기관 100m 이내에서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3차 촛불집회 때부터 주최 측이 요구해 온 청와대 200m 앞 행진조차 불허했다. 집시법 12조에 명시된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 시 집회 및 시위를 금지 혹은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내세웠다. 즉, 집회가 교통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집회자유사업단 조사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 8월까지 경찰의 집회 금지통고 1059건 중 교통 소통을 이유로 한 것이 447건에 달한다. ‘금지장소(11조)’ ‘생활평온의 침해(8조 3항)’를 합한 것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2016년 12월10일 7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하며 “박근혜 즉각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주민 의원, 집시법 독소조항 뺀 개정안 발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국가들 중 교통 소통을 이유로 집회를 제한하는 입법례는 전무하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교통 소통을 애초에 대등한 권리로 두고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이 주장하는 교통 소통 대상에는 집회에 참여하는 보행자도 포함돼 있다”며 “100만의 집회 참여자가 있고 지나가는 5만 대의 차량이 있다면 참여자가 아닌 차를 막는 것이 진정 교통 소통을 위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11월9일 참여연대는 경찰이 교통 소통을 이유로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근거를 삭제한 집시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했다. 개정안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 소관위 심사단계를 밟고 있다. 박 의원은 “우리나라 현행 집시법은 금지 조항이 지나치게 많아 사실상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이 아니다”며 “장소나 시간 등 제한 사항에 대해 경찰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앙 권력에 예속돼 있는 경찰이 집회 관리주체인 것에 대해서도 “도로나 광장의 사정을 더 잘 아는 해당 지자체를 주체로 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개정안은 거리 제한을 둔 집시법 11조도 독소조항으로 지목하고 대폭 개정에 나섰다. 청와대·법원·헌법재판소 등에선 집회 금지 범위를 100m에서 30m로 축소했다. 때에 따라 30m 내에서도 집회를 열 수 있게 하고 있다. 해당 기관에 물리적 위협이 없는 한, 집회 참여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릴 수 있도록 최대로 근접한 지점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백악관 바로 앞에서도 집회

 

많은 나라들은 집회의 자유를 ‘보호받아야 할 권리’로 인식하며 공공기관의 건물 및 부지 내에서의 집회만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 부지 내 집회에만 제한을 두고 부지 밖 시위는 바로 앞까지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국회 인근에서 이뤄지는 집회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설령 집회가 국회 사무를 방해하더라도 예외조항을 붙여 최대한 가능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 역시 현행 법률에 국회 앞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등 사법기관의 경우, 이들 국가에서도 청와대나 국회와는 달리 집회에 일정한 제한을 두기도 한다. 바로 앞 집회가 자칫 판결의 공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월17일 8차 촛불집회 당시 법원은 헌재 앞 100m 지점인 안국역 4번 출구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그러나 주최 측이 신청한 경로 중, 헌재 100m 이내인 재동초등학교 인근 북촌로31 앞과 북촌로 만수옥 앞까지의 행진은 불허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중립적 판결을 위해 헌재 앞 집회 역시 규정된 100m 이상의 일정 거리는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참여연대 간사 역시 “바로 앞에서 열리는 집회로 사법부가 지나치게 여론의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사법부 독립성을 보호해 줘야 할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외 청와대나 국회, 국무총리 공관 등의 경우, 거리 제한을 두며 집회를 막을 정당성이 없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민의를 가장 가까이 들어야 할 곳에서 오히려 그 목소리를 막고 있는 상황이 난센스라는 것이다.

 

대규모 집회가 아닌 1인 시위에 대해서도 공공연한 제한은 존재한다. 집시법은 집회 및 시위의 주체를 ‘여러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으므로 1인 시위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20~30m 간격의 거리를 두고 1인 시위를 벌이는 ‘인간띠잇기’나 ‘릴레이 1인 시위’ 등의 경우 경찰 해석에 따라 위법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미국 대사관 등 외교공관 앞 1인 시위의 경우, 경찰이 ‘외교공관은 불가침 지역이며 품위를 손상시켜선 안 된다’는 비엔나협약 22조를 들어 시위자를 연행하기도 한다. 실제 2016년 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사드 배치 문제로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중 경찰 물리력에 의해 밀려나, 법원에 1인 시위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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