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저승사자’ 핵심 친박 밀어낼까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02 13:55
  • 호수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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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진 비대위원장 “서청원·최경환·이정현 정계 은퇴 요구”

새누리당에 ‘저승사자’가 돌아왔다. 인명진 갈릴리교회 원로목사가 2016년 12월29일 새누리당 전국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식 선임됐다. 인 비대위원장이 최순실 게이트로 난파선이 된 새누리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다. 비박(비박근혜)계는 개혁적 보수 기치를 들고 집단 탈당해 1월말 개혁보수신당을 창당한다. 정통 보수당인 새누리당이 보수 대분열로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인 비대위원장이 침몰하는 새누리호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인 비대위원장은 10년 전인 2006년 10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윤리위원장으로 기용됐다. 재야 노동운동의 대부로 4차례 옥고를 치렀던 그는 당시 성 추문, 골프 논란, 문제성 발언 논란 등을 빚은 의원들을 연이어 징계하며 ‘저승사자’로 불렸다. 그는 당내 저항을 뚫고 부패한 기득권 세력으로 비난받았던 한나라당의 변화를 시도한 바 있다.

 

 

만장일치로 추인된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016년 12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청원, 이인제, 정갑윤, 인명진, 정우택, 원유철. © 시사저널 박은숙

새누리 전국위, 인명진 비대위원장 추인

 

인 비대위원장은 내정되자마자 저승사자다운 면모를 보였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위증교사 논란을 빚은 이완영 의원을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인사에 대한 인적 청산도 거론했다. 서청원·최경환·이정현 의원에 대해 “국민이 요구하면 정계 은퇴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하고 장관도 하고, 당 대표, 도지사 한 분들이 어떻게 (최순실 사태에) 책임이 없다고 하겠느냐”면서 “당을 위해서 내가 희생해야 한다면, 그게 국민의 요구라면 당연히 (정계 은퇴를)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새누리당은 죽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누구든 희생하지 않고 거듭나지 않으면 새누리당은 희망이 없다”고 강조했다. 당내 인적 청산을 통한 쇄신이 효과를 거둬야 분당파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신당과의 보수 경쟁이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정책 재검토도 시사했다. 그는 “당명을 바꾸고 로고를 바꾸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정책과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개성공단 중단 사태, 한·일 위안부 협정 등에 대해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당 개혁을 위해선 인적 청산과 함께 국민적 논란이 되는 정책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친박계는 인 비대위원장의 인적 청산 방침에 강력 반발했다.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우현 의원은 인 비대위원장을 겨냥, “당내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너무 개혁적인 것을 말하면 당의 혁신이 아니라 당의 분열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오히려 인 내정자는 당을 분열시키고 떠나는 김무성·유승민 의원에게 정계 은퇴를 해야 한다고 외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 비대위원장은 친박의 역공에 주춤했다. 그는 친박계 핵심 실세인 서청원·최경환·이정현 의원의 인적 청산과 관련해“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며, 국민과 당내 의견을 취합해서 판단하는 것”이라고 한 발짝 뺐다. 전국위에서 비대위원장 추인을 받아야 하는 마당에 친박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인적 청산에 반대하는 친박 전국위원이 불참할 경우 ‘인명진호’는 출항도 하기 전에 좌초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결국 최대 관문인 전국위 추인을 넘어섰다. 이제 당 쇄신의 전권을 확보한 그는 인적 청산 등 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속도 조절이 예상된다. 친박의 반발을 고려해 당분간 비대위 구성과 활동방향 설정 등에 주력하며 쇄신의 명분을 축적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적 청산과 관련해 “막무가내로 인민재판식으로 청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법과 절차에 따라서 해야 한다”면서 “전세를 빼는 데도 한 달 이상 걸리는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인적 청산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당내 상황을 좀 더 지켜보면서 인적 청산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그의 이 같은 입장은 친박 핵심 인사의 출당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 당헌·당규를 보면 국회의원 출당은 중앙윤리위원회 징계 결과를 가지고 의원총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한 상황이다. 비박계가 대거 탈당한 상황에서 당을 장악한 친박이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의 출당에 동의할 가능성이 작아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상황이다.

 

인 위원장이 법적·도덕적·정치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 주목된다. 그는 수락연설에서 “민주주의 요체는 책임이며, 보수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도 책임”이라면서 “모든 개혁의 시작은 철저한 반성과 책임지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출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친박 핵심에 대해 당내 법적 절차가 아닌 도덕적·정치적 책임을 물어 자진 탈당을 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인적 청산 안 되면 비대위원장 사퇴 가능성도 

 

당 일각에선 인 위원장이 위원장 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친박 핵심 의원에 대한 자진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 위원장을 영입한 정우택 원내대표도 인 위원장의 인적 청산 요구가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경우 인 위원장과 동반 퇴진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인 위원장을 지원 사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인적 청산의 대상자가 버티기에 나서면 방법이 없어 당내 분란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인 위원장이 인적 청산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친박 좌장 최경환 의원과 맏형 서청원 의원은 한목소리로 백의종군을 주장하고 나섰다. 인 위원장의 인적 청산 칼날을 피하기 위해 몸을 바짝 낮춘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최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전국위 직후 기자들을 만나 “오늘 인 위원장이 추대돼서 당이 새로운 개혁에 들어가기 때문에 저는 2선으로 물러나겠다”면서 “지역구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서 의원도 “지난번에 2선 후퇴와 백의종군하겠다고 했으니 많은 고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탈당설에 대해서는 “그건 잘못된 얘기”라며 “정치인이 백의종군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부인했다.

 

두 의원의 백의종군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한 쇄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당 관계자는 “쇄신의 핵심은 인적 청산”이라며 “인 비대위원장이 전권을 위임받아 인적 청산 등을 확실히 처리해야 분당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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