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2012년 안철수와 2017년 반기문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0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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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과 반기문 현상의 결이 다른 이유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 잠재적인 정계 인사로 부상한 시점은 정확히 2011년 9월2일이었다. 전날 오마이뉴스의 단독보도를 통해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 결심을 굳혔다는 기사가 나가면서 다음날 진행된 청춘콘서트 현장은 웬만한 연말 시상식을 능가할 정도로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들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 전국에 불기 시작한 계기였다. 그 후 2012년 1월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는 안철수 의원의 18대 대선 출마 여부를 새해 첫 이슈로 보도했다. 한동안 정계 입문, 대선 출마 등에 대해 정중동의 자세를 보여 온 그는 ‘안철수 현상’이 부상한 시점인 2011년 9월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2012년 9월19일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역시 1년 전인 2016년부터 범(汎)보수 진영을 아우르는 잠재적인 대선후보로 급부상했다.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경험한 글로벌 경력과 안정성 등을 내세우며 여타 유력 잠룡이 부재한 새누리당의 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인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5년 전 모든 언론이 안철수 의원의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기자들이 이른바 뻗치기를 하며 취재한 것처럼, 올해 1월 반 전 총장이 귀국하면 국내 언론은 한동안 그의 대선 출마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며 그가 던지는 메시지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안 의원이 신중 모드 끝에 결국 대선 출마를 결심했듯이 반 전 총장 역시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현재 그 누구도 없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그렇다면 5년 전 발생했던 ‘안철수 현상’과 지금의 ‘반기문 현상’(?)은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 일단 동일한 점을 굳이 꼽자면 둘 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환멸과 참신한 인물에 대한 정치적 열망이 부각된 점이다. 2010년 이후 안철수 의원은 국내 대학생들의 롤 모델로 인정받았고, 그가 진행하는 청춘콘서트에는 언제나 수천 명의 대학생이 몰려들었다. MB(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장관, 국무총리 등 입각설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을 위해 교육과 강연에 힘쓰고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은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의사에서 기업가, 그리고 다시 교수로 변화하며 자신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려는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넘어 경외심마저 갖게 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반 전 총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5년 전 ‘안철수 현상’과 같은 국민적 신드롬을 불러일으키진 않았지만, 언제나 조용한 리더로서 투쟁과 갈등을 넘어 포용의 리더십,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하며 충청 및 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상당한 지지를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당선된 유엔 사무총장 10년의 경력은 그가 대한민국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디딤돌이 되기에 충분했다. 고급 어휘를 구사하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글로벌 리더로서 그가 보여준 안정적(?) 행보는 수많은 반기문 관련 도서를 국내에 쏟아내는 기폭제가 됐다. 지금까지 줄곧 대선 출마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안 하는 모습 역시 5년 전 안 의원의 모습과 동일하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아쉽게도 5년 전 안 의원이 18대 대선에 실패했던 절차의 공통점까지 닮아 있다. 2012년 수많은 국민들의 지지와 압도적인 기대를 바탕으로 안 의원은 정당정치의 한계를 지적하고 산업화와 민주화 그 이후의 미래가치를 논했지만, 정확히 그가 말하고자 하는 미래가치가 무엇인지, 정당정치의 한계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대한민국의 성장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콘텐츠)을 제시하지 못했다. 반 전 총장 역시 동일하다. ‘대한민국을 위해 몸을 불사르겠다’는 말만 했을 뿐, 그가 대한민국의 미래 화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명확히 밝힌 적은 없다. 특히 올해 대선은 다른 때보다 빨리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무능하다고 평가 받아온 유엔 사무총장 경력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국가를 이끌 리더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미래 세대에 대한 철학과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소명의식 외에 그가 누구와 함께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안 의원은 정치 참여에 대해 망설일 때마다 “정치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여전히 고민된다”라는 말을 강조해왔다. 5년 전 안 의원이 기존 정당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국민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한 이유 역시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급조됐고 올곧은 신념과 가치관을 토대로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선거 때마다 지지 후보를 위해 철새처럼 당적을 바꿔가며 이동하는 김종인․윤여준 같은 구체제 인물이 안 의원의 정치적 멘토였으니 굳이 이 부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적 모사꾼과 함께 하는 인물은 여전히 많지만 참신한 인물마저 그런 사람과 함께한다면 국민의 열망은 급속히 실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반 전 총장은 어떤가. 그의 멘토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이다. 외교관 출신으로 가장 높은 지위까지 올랐으니 반 전 총장이 존경하고 따를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폭압적인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대 초반 서슬 퍼런 안기부를 이끌어 공포정치에 앞장섰으며 2년간 총리로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해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전두환 정권 7년간 외무부장관, 안기부장, 국무총리 등으로 영전했지만, 그는 신군부의 탄압에 눈을 감고 외면했으며 민주화를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명확한 비전과 신념, 가치관을 바탕으로 함께할 사람을 조직화하지 않고 제3지대 운운하며 여전히 모호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충족시켜 줄 사람과 함께하고자 하는 반 전 총장의 정치 철학 역시 빈약하기 짝이 없다.

 

반 전 총장에게는 안타깝지만, 5년 전 안 의원과 지금의 반 전 총장은 다른 점도 많다. 국민이 호감을 갖고 대선에 불러내는 참신한 인물은 대체적으로 당시 대통령과 가장 반대되는 성향과 발자취를 남긴 경우가 많다. 가령, 지난 정권 시절 MB는 사익을 추구하고 부패하고 토목 사업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국민들이 판단했기에, 그와 정반대로 공익을 추구하고 투명하며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던 안 의원이 국민들에 의해 급부상됐다. 덕분에 MB와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프레임에 갇힌 데 비해 안 의원은 ‘미래가치’라는 프레임을 선점했고, 상당한 국민적 열망을 바탕으로 대선이라는 소용돌이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반기문 현상’은 어떤가. 국민들이 그를 불러 일으켰다기보다 수많은 정치인이 그가 지닌 유엔 사무총장의 업적을 강조하며 그를 대선에 끌어들인 측면이 강하다. 아울러, 지금의 박 대통령이 갖고 있는 이미지인 빈약한 성과와 무능함, 부패의 정반대 지점에 반 전 총장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반 전 총장 역시 유엔에 재직하며 빈약한 성과와 무능함을 10년간 꾸준히 전 세계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보여 왔기 때문이다. 또한, 한동안 박 대통령이 가장 공을 들여 대선후보로 영입하려고 한 인물 역시 반 전 총장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국민이 불러일으킨 열망과 기존 정치권이 불안해서 정치권 스스로 유발한 열망은 근본적으로 그 싹이 다르다.

 

시사저널이 ‘박연차의 23만 달러’ 외에 ‘반기문 아들의 SKT 특혜 입사’ 의혹까지 제기했지만, 반 전 총장은 흑색선전이라며 이를 폄하했지 구체적이고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안 의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화제성으로 사람을 뽑지 말고 콘텐츠가 갖춰진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5년 전 ‘안철수 현상’이 기존 정치권의 벽을 넘지 못한 건, 정치권이나 언론의 흑색선전이 아니라 부족한 콘텐츠 때문이었다. 그 동안 반 전 총장이 우리에게 보여준 건 무능하고 부족했던 10년간의 유엔 성과밖에 없다. 반 전 총장이 어떤 비전을 갖고 있고,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소명의식은 무엇인지, 유엔 사무총장 재직 시절에도 명확히 밝힌 적이 없다. 언론의 의혹을 무책임한 흑색선전이라고 몰아세우기 전에 부족한 콘텐츠와 정치철학부터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갖추길 바란다. 저조한 성과를 거둔 무능한 리더십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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