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왜 히틀러의 책을 선택했을까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1.0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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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면…출판사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살인자 히틀러가 쓴 책을 다시 출판 할 필요가 있는가?”

독일을 전쟁국가로 내몬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소식이 최근 독일에서 들려왔다. 이 책을 재출간한 독일 뮌헨현대사연구소(IFZ)조차 1월3일 “《나의 투쟁》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의외다”고 발표할 정도다.

 

히틀러의 살아온 궤적과 반(反)유대사상 등이 기록된 《나의 투쟁》은 1925년 처음 출판됐다. 첫 해 판매량은 9473부 정도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필독서가 되면서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독일에서만 1200만부가 팔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가 패망하자 책의 저작권은 바이에른 주정부로 넘어갔고, 이 책은 출간이 금지됐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비판적 주석을 보태 지난해 1월 새롭게 출판된 책이 독일 내에서 8만5천부나 팔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 AP연합

제2차 세계대전 끝날 당시 독일서만 1200만부 팔려 

 

하지만 2015년 말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면서 발매 금지도 덩달아 해제됐다. 그리고 2016년 1월 IFZ가 다시 발간하기 시작했다. IFZ에 따르면 다시 펴낸 이후 지금까지 약 8만5000부가 팔렸다.

 

전후 70년의 시간 동안 독일에서 발매 금지됐던 이 금서가 지난해 다시 세상에 등장하게 된 이유는 뭘까. 《나의 투쟁》은 히틀러의 반(反)유대주의에 대한 지론을 800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기록했다. 홀로코스트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 책이기도 하다. 

 

이처럼 위험한 책의 저작권 만료시점이 점점 다가오면서 독일 내부에서는 책의 출판 여부를 놓고 여러 해 동안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2012년 독일 정부는 《나의 투쟁》이 주는 역사적·도덕적 교훈을 고려해 주석을 붙여 발간할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2년 뒤인 2014년에 정부 입장이 바뀌었다. 원래 약속했던 재정지원을 취소하고 학술서로만 출판하는 것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여론도 갈렸다. 여론조사기관인 ‘YouGov’의 설문조사에서 독일인의 51%는 이 책의 국내 출판을 반대했다. 시판하는 것 자체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의 정책조차 오락가락하게 만들 정도로 뜨거운 감자였던 이 책. IFZ는 2016년 1월, 출판을 결정했다. 그들은 왜 출판해야 했을까. IFZ가 이 책을 펴낸 1차적인 이유는 저작권이 소멸된 이 책을 극우 신나치가 출판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치의 사상이 독일 사회에 퍼지지 않도록 하려면 그 위험성을 이해하도록 돕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IFZ는 3년에 걸쳐 원본에 비판적인 논평을 붙이는 작업을 해 왔다. 그 결과 800페이지였던 원본은 2000페이지로 확장됐다.

 

안드레아스 비르싱 IFZ 소장은 “신랄한 비판을 담은 주석은 연구 소재로도 중요하지만 공개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석 없이 원본을 그대로 출판하는 것이 무책임한 태도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비인간적인 책을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방치해 두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일이다. 나치즘과 인종 차별을 설명하고 비판적인 해설을 붙여 책을 출판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고 주장했다.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방치해 뒀다는 건 무슨 뜻일까. IFZ가 우려한 것은 독일이 아닌 해외의 인터넷 사이트였다. 독일을 벗어난 웹 공간에서는《나의 투쟁》을 누구나 원본으로 열람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출판이 가능한 국가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나의 투쟁》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2003년 한해에만 영어판 《나의 투쟁》의 매출 부수가 연간 2만부 정도에 달했다. 이것보다 더욱 저렴한 보급판은 이 책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몰라도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됐다. 터키와 인도의 경우가 그랬다. 심지어 e북의 경우 2014년 최고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생각 그대로를 담은 원본의 확산을 경계하기 위해 IFZ는 주석본을 출판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IFZ의 결정은 유대인 커뮤니티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독일 유대인 중앙위원회의 전 회장은 “《나의 투쟁》은 판도라의 상자다. 독자의 마음속은 알 수 없다”며 출판을 반대했지만, 오히려 현 회장은 찬성하는 일이 벌어졌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독일 교육계에서는 《나의 투쟁》의 출판을 찬성하는 목소리가 많은 편이다. 독일 교원노조는 16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 수업의 교재로 《나의 투쟁》을 추천하기도 했다. 교원노조의 요제프 크라우스 대표는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학생들이 보게 되면 오히려 통째로 삼켜버릴 우려가 있다. 교사가 수업을 통해 가르치면 그런 걸 막을 수 있다”고 말하며 젊은이들에게 면역력을 주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dpa연합

독일 내부에서도 《나의 투쟁》 출판 놓고 찬반 갈려

 

2017년을 맞은 지금 독일 국민들은 《나의 투쟁》을 어떻게 평가할까.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는 시기와 맞물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에 대해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반면 IFZ는 이런 우려를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전체주의 정치’에 관해 깊은 논의를 불러온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IFZ는 “전국 서점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정리해보니 정치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 혹은 교육 관계자가 주 구매자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소의 분석과는 별도로 독일에서는 현재 극우의 바람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2017년 10월22일은 독일 총선이 열린다. 만약 현재의 독일 정당 지지율을 그대로 대입할 경우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과 연립정부 파트너인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3당이 될 수도 있다. 불과 4년 전에는 원내 진입조차 하지 못했던 정당의 대반란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런 조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나의 투쟁’에 보내는 우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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