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준기 회장 45년 만에 ‘동부’ 사명 떼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7.01.0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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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동부그룹 전 직원에게 새 사명 공모…재계 관계자 “내부적으로 사명 교체에 더 무게”

동부그룹은 지난해 말 전 직원들을 상대로 사명을 공모했다. 직원 1인당 2개씩 의무적으로 새 사명을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조만간 직원들이 제출한 아이디어를 취합해 사명 교체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사명을 바꿨을 때 득실도 따져봐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동부’라는 사명을 버리는 것도 고려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동부그룹 측은 “아직까지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을 상대로 사명을 공모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룹의 정체성 확보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명 변경이 검토됐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직원 1인당 의무적으로 새 사명 2개 제출 요구 

 

하지만 재계에서는 동부그룹의 사명 교체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금융 계열사들이 사실상 공중 분해된 것이 한 요인으로 꼽힌다. 동부그룹은 2013년 11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동부제철과 동부특수강, 동부익스프레스 등 주력 계열사들이 줄줄이 매각되거나 그룹에서 떨어져나갔다.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동부그룹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내부에서 제기됐다.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그룹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명 교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부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동부그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 이미지에 적지 않은 생채기를 입었다”며 “언제인지 구체적인 시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사명 교체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동부그룹의 모태 기업은 1969년 설립된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이다. 김준기 회장은 1970년대 불어 닥친 중동 건설 경기 붐을 타고 미륭건설을 키웠다. 당시 벌어들인 ‘오일달러’만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김 회장은 건설업에서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해 보험과 증권, 전자, 제철사업에도 진출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공식적으로 ‘동부그룹’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동부’라는 사명을 사용한 회사는 1971년 설립된 동부고속운수(현 동부익스프레스)다. 동부그룹의 사명 교체가 현실화되면 45년 만에 ‘동부’라는 명칭을 버리게 되는 셈이 된다.

 

동부건설이 지난해 6월 사모펀드인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키스톤PE)에 매각된 점도 사명 교체의 이유로 꼽힌다. 동부건설은 동부그룹의 모태 회사로, ‘동부’ 브랜드의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 동안 동부 계열사들은 동부건설에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았다. 그룹을 대표해 동부건설이 상표권을 출원했을 뿐, 동부건설의 단독 소유 재산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국세청이 2015년 5월 동부건설에 거액의 추징금을 부과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 국세청은 동부건설이 계열사들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를 받지 않으면서 회사의 이익 역시 축소된 것으로 판단했다. 국세청은 미납된 법인세에 가산세까지 붙여 수백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동부건설은 국세청 결정에 불복하면서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동부건설이 이길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동부그룹 입장에서는 매년 거액의 로열티를 물어야할 처지가 된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적정 브랜드 사용료는 연간 매출의 0.2% 수준이다. SK나 LG 등 주요 그룹의 지주사들이 계열사로부터 받는 브랜드 사용료 역시 비슷하다”며 “재계 상황을 감안할 때 동부그룹이 해마다 동부건설에 지불해야할 로열티는 수백억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동부그룹은 뒤늦게 상표권 회수에 나섰다. 동부그룹은 2015년 동부건설과 1차 협상을 벌였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동부건설이 당시 법정관리 중으로 M&A(인수․합병) 절차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양측은 새로운 인수자가 확정되면 상표권 문제를 재논의하기로 했다. 재판부 역시 “자산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매각 문제부터 먼저 매듭지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동부건설은 지난해 상반기 키스톤PE에 매각됐다. 올해 10월에는 법정관리마저 졸업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상표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동부그룹의 한 관계자는 “상표권은 우리가 먼저 제안할 사안이 아니다. 키스톤PE가 아직까지 상표권과 관련된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키스톤PE 측도 “동부 상표권을 통해 큰 이익을 내겠다는 계획은 없다. 아직까지 동부그룹 측과 상표권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 © 연합뉴스

상표권 놓고 동부그룹 Vs 키스톤PE 물밑 신경전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동부그룹과 키스톤PE 측이 상표권 가격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동부그룹 입장에서는 사명을 교체할 경우 수백억 원의 비용이 들 수 있다. 내부 공문에서 명함, 간판 등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부화재의 경우 1990년대부터 지금의 사명을 사용하고 있다. 사명을 바꿀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키스톤PE 역시 마찬가지다. 키스톤PE가 동부건설 인수전에 참가하면서 매력적인 요소로 판단한 근거 중 하나가 브랜드 사용료다. 상표권을 매각하는 것만으로 상당 금액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동부그룹이 사명을 교체할 경우 이 같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때문에 양측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서로 물밑 신경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동부그룹 측은 “금액은 사명 변경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사명 교체의 핵심은 그룹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가격은 그 뒤에 판단할 문제”라면서 “사명 교체 역시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상황을 지켜봐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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