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이어 식용유·설탕도 대란 조짐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7.01.09 10:12
  • 호수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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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로 농산물값 급등…물가 인상 도미노 우려

“가뜩이나 AI(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주문량도 줄었는데, 식용유 가격까지 올랐어요. 그렇다고 치킨값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서울 영등포구에서 13년째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최근 재료값들이 급등하면서 시름이 깊어졌다. 체감 경기가 좋지 않아 연말 특수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상황에서 겨울 비수기를 맞았다. 계란 대란에 이어 식용유 대란까지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어 걱정이 태산이다.

 

자영업자들이 공급받는 식용유 한 통(18리터) 값이 3만원에 육박했다. 기존 납품 가격이 최저 2만4000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20% 정도 비싸진 셈이다. 튀김기를 다 채우려면 두 통 가까이 들어가는데 오른 가격에도 물량 확보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본사에서는 “제조사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아껴 쓰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대형마트를 찾았지만 한 사람당 한 통씩만 판매하는 상황이다.

 

아르헨티나산(産) 식용유 수입이 중단되면서 업소용 식용유 가격이 7~9%가량 올랐다. 공급조차 원활하지 않아 당분간 ‘대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시사저널 고성준

식용유 수입 중단에 원당 가격 ‘고공행진’

 

설 연휴를 앞두고 밥상 물가가 급격히 오를 것으로 보인다. AI 사태로 계란 대란이 벌어진 데 이어 식용유 대란, 설탕 대란 조짐까지 보이고 있어서다.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공급까지 원활하지 않아 당분간 물가가 안정되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1월5일 식품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아르헨티나산 식용유 수입이 중단됐다. 지난해 아르헨티나에서 큰 홍수가 발생해 콩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물을 많이 먹은 콩으로 기름을 짜 품질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가공된 식용유를 직접 수입해 파는 동원F&B와 대상 등 업체들은 공급을 중단했다. 식용유의 원료인 대두를 수입해 직접 식용유를 제조하는 업체들마저 비상이 걸렸다. 대두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오뚜기와 롯데푸드 등은 공급을 이어가고 있지만 2016년 12월말 가격을 약 9% 인상했다. CJ제일제당은 1월말 업소용 식용유 가격을 7~8% 인상할 예정이다. 아직 가정용 식용유 인상 계획을 밝힌 업체는 없지만, 대두 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가정용 제품도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설탕 대란까지 벌어질 조짐이다. 한 대형 식품업체 바이어는 “국제 원당(原糖) 가격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며 “2010년 전후의 설탕 대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바이어의 설명에 따르면, 수입 설탕 가격이 폭등해 CJ제일제당과 대한제당, 삼양사 등 3개 제당사로 주문이 폭주하는 상황이다. 이들 업체 또한 주문량이 급격히 늘어 특정 시점부터 발주량을 제한한다는 정보까지 떠돌았다. 해당 식품 업체는 “설탕 가격 인상을 예상해 평소보다 2배 이상 물량을 확보해 놓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설탕의 원료가 되는 원당가격이 심상치 않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최대 원당 생산국인 브라질과 인도, 태국 등의 작황이 좋지 않다. 인도에서도 계속된 가뭄으로 원당 가격이 4개월 연속 상승했다. 뉴욕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1월4일(현지 시각) 인도분 원당 선물 가격은 파운드(453.6g)당 21센트에 육박했다. 지난해 2월 12센트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70% 이상 급등한 셈이다. 국제설탕기구(ISO)는 “원당 부족분이 최대 502만 톤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2010년 설탕 대란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다. 설탕 가격은 2009년부터 1년 만에 약 150% 급등했다. 원당 가격도 파운드당 30센트에 육박했다. 당시 EU(유럽연합)가 설탕 수출을 추가로 늘리기로 하고, 주요 설탕 수출국인 브라질과 호주 등에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를 시사하는 등 국제 분쟁까지 겪었다.

 

다만 당장 설탕 가격이 인상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최근 원당 가격이 상승하면서 원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지만 당장 인상할 계획은 없다”며 “현재 설탕 가격은 2013년 한 차례 조정을 통해 낮춘 뒤 인상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설탕 대란 조짐도 보이고 있다.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사탕수수 작황이 좋지 않아 원당 가격은 2016년 2월에 비해 70% 이상 올랐다. © 시사저널 고성준

‘애그플레이션’ 전조 현상

 

문제는 식용유나 설탕의 사용 범위가 매우 넓다는 점이다. 단순히 식용유·설탕 가격 인상에 그치지 않고 이를 사용해 제품을 만드는 가공식품 가격까지 줄줄이 오를 수 있다. 당장 식용유 공급 차질로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치킨집이다. 프랜차이즈 업계가 당분간은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닭고기 가격과 조리 비용까지 상승한 만큼 치킨값 인상은 정해진 수순이라는 게 중론이다. 치킨집 외에도 중국집이나 튀김 음식이 주 메뉴인 분식집 등을 운영하는 영세상인들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국내 라면 업계 1위인 농심은 이미 2016년 12월20일부터 비용 부담 압력 때문에 라면의 권장 소비자가격을 평균 5.5% 인상했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식용유 대란이 3개월 정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대란이 지속될 경우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다른 업종과 식용유 원료 제품의 가격 상승 등 생활물가가 더 높아져 가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탕 가격 인상 또한 음료·유제품·과자 등 가공식품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원당 가격이 들썩이자 글로벌 식품 업체들은 이미 가격 인상을 진행했다. 코카콜라는 2016년 11월 콜라와 환타 출고가를 평균 5% 상향 조정했다. 2014년 12월 이후 2년여 만에 또다시 가격을 올린 셈이다. 코카콜라 측은 “유가와 원당 등의 급격한 가격 상승이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제과와 빙과 업체 등도 줄줄이 가격을 올렸다. 국내 베이커리 업계 1위 파리바게뜨도 193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6.6% 인상했다. 원료 가격 상승은 보통 3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판매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올 상반기 다른 식품 가격도 줄줄이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설탕 대란까지 벌어질 경우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 때문에 2007~08년 사이에 발생했던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또다시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애그플레이션이란 곡물 가격 상승으로 식품과 공산품 등 관련 물가가 덩달아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한 시기는 1987~88년, 1997~98년, 2007~08년으로 10년 주기를 보였다. 올해 또한 10년 주기에 포함되는 셈이다. 애그플레이션은 단순히 물가 인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안정적인 식량 수급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 시사저널 미술팀

기후 변화로 현실화되는 ‘식량 전쟁’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는 “국제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1차 가공식품의 가격 인상은 연쇄적인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는 물가를 모니터링해 인상요인이 설득력 있는지 지켜보고 라면 등 생활필수품은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는 등 소비자를 배려하는 가격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4년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인터스텔라》는 기후 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로 인류 멸망을 목전에 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 웜홀, 태양계 밖 세계에 대한 과학적 상상 못지않게 화두로 떠오른 점은 식량부족 상태가 된 지구의 모습이었다.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로선 영화 속 이야기로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기후 변화에 따른 농산물 가격 폭등, 이로 인한 사회불안 요소 등은 이것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최근 식용유 대란과 설탕 대란은 전조 현상에 가깝다. 대두와 원당 가격 상승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상 기후에 따른 결과물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이상 건조와 가뭄, 폭염, 홍수 등으로 농산물값 상승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2010년 통계조사에 따르면, 매년 만성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은 전 세계 9억2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세계 인구 7명 중 1명은 충분한 식량을 얻지 못해 매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기아로 죽는 사람은 매일 약 2만5000명에 이른다. 이는 에이즈·말라리아·폐렴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전 세계 인구가 늘면서 농산물을 현재보다 약 70% 추가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기상조건이 이상 기후를 보이면서 가뭄과 홍수가 빈번히 일어났다. 수요가 급증하는데 곡물 생산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은 “한국은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량안보 취약국”이라며 “자급률 100% 이상을 달성하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처럼 식량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 방안이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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