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인근서 출정 채비 다듬은 반기문
  • 김명진 자유기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11 10:57
  • 호수 14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선 출마 각오 단단…서울 참모진에 차분한 귀국길 당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떠난 뉴욕 한인사회엔 묘한 들뜸이 드리워 있다. 반 총장이 지난 10년간 이스트 허드슨 강변 유엔본부에 자리하고 있을 때와 성격이 다른 들뜸이다. 그 이유는 두말할 나위 없이 한때 이웃했던 사무총장이 한국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 때문이다. 사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음에도 뉴욕 한인들과 반  총장 간 교류는 많지 않았다. 후하게 쳐도 뜸했다고 해야 할 정도다.

 

2006년 가을, 반 총장이 ‘세계의 대통령’으로 뽑히자 한인사회는 축제 분위기였다. 한국인, 내 동포가 유엔의 수장이 돼 내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교포들은 흥에 겨워했다. 이념·지역적 편가름이 만만치 않은 한인사회였지만 환영과 반색에서 차이가 전혀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코리안 드림’을 자기가 성취한 양 득의양양하기도 했다. 마침 삼성 휴대폰 광고가 ‘세계 CM(광고) 1번지’라고 할 맨해튼 브로드웨이 전광판 한복판을 차지하고, 현대차가 미국 전역을 누빌 때라 우쭐하던 코리안의 기세는 더했다. 백인들이 코웃음을 치든 말든 그랬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16년 12월12일(현지 시각) 유엔본부에서 고별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이후 한국 국내 정치를 향한 그의 보폭이 빨라졌다. © AP연합

국내 정치 휘말릴까봐 3년간 특파원 안 만나

 

뉴욕한인회 주최 축하연과 총장 취임을 기념하는 음악제도 열렸다. 반 총장도 이 자리에 나와 교민들의 환호에 응답했다. 그러나 이는 총장 첫 임기가 시작된 2007년 초반 잠시였다. 반 총장이 거리를 둔 것이다. 거리를 둔 게 물론 의도적이었지만, 악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세계를 위해 일해야 할 유엔 수장이 특정 민족과 어울린다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총장 재선 이후 걸핏하면 터져 나오는 ‘국내 정치용’이라는 시비는 당시만 해도 크게 고려할 요소는 아니었다. 이런 반 총장을 교민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이해하는 편이었다.

 

이젠 제19대 한국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해 떠난 반 총장이기에 죄다 부질없는 과거지사가 됐다. 반 총장이 한국 정치와 엮이는 것을 경계하면서 취한 그간의 행보는 처절할 정도다. 첫 임기 5년 차에는 그런대로 지나갔으나 2012년 제18대 대선을 전후해서 다시 호된 홍역을 치렀다. 때문에 반 총장은 교민사회와는 물론 한국에서 오는 국내 요인들과의 만남조차 자제했다. 게다가 일부는 어쩌다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사기 치는 데 이용했다. 그 바람에 가야 하는 행사 참석조차 따지고 또 따져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얼마 전 한국에서 반 총장이 어느 어느 종교와 특별한 관계라는 시비가 나왔는데, 공식 사진이야 어찌 통제한다 하더라도 유니세프 등 유엔기구가 주최한 자선 바자회 등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조차 차단하기는 불가능하니 애를 먹을 만했다. 소심하다는 비난을 감수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말이 우연이 아닐 법하다. 한국 대선과 결코 무관치 않은 게 뻔한데도 이를 물으면 “총장으로서 직무에 충실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는 반 총장이 얄미울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그를 비아냥거리는 ‘기름장어’ 별명은 더욱 단단하게 굳어졌다. 반 총장은 덕분에 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지만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반 총장의 몸조심 극치는 뉴욕 특파원과의 만남이다. 총장 연임에 성공하고 2차 임기가 시작되면서 그를 한국 정치와 연결시키는 목소리가 계속됐다. 여야, 정파를 가리지 않고 상품성 좋은 그를 대선후보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하자 반 총장은 더욱 몸을 사렸다. 뉴스 메이커이면서도 입을 다물고 접근조차 허락 않는 반 총장이 예쁠 리 없었다. 특히 서울 본사의 뉴스 독촉을 받는 한국 특파원들의 심사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욕을 먹으면서도 접촉을 피하던 반 총장이 뉴욕 특파원들과 얼굴을 맞댄 것은 2015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22일. 뉴스를 가장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당사자가 3년 만에 국내 언론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것이다. 

 

첫 임기 때와 달리 차기 대권 주자로 ‘공인’되면서 모습을 감췄던 그가 유엔대표부 대사관저에서 열린 송년모임에 얼굴을 드러냈다. 부인 유순택 여사와 함께 나온 반 총장은 “필요하다면 결단을 내려 힘을 발휘하겠다”고 했다. 그나마 국내 정치와 관련해 가장 진전된 발언으로 꼽히는 게 이 정도다. 그는 이날 ‘최고의 덕목은 물처럼 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강조했었다. 그러면서 “물이 가장 약하고 힘이 없는 듯하지만 물에 당할 게 없다” “물은 절대 힘을 쓰지 않지만 끊임이 없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 번 힘을 발휘할 때는 모든 것을 쓸어낸다”는 주석도 곁들였다. 중용과 겸손을 모토로 했던 반 총장의 ‘물(水)철학’이다.

 

아시아적 가치인 중용과 겸손을 실천 규범으로 삼는 반 총장의 행보는 그러나 도덕적 투사이기를 요구하는 서구 언론들과 늘 부딪쳐 왔다. 그는 본인이 말하는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고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며, 또한 통솔·추진력 부족을 뜻하는 것도 아님을 누누이 역설해 왔다. 조용한 가운데서도 과업을 완수하는 게 요체라는 것이다. 그는 신뢰를 바탕으로 인내하며 설득하는 게 특히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국제관계에서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교민들은 이런 스타일의 반 총장이 진흙탕 선거판에서 배겨날지를 우려한다. 수십 년을 원칙주의자로 살아온 그에겐 전혀 딴 세상이 아니냐는 말이다. 자신의 부친을 교통사고(1991년)로 숨지게 한 사람이 구속되자 “사고 내고 싶어 냈겠느냐”며 풀어주도록 한 ‘온정’도 정치판에서는 장애물이라는 진단이다.

 

그러나 반 총장을 아는 또 다른 측에선 정반대의 주장을 편다. 요란을 떨지 않지만 결국은 해내는 사람이 반 총장이라는 지적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시사저널에서 밝힌 것처럼 “(반 총장 속에) 구렁이가 열 마리는 들어앉았다”는 것이고 때문에 전혀 새로운 세계지만 헤쳐 나가는 데 문제가 없다고 내다본다.

 

2016년 12월30일 임기 마지막으로 유엔본부에 등청한 반기문 사무총장이 직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 AP연합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이 비서실장 역할

 

임기 마지막 날까지 총장으로서 직무를 다하겠다고 누차 언명해 온 반 총장은 2016년 12월12일 유엔 총회에서 고별연설을 가진 뒤부터는 사실상 ‘자유인’의 행보를 걸었다. 연일 거듭되는 회원국들 주최 환송 만찬 참석과 유엔 출입기자들과 공식 기자회견(12월16일)을 가진 그는 12월20일 드디어 한국 언론들과 만나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밉도록 시치미를 떼던 반 총장은 뉴욕 특파원들과의 고별 회견에서 “내 한 몸 불사르겠다”고 했다. 그는 특정 정당이나 정파와의 연대 등 향후 정치적 선택이나 진로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으나 “촛불로 나타난 민심은 국민의 좌절과 분노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등 권력 의지만은 확실히 했다.

 

엊그제와는 완전히 달라진 걸음을 걷는 반 총장. 그러나 귀국 일정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1월13일 열리는 뉴욕한인회 신년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때문에 12월29일 한인회장 등 간부들이 유엔을 방문해 기념패를 전달하는 것으로 뉴욕 교민들과의 석별을 대신했다. 그가 현직 총장으로 참석한 마지막 행사는 12월31일 밤 타임스스퀘어 광장에서 열린 ‘볼 드롭’. 한국의 ‘보신각 타종’과 유사한 것으로, 반 총장 부부는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 부부와 크리스털 볼 드롭 버튼을 누르며 10년의 총장 임기를 마쳤다. 금요일인 12월30일, 유엔 청사에 나와 “내일 자정이 지나면 신데렐라처럼 모든 게 달라진다”고 했던 그의 조크대로 모든 게 달라졌다. 세계 어디를 가도 국가원수급 의전과 대접을 받다가 욕설, 때론 폭력까지 난무할 진흙탕 대선전에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1월3일 뉴욕에 위치한 사무총장 관저에서 뉴욕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그는 한국 시각 1월12일 오후 5시 아시아나 항공기편으로 귀국한다고 예고했다. 대선전 출정을 선포한 것이다. 이 자리에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컬럼비아대 교수)를 배석시킨 것은 경제, ‘부의 불평등 해소’에 나서겠다는 암시다.

 

반 전 총장은 뉴욕 인근 산장에 머물며 대선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그간 수십 개 지지 세력이 각종 보고서를 보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2016년 연말부터 한국의 핵심들과 내밀하게 접촉해 온 반 전 총장은 대선 전략의 큰 그림은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원수 유엔 군축담당 사무차장이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은 귀국 메시지와 귀국 후 일주일간의 동선. 반 총장의 뉴욕 체류 중 그를 뒷바라지해 온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의 귀띔이다. 금융·부동산 개발에 종사하는 그는 반 전 총장이 혹시 지지자들의 요란한 환영으로 일반의 반감을 부를 것을 우려해 차분함을 당부하고 있다고도 했다.

 

 

“반기문, 예전과 전혀 다른 ‘투사’ 됐다”

 

“반 총장님은 각오가 단단하더군요.” 2016년 12월27일 반 총장을 면담했던 J박사의 말이다. 미주한인교수협의회 리더인 J박사는 반 총장의 대선 의지와 건강을 묻는 질문에 “일단 결단을 내려서인지, 전에 알던 반 총장과는 전혀 다른 투사가 됐더라”고 대답했다. “마침 시사저널이 보도한 박연차 관련 기사가 화제가 됐다”고 운을 뗀 J박사는 “반 총장은 ‘대선후보에 대한 엄밀한 검증은 당연하며, 자신은 어떤 검증도 자신 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는 또 “반 총장이 신경 쓰는 것은 ‘대부분 피의자들이 죄가 없다고 했지만 사실로 드러나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아닌 것으로 판명돼도 국민들이 믿지 않는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고 전했다. 

 

J박사는 반 총장이 아들 우현씨(39)를 특전사에 자원입대시켰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당시 반 총장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는데 국방비서관조차 수석의 아들이 입대한 사실을 몰랐을 정도”라고 말했다. 반 총장과 교분이 두터운 기업인 박아무개 회장(57)은 “반 총장을 ‘개인적’으로 돕고 싶어도 본인이 극구 마다했다”면서 “그래서 각국 외교사절들을 위한 만찬이나 음악회 개최 등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고 털어놨다. 뉴욕·뉴저지 등 미 동부 한인사회는 반 전 총장이 뉴욕에 있을 때보다 더 그를 주시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