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 입수…반기문 동생·조카 뉴욕서 뇌물 혐의 기소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7.01.11 16: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큰아버지 거론하며 영향력 행사 정황도

1월14일 한국에 입국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됐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가도에 급제동이 걸렸다. 반 전 총장의 동생 반기상씨(69)와 조카 반주현씨(미국명 데니스 반․38)가 1월10일(현지시간) 뇌물 혐의로 미국 현지 검찰에 기소됐기 때문이다. 뉴욕남부 연방검찰은 이날 오전 반기상씨와 반주현씨 등을 8억달러 규모의 건물 매각과 관련한 뇌물수수 및 사기 혐의 등으로 전격 기소했다. 반주현씨는 뉴저지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이미 체포돼 이날 오후 뉴욕남부 연방법원에 출두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의 혐의는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과 돈세탁, 온라인 금융사기, 가중처벌이 가능한 신원도용 등이다.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는 최고 징역 5년까지 받을 수 있으며, 돈세탁 혐의는 최고 징역 20년도 가능하다. 만약 반씨 부자의 혐의가 입증되면 중형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남부 연방검찰이 배포한 반기상·주현 부자에 대한 기소관련 보도자료(오른쪽)와 미국남부 연방법원에 제출된 해당 사건의 공소장.

‘랜드마크 72’ 매각 대가로 500만 달러 커미션 약속

 

공소장에 따르면 반씨 부자가 공모를 한 것은 2013년에서 2015년 사이다. 당시 반기상씨가 고문으로 있던 경남기업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 경남기업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1조원 이상을 들여 베트남에 완공한 초고층빌딩 ‘랜드마크 72’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랜드마크72는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반기상씨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하는 아들 반주현씨를 랜드마크72의 매각 대리인으로 고용하도록 경남기업에 추천했다. 실제로 경남기업은 반주현씨가 운영하던 부동산회사 ‘콜리어스’와 독점적 중개계약을 체결했다. 반주현의 회사가 랜드마크72 매각에 성공할 경우 500만 달러(한화 약60억원)의 성공 커미션을 주는 조건이었다. 

 

이후 반씨 부자는 매각에 힘을 써 줄 수 있는 고위층을 뇌물로 포섭했다. 외신에 따르면 반씨 부자는 중동에 있는 한 국가의 국부펀드가 이 빌딩 매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익명의 중동 관리에게 뇌물을 건네는 방법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또 한 사람의 힘을 빌렸다. 이 중동 관리의 대리인을 자처한 말콤 해리스라는 인물이었다. 반씨 부자는 해리스를 통해 8억 달러(한화 9600억원)에 빌딩을 매각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반기상 부자는 2014년 4월 중동 관료에게 선불로 50만 달러를 주고, 매각 성사 여부에 따라 별도로 2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해리스와 합의했다. 수사 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조치도 있었다. 반씨 부자와 해리스는 향후 주고받을 이메일과 문자에 ‘뇌물’ 대신 ‘장미(rose)’라는 단어를 쓰도록 합의했다. 

 

하지만 해리스의 정체는 ‘사기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예술·패션 컨설턴트이자 블로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중동의 관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다. 해리스는 반씨 부자에게 외국 관료의 서명이 담긴 공문을 이메일로 수차례 보냈다. 검찰 조사 결과 이 메일은 모두 위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동 관리에게 전달하기로 한 50만 달러 역시 미국 브룩클린 지역에 있는 고급 펜트하우스를 임대하는 데 사용됐다. 

 

경남기업과 랜드마크72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실무를 담당했던 반주현씨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당시 중동의 국부펀드의 빌딩 인수가 임박한 것처럼 경남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알렸다. 반주현씨는 매각이 임박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카타르 관리에게서 받은 것처럼 위조하기도 했다. 경남기업은 2015년 3월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성완종 전 회장은 회사 재무상태를 속여 자원개발 지원금을 타낸 혐의로 구속 위기에 놓이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남기업이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세운 초고층 건물 '랜드마크72'의 모습. ⓒ 연합뉴스

반기문 전 총장까지 검찰 수사 확대 가능성

 

결국 반주현씨는 지난해 10월 경남기업으로부터 제소를 당했다. 반주현씨가 제시한 카타르투자청 명의의 인수의향서가 성 전 회장 사망 후 위조로 들통 나면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한 것이다. 한국 법원은 반주현씨에게 계약서류 조작에 따른 불법행위의 책임을 물어 59만 달러(약 6억5000만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친동생과 조카의 기소로 반 전 총장도 코너에 몰렸다. 재판 과정에서 반주현씨가 큰아버지인 반기문 전 총장의 이름을 언급하며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나왔기 때문이다. 반주현씨는 경남기업에 보낸 이메일에서 반 전 총장을 언급하며 “그를 통해 카타르 왕실과 접촉해 랜드마크72를 매각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남부 연방검찰은 상당히 오래 전 이 사건을 인지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퇴임 시기에 맞춰 전격적으로 반 전 총장의 동생과 조카를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반 전 총장에 대해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