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총리 “경제계에도 헌재 있다면 한국 경제는 탄핵감”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7.01.1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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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비공개 세미나서 밝혀…“국내 대기업 D(개발)만 있고 R(연구)은 없다” 지적

한국 경제가 신음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는 게 문제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에서 2.6%로 내려잡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수백억원이 넘는 유보금을 곳간에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들은 “투자할 곳이 없다”고 아우성친다. 반면 중소기업은 “투자할 곳은 많은데 돈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해법은 없는 것일까. 점점 식어가고 있는 ‘한국호’의 성장 엔진을 재점화시키고,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경제학자이자 전직 국무총리였던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도 현재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임을 지적했다. 그는 1월11일 서울 중구의 모처에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서 “경제계에도 헌법재판소가 있다면 한국 경제는 탄핵감”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 © 시사저널 임준선

대기업서 중소기업으로 돈 흐르는 생태계 조성 시급 

 

그는 우선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부터 꼬집었다. 현오석․최경환․유일호 등 세 명의 경제부총리가 소득 증대를 통한 소비 확대를 꾀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현 상황에서 무작정 소비만 늘리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게 정 전 총리의 판단이다. 재계 생태계 역시 마찬가지다. “10대그룹의 유보금은 450조원에 이른다. 30대 그룹으로 범위를 넓히면 590조원이다. 이 돈이 돌 수 있는 생태계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정 전 총리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전체 사업체의 99%, 고용의 89%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과 반대로 중소기업은 ‘투자할 곳은 많은 데 돈이 없다’고 아우성치고 있다”며 “대기업이 쌓아놓은 돈이 자연스럽게 중소기업으로 흘러가게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그는 과거 영국 싱크탱크 데모스(Demos)가 주최하는 컨퍼런스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국과 중국, 인도의 R&D(연구․개발)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렸다. ‘쫓아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의견과 ‘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평가는 대동소이했다. ‘한국 기업들이 D(개발)에만 돈을 쓰면서 R(연구)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는다’는 게 참석자 대부분의 평가였다.

 

그는 “한국의 연구 및 개발비 지출은 세계 5위 수준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설비 투자에만 집중되고 있다”며 “이 돈을 일정 수준 중소기업으로 돌린다면 양극화나 소비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11년 그가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시절 주장했던 ‘초과이익 공유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내가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도 경제학 공부를 계속 해왔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정 전 총리 역시 적지 않게 곤욕을 치렀다. 당시 그가 제안했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이나 ‘종소기업 위주의 정부구매’ 등은 현재 상당 수준 궤도에 올랐다. 국회에서도 법제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한 경제계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공산주의자가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다.

 

그는 “초과이익 공유제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보상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환경이 치열해지면서 ‘코스트 리덕션(원가 절감)’이 재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대기업들은 우선적으로 납품 가격 후려치기를 원가를 절감에 나섰다. 그는 “한때 9%대에 이르는 납품 업체의 이익률이 현재 3%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한 중견기업의 오너가 나를 찾아와 ‘이민을 가겠다’고 토로할 정도”라며 “납품가 후려치기를 통해 이익을 냈다면 일정 부분 협력업체에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개념을 ‘사회 작동 원리’라고 표현했다.

 

요컨대 삼성전자는 2010년 17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연초 목표인 10조원보다 7조원이 초과된 것이다. 이중 1%만 협력업체에 지원해도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총리직 제안을 수락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 전 총리는 “이 대통령이 5번이나 총리직으로 제의해 미안한 감도 없지 않았다. 한편으로 전공을 살려 양극화를 완화하고 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물론 초과이익 공유제는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이 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교육 제도 또한 손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 전 총리는 “삼성과 대우그룹의 가장 큰 차이는 인적 구성”이라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모교인 경기고 출신을 대부분 핵심 보직에 배치했다. 삼성은 반대다. 인적 구성이 다양했기 때문에 지금의 초일류 기업을 만들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 ‘통일 대박’ 외치며 ‘쪽박’ 만들어” 

 

남북 경협을 확대하는 것도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 동력을 재가동시킬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다. 그는 “얼마 전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박 대통령은 ‘통일 대박’을 외치면서 ‘쪽박’을 만들었다”며 “그나마 개성공단도 폐쇄될 때까지 완성률이 40%에 불과했다. 해주와 신의주, 원산까지 남북 경협을 확대해야 자연스럽게 통일이 가능하다. 통일이 되더라도 남북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퍼주기’ 논란에 대해서는 그는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과거 서독이 20년간 동독에게 지원한 금액이 700억 달러에 달한다”며 “남과 북의 경제력이 40배 이상 차이나는 상황에서 일정 부분 지원은 동반 성장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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