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15년간 지옥 겪었는데, 가해자는 고작 7년형이라니”
  • 김지영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19 14:55
  • 호수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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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중증 피해자 임성준군과 어머니 권미애씨 눈물의 인터뷰

임성준군(14)의 폐는 30%밖에 기능하지 않는다. 폐 기능이 떨어지면서 폐동맥 고혈압도 생겼다. 호흡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임군은 심장쇠약·골다공증까지 앓고 있다. 임군 몸무게는 28㎏이다. 또래 아이 몸무게의 절반에 불과하다. 임군은 자기 몸무게의 절반 가까이 되는 의료용 산소통을 달고 휠체어를 타야 외출할 수 있다. 밖에 나가더라도 8시간이 지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산소통 한 통은 최대 8시간 사용하면 바닥난다. 임군은 지난해에만 호흡 곤란으로 두 차례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주치의는 폐 이식 수술을 권유했다. 어머니 권미애씨(41)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날부터 날마다 악몽을 꿨다. 권씨는 “성준이 물건만 봐도 혹시라도 유품이 되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1월11일 용인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임성준군과 어머니 권미애씨를 만나 최근의 법원 판결과 특별법 입법 과정 등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 시사저널 이종현

아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엄마 도와줘”

 

권씨는 지난해 5월 옥시레킷벤키저(옥시) 가습기살균제 피해 공식 사과 기자회견에 찾아와 오열했다. 권씨는 “만에 하나 성준이가 잘못되면 옥시 앞에서 분신자살을 하겠다”고 절규했다. 1월6일 권씨는 다시 절망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가해자들을 솜방망이 처벌했다. 1심 재판부가 책임자들에게 내린 형량은 신현우 전 옥시 대표 징역 7년형, 오유진 전 세퓨 대표 징역 7년형, 노병용 전 롯데마트 사장 금고 4년형 등이었다. 죄질에 비해 가벼운 형량에 권씨는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존 리 전 옥시 대표(49)는 증거불충분 등의 사유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1월11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자택에서 임군과 권씨를 만났다. 집 안 곳곳은 얼마 전 생일을 맞은 임군의 파티 흔적과 아이들이 그린 그림 등 여느 아이들 집과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임군의 호흡기 줄이 집 안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권씨는 인터뷰 내용을 아들이 듣고 상처받을까 걱정했다. 재판정에선 우는 엄마를 달래는 의젓한 아들이었지만, 집에선 동생과 장난치는 여느 10대 소년이었다.

 

가습기살균제 공판이 해를 넘긴 지난 1월6일. 주요 가해 기업 피의자들의 죗값은 피해 가족들과 성준이가 고통스러워했던 시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형량이었다. 권씨는 선고 당일 법원에 가기 전 아들과 울지 않기로 약속했다. 스스로도 평정심을 잃지 말자고 수차례 다짐했다. 하지만 판사가 신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자 결국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지고 말았다.

 

권씨는 “성준이는 지금까지 15년간 지옥에서 살았다. 성준이가 살아온 평생”이라며 “15년을 생고생하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형량은 그 절반도 안 되는 고작 7년이라니 너무 화가 났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법원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건 아니지 않냐고 판사에게 따지고 싶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특히 존 리에게 선고된 무죄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임군의 동생은 2006년생이다. 당시는 존 리가 옥시 대표로 재직하고 있었다. 다행히 둘째는 큰 증상이 없지만 권씨는 둘째에게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권씨는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다. 권씨는 “그런 위험한 제품을 계속 팔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무죄가 나올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임군은 지금도 3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 한 번씩 갑자기 나빠질 때가 있다. 지난해 6월쯤에도 호흡곤란이 왔다. 2004년 처음 병원에 들어갈 때와 같은 증상이었다.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천식이 일어나더니 숨을 못 쉬었다. 폐 기능이 떨어지고 염증수치가 높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아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엄마 도와줘”라고 말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임군은 숨을 쉬려고 들이마시는데 들숨이 안 되서 고통스러워했다. 오랫동안 옆에서 돌봐 왔지만 그런 때는 정말 속수무책이다. 권씨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가 나보다 먼저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며 그게 가장 두렵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존 리 전 옥시 대표가 1월6일 객관적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유일하게 사과 안 한 곳이 대한민국 정부

 

권미애씨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절망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형식적이나마 사과했다. 검사들도 늑장 수사에 대해 사과했다. 국회의원 일부도 국민을 지키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그는 “유일하게 사과하지 않은 곳이 정부다. 자기가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사과하느냐고 당당히 말하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들어간 치약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권씨는 “가습기살균제로 수많은 아이들이 죽고 아픈데 그 성분을 또 팔고 있다”며 “화학물질을 허가할 때 자기들이 먼저 써 보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대한민국 정부는 무서운 곳”이라고 항변했다.

 

졸속으로 통과된 특별법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정부 과실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해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보험 혜택도 포함되지 않았다. 권씨는 “성준이 같은 상해 피해자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검진받고 치료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가 사과는 못할망정 피해자들에게 의료지원조차 못해 준다니 원통할 따름”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빠진 특별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들어가야 기업들이 앞으로 국민 무서운 줄 알고 물건 하나를 만들더라도 조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준군은 기업과의 배상 합의도 불투명하다. 앞으로의 치료 과정이 어떨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만 해도 추산하기 어렵다. 임군은 피해 정도가 상해 중에서도 중증에 속한다. 옥시가 내놓은 배상안으로는 부족하다. 옥시는 지난해 성인 피해자들에게 최대 3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영유아나 어린이 피해자의 경우 위자료를 포함한 10억원을 일괄 배상하겠다고 밝혔다. 권씨는 “처음에는 옥시 관계자만 봐도 눈물이 나고 화가 나서 대화할 수 없었다. 죄송하다고 하면 ‘이제 와서’라는 생각이 들고, 아무 말 안 하면 입 다물고 있는 꼴이 기분이 나빴다.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고 심경을 밝혔다. 권씨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권씨는 새해를 시작하며 아들이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사실 해마다 성준이가 건강해져서 호흡기 떼고 걸어 다닐 수 있길 바랐는데, 이제는 이대로 잘 버텨만 줘도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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