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돌린 삼성 “전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송응철·박준용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7.01.23 14:19
  • 호수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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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국정 농단의 객체 아닌 주체” 특검의 창 vs “권력 앞에 기업은 약자” 삼성의 방패

“특검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은 확실해 보이지만, 문제는 법원에서 과연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다.” 이 부회장이 1월12일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팀의 조사를 받을 당시 한 검찰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특검팀의 영장청구 가능성을 높게 본 까닭에 대해 수사가 상당부분 진척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민 여론을 감안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놨다. 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경우 자칫 ‘삼성 봐주기 수사’라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李 구속→靑 압수수색→朴 대면조사’ 시나리오

 

결국 특검이 1월16일 법원에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6대4’ 정도로 법원이 영장을 기각할 확률을 높게 전망했다. 법리적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무엇보다 증뢰죄(贈賂罪)의 경우 수뢰죄와 달리 대부분 불구속 수사가 이뤄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뇌물을 받은 사람에 비해 준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엄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장 발부에 40%의 비교적 높은 가능성을 둔 것은 국민적 여론과 현재의 정치국면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법리적인 판단이 원칙인 법원이라도 현 시국에선 영장을 기각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까닭에서였다.

 

국민의 이목은 법원에 집중됐다. 그리고 법원은 1월19일 새벽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사유를 밝혔다. 최순실씨 일가에 대한 수백억원대 자금 지원이 뇌물이 아닌 강압에 의해 이뤄진 행위라는 삼성 측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1월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하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을 두고 공식 발표되지 않은 기각의 이유가 뒤늦게 논란이 됐다. ‘뇌물 수수자(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사 미비’ ‘피의자(이 부회장)의 주거 및 생활환경 고려’ 등이 적힌 것으로 1월20일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법원이 불소추특권을 활용해 조사를 거부하는 박 대통령의 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또 법조계 일각에서는 증뢰죄 피의자의 ‘주거 및 생활환경’을 이유로 구속할 수 없다면, 수사가 진행 중인 다른 기업 총수들도 역시 구속하기 힘든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법원 측은 이에 대해 “기각 사유는 수사 과정과 이해도를 감안해 가다듬어서 발표한다”면서 “주거환경 부분은 관용적 표현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기재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번 영장 청구 기각으로 특검팀의 수사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검팀 수사의 ‘종착지’는 박 대통령이다. 삼성을 비롯한 롯데·SK·CJ 등 대기업에 대한 수사는 박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한 ‘경유지’에 불과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특검팀은 특히 삼성 수사에 집중해 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 가운데 가장 혐의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당초 특검의 시나리오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수사와 더불어 청와대 압수수색,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 대한 법리 검토에 집중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 구속영장 기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적용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특검팀은 2월초 박 대통령을 대면조사 할 계획이었다. 검찰 안팎에선 대면조사 일정이 2월 중순 이후로 연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특검팀은 2월말까지인 수사기간을 3월말까지 한 달 더 연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검 측은 “아직 수사기간 연장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특검팀 내에선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자는 ‘강경론’과 수사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신중론’이 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 뇌물죄’를 정조준하기 위해선 어떤 방식으로든 이 부회장에 대한 혐의 입증을 성공시켜야 한다. 특검팀을 밀착 취재하는 방송사의 한 중견언론인은 “기본적으로 특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번 국정 농단 사태를 막강한 정보력의 삼성이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비선실세 최순실을 꼬드겨 박 대통령을 농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삼성이다. 특검의 창(槍)이 뚫어야 할 삼성의 방패는 결코 만만치 않다. 무섭게 몰아붙이는 특검의 기세에 당황하던 삼성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한숨을 돌리며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내부적으로는 “전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라는 말도 나온다. 삼성은 그룹 계열사에 포진한 변호사만 300여 명에 달한다. 이 부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방어하는 변호인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의 송우철·문강배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판사 출신인 이들은 1월18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 기각을 이끌어낸 공신이기도 하다.

 

 

“삼성이 최씨 꼬드겨 박 대통령 농단한 것”

 

송 변호사는 법원 재직 당시 법리에 정통한 ‘선두주자’로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과 수석재판연구관,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문 변호사는 ‘BBK 주가조작 사건 정호영 특별검사팀’에서 특검보를 맡은 바 있으며, 윤석열 특검팀 수사팀장과 서울대 79학번 동기로 막역한 사이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전관 출신의 굵직한 변호사들이 다수 변호인단에 포진해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최순실씨 일가에 대한 삼성의 지원이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삼성 측 변호인단의 변론이 일부 받아들여지면서 박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연결고리를 하나 잃었다”며 “특검팀 수사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특검팀이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수사 방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수 있다. 현재대로라면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하더라도 논리를 다시 세우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특검 입장에서는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2월말에 끝나는 수사 종료기간까지 시간이 촉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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