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 톺아보기-①] 문재인 前 더불어민주당 대표, “나만큼 준비되고 검증받은 후보 있나",
  • 소종섭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24 14:46
  • 호수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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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이번 호부터 ‘대선 주자 톺아보기’를 시작합니다. 변수는 있지만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는 흐름입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대선 주자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 필요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반면 시간은 짧습니다. 나라를 이끌 대통령 후보들을 심층 탐구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호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다음 호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순으로 진행합니다. 순서나 대상 인물, 구성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문재인)의 기세가 거침없다. 지지도가 30%를 넘겼다. 이 때문인지 ‘확장성’ 논란도 수그러드는 모양새다. 이참에 ‘대세론’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노림수도 엿보인다.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소장 조윤제 서강대 교수) 포럼을 무대로 굵직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벌써 재벌개혁, 일자리 만들기 등과 관련해 네 번째 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준비된 후보’ ‘검증이 끝난 후보’라고 주장하는 문재인은 확실히 다른 대선 주자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그는 1차 검증을 거쳤고 높은 인지도와 강력한 지지층을 갖고 있다. 이미지도 서민적이다. 그러나 지도자로서의 리더십과 관련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1월18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성장 정책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문재인은 누구인가

한 개인의 성장사는 단순히 그 사람이 어떻게 커왔는가가 아니다. 그 과정은 곧 그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 의사 결정 스타일, 결단력, 소통, 정무적 판단 능력 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총화가 성장사이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또렷이 목도했다.

 

 

어린 시절 상징하는 단어 ‘가난’ 

 

문재인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함흥농고를 나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함흥시청 농업과장을 지냈다. 1950년 12월 함흥철수 때 미군 LST선박을 타고 경남 거제 피난민 수용소로 내려와 문재인을 낳았다. 문재인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조금 전에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부산에서 문재인의 부친은 양말 공장에서 양말을 사 전남 지역 판매상들에게 팔았으나 빚만 잔뜩 졌다. 문재인은 자서전 《운명》에서 “그것으로 아버지는 무너졌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이후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썼다. 가슴 깊은 곳에서 가난은 그를 주눅 들게 했다.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이 시키면 마지못해 대답했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 손을 들고 발표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상징하는 단어 ‘책’

 

중·고등학교 6년간 그에게 있어 최고의 친구는 책이었다. 문재인은 “지금도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어떨 땐 활자중독처럼 느껴진다. 여행을 가도 가져가는 책 때문에 짐이 더 무거워진다. 쉴 때도 손 닿는 곳에 책이 없으면 허전하다”고 말한다. 당시 대표적인 야당지였던 동아일보를 읽던 아버지에게 영향받아 사회 비판 의식도 키웠다. 고3 때는 술, 담배를 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 상징하는 단어 ‘저항’ 

 

경희대 법대 재학 시절 그의 의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은 고(故) 리영희 선생이었다. 리영희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는 문재인의 뇌를 강하게 충격했다. 3학년 가을, 경희대의 유신 반대 시위를 이끌었다. 1975년 4월에는 직선제 총학생회를 출범시키고 총무부장을 맡았다. 1975년 8월 강제징집되어 입대했는데 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됐다. 여단장은 전두환, 대대장은 장세동이었다. 주특기는 폭파였는데 6주간의 특수전 훈련을 마칠 때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는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변호사 시절 상징하는 단어 ‘노무현’

 

1980년 5월17일 신군부가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문재인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돼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문재인은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다. 1980년 8월 대학을 졸업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마치면서 법무부장관상을 받고 판사를 희망했으나, 시위 전력으로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검사를 할 수도 있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사람을 처벌하는 일이 내 성격에 맞지 않다고 느꼈다. 사람을 처벌하는 일은 늘 부담스럽고, 마음이 불편했다. 내 무른 성격 때문에 검사는 안 맞겠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1980년대 변호사 시절 © 문재인 제공

문재인은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부산에서 활동하던 노무현 변호사(노무현)를 만났다. 운명적 만남이었다. 문재인은 그 첫 만남을 “소탈했고 솔직했고 친근했다.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 같은 게 있었다”고 기억했다. 두 사람은 사건을 다루는 자세와 태도 같은 게 잘 맞았다. 기질은 달랐다. 문재인이 조사에 응하면서 정당성을 주장하는 식이었다면, 노무현은 아예 진술과 서명 날인을 거부하는 식이었다. 

 

 

정치인 문재인의 상징어 ‘친노’

 

1988년 4월 노무현은 13대 국회의원이 됐다. 부산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던 문재인은 2001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노무현을 도와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은 문재인에게 민정수석비서관을 맡긴다. 문재인은 ‘민정수석으로 끝낸다’ ‘정치하라고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민정수석을 맡았다. 그러나 문재인은 이후 시민사회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고 노무현 서거 이후 친노 세력의 상징이 되면서 운명처럼 대통령에 도전하는 길을 걷게 됐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부인 김정숙 여사 © 문재인 제공

정무 능력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에 맞는 메시지를 던지는 정무적 능력과 관련해서 문재인은 후한 평가를 받고 있지는 않다. ‘노무현’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때로 감정의 격랑이 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가 2013년 4월9일 발표한 ‘대선 패배 원인과 민주당의 진로’라는 보고서는 문재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문재인 전 후보는 당 지도부의 전면퇴진론이나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과 같은 중요한 국면에서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모진 운영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문재인 후보는 본인의 이미지와 캐릭터를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했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문재인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작성한 보고서라는 점을 감안해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2016년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 발간 당시 논란도 주목된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한의 의사를 타진해 보자고 문재인이 결정했느냐 여부가 쟁점이 됐을 때 문재인은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2016년 4월8일 총선을 앞두고 광주를 방문해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둔다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문재인의 리더십과 관련해 제기되는 물음의 상당 부분은 정무 능력과 관련한 그의 상황 판단력과 결단력, 메시지 능력에 대한 의문이다. 대선 재수를 거치면서 현장에서 과거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달라진 변화다.

 

 

소통 능력

안민석 의원의 말이 주목된다. 안 의원은 2015년 11월, 교통방송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는 친노-비노 대립이 심할 때로 비노(非盧)인 이종걸 원내대표와 문재인의 갈등이 불거졌던 시기였다. “문재인 대표께서는 책을 그만 사랑하셔야 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으시거든요. 정치라는 게 책을 만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선적으로 이종걸 원내대표하고 두 분이 더 자주 소통을 하셔야 합니다. 서로 바쁘셔서 그런지 몰라도 식사를 하신 적이 거의 없거든요. 저는 문재인 대표님이 사람을 더 많이 만나시면 본인에게 더 큰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만나 직접 소통하는 게 약하다는 지적이다. 그와 일하거나 대화해 본 많은 정치인들이 “문재인에게 답답함을 느낀다”고 토로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김종인, 안철수, 박영선, 박지원 등 그와 이런저런 관계가 있던 이들이 멀어진 것도 그의 소통·공감 능력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 보고서는 ‘특히 (문재인) 후보 비서실은 사적 인맥이 공조직을 통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평가했다. 패권주의, 특정 인맥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비판하는 말로 해석된다. 박영선 의원도 자신의 책 《누가 지도자인가》에서 2012년 대선 때와 관련해 “외부적으로는 문재인 후보의 고집스러운 면과 오랜 측근들의 인의 장막이 비판의 대상이었다”고 썼다.

 

2005년 10월30일 노무현 대통령이 북악산에 올라 문재인 민정수석(오른쪽 두 번째)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정책 능력

문재인은 2016년 10월6일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을 출범시켰다. 1000여 명의 각 분야 교수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국민성장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권력기관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재벌개혁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등에 대한 정책 심포지엄을 열었다. 2012년과 비교해 훨씬 정책에 대한 구상이 가다듬어져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포퓰리즘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정책적인 면에서 다른 대선 주자들에 비해 준비된 모습, 앞서가는 모습,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판을 깔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는 흐름 속에서 이런 부분은 문재인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집권할 경우 분야별 정책을 즉시 현실화할 수 있는 바탕을 어느 정도 다져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정 조달 방안과 정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질 사회 갈등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등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방안들이 보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비전 제시 능력

문재인은 가슴을 뛰게 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가 그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메시지가 명료하지 못하다. 확실히 노무현과는 다르다. 인간적으로 신뢰감을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무언가 유약한 이미지,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같은 것을 던져준다. 리더라기보다는 참모가 맞을 것 같다는 문제 제기다. 이것은 일부 분석가들이 얘기했던 ‘문재인은 친노의 대표 선수일 뿐 리더는 아니다. 문재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력이 아니라 세력이 문재인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분석과도 맞닿아 있다.

 

문재인은 최근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노무현’보다 ‘국민’에 방점을 찍었다. 노무현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입니다”라고 문재인을 평했던 것처럼, 문재인의 후광에는 노무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이 ‘노무현 시즌2’를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대선 재수를 계기로 문재인은 ‘문재인의 정치’를 선보이고자 하는 권력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가 노무현이라는 벽을 뛰어넘는 통합적 비전과 가치를 현실화할 수 있는가가 그의 정치적 비전과 운명을 가를 것이다. 

 

※ 다음 호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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