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범죄조직 왜 한국인 노리나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24 15:53
  • 호수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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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 ‘청부 살해’ 만연…부패 경찰 범죄조직과 연결돼 있어

필리핀에서 실종됐던 50대 한국인 사업가는 결국 납치된 후 살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충격적인 것은 납치 사건의 3인조 범인들 모두 현지 마약 단속 경찰관이었다는 사실이다. 필리핀 앙헬레스에 거주하며 사업체를 운영하던 지아무개씨(53)는 지난해 10월18일 자신의 집 근처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경찰관인 범인들은 마약 단속을 한다며 가짜 압수수색영장까지 제시했다. 이들은 지씨를 납치한 후 곧바로 목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는 증거인멸을 위해 시신을 전직 경찰이 운영하는 화장터에서 소각했다. 범행 2주일이 지난 후에는 지씨의 가족에게 800만 페소(약 1억9000만원)를 요구했고, 500만 페소(약 1억2000만원)를 받은 후 잠적했다.

 

범인들은 현직 경찰과 전직 경찰 1명 등 총 8명이었다. 이들은 지씨가 사업에 성공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몸값을 노리고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필리핀 당국은 핵심 용의자인 현직 경찰 한 명의 신병을 확보하고, 나머지 용의자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같은 달 11일 필리핀 바콜로시(市) 외곽에 있는 사탕수수밭에서 현지 농부가 한국인 남녀 시신 3구를 발견했다. 필리핀 경찰에 따르면, 시신은 테이프로 손발이 묶여 있었고,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숨져 있었다. 이들은 박아무개씨의 소개로 필리핀에 10억원 정도를 투자했으나 이익이 나지 않자 사이가 틀어졌고, 박씨는 경남 창원에 있는 김아무개씨한테 1억원을 주는 조건으로 청부 살해를 의뢰했다. 같은 달 29일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200km가량 떨어진 바기오시에 거주하는 교포 남성 한 명이 운전 도중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렇게 지난해 10월에만 우리 국민 5명이 필리핀에서 살해됐다.

 

필리핀에서 살해된 한국인은 2012년 6명에서 2013년 12명으로 급증했다. 2014년에는 10명으로 낮아졌다가 2015년에는 11명으로 3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지난해도 8명이 살해됐다. 납치와 감금, 강도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 연합뉴스

필리핀 도주 한국인 범죄자 600명 이상

 

왜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우선 필리핀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 중 한 곳이다. 필리핀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연간 100만 명이 넘는다. 현지에는 10여만 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 한국인 범죄자의 도피처로도 유명하다. 7000여 개의 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필리핀으로 달아나면 추적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 필리핀으로 도주한 한국인 범죄자가 600명이 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필리핀은 또 총기 소지가 허용된 나라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돈을 주고 총을 구입할 수 있다. 가내 수공업 형태의 불법 사제총기도 넘쳐난다. 하지만 치안은 무척 불안하고 부패가 만연해 있다. 사업가 지씨 납치살해 사건에서 보듯이, 범죄조직과 결탁한 부패 경찰들도 상당하다. 필리핀 반군들은 조직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청부 납치·살해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한국인 범죄 피해자가 증가하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안양 환전소 살인 사건’ 피의자 김성곤씨가 2015년 5월13일 인천공항을 통해 8년 만에 필리핀에서 국내로 송환되고 있다. © 연합뉴스

필리핀에서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결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렇다 보니 청부 납치·살해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재력가나 권력자가 사적으로 고용한 자경단(自警團)도 활개치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남부 디바오시 시장 시절 자경단을 운영했던 사실이 전직 단원의 고백을 통해 드러났을 정도다. 필리핀의 무장단체 중에는 돈벌이 수단으로 ‘청부 살인’에 나서기도 한다.

 

청부 살인에 가격까지 매겨져 있다. 전문적인 암살조직이냐, 아니냐에 따라 금액은 달라진다. 또 브로커가 개입하거나 의뢰인이 외국인인 경우에도 가격은 다르다. 보통의 경우 약 50만~300만원까지 가격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외국인이 현지에서 킬러를 고용하는 것도 200만~300만원이면 가능하다. 참고로 2008년 4월에 살해당한 300억원대 자산가 박아무개씨의 경우 청부 금액은 100만원에 불과했다.

 

 

원정 청부 살해 나서기도

 

지금까지 드러난 한국인 대상 범죄의 배후는 크게 세 곳으로 압축된다. 첫째는 돈을 노린 필리핀 범죄조직이다. 지난 2004년부터 한국인들의 필리핀행이 러시를 이뤘다. 돈 많은 사업가들이 관광이나 투자를 위해 들렀다. 현지인들에게 한국인은 ‘돈이 많은 사람’으로 비춰졌다. 그때부터 돈 많은 한국인들을 노린 범죄가 부쩍 늘었다. 한국인을 노린 배경에는 ‘아는 사람’과 관련이 있다. 한인 사업가의 경우 범죄조직과 결탁한 현지 고용 운전기사, 회사 경비, 직원, 가정부 등이 동선을 노출하는 등 공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필리핀 범죄조직은 사업가나 관광객을 납치해 돈을 빼앗고 풀어주기도 하지만 살해해서 흔적을 지우기도 한다.

 

지씨의 경우에도 여기에 속한다. 그는 필리핀에서 인력송출업으로 상당한 돈을 벌었다. 지씨를 납치한 주범인 경찰관도 평소 안면이 있었다. 지씨와 함께 납치됐다 풀려난 가정부도 이들과 공모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둘째는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한 범죄자들이다. 이들이 돈벌이를 위해 납치·살해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세용 일당이다. 최세용은 김성곤·김종석(사망)과 함께 지난 2007년 7월9일 안양에 있는 한 환전소 여직원을 살해하고 1억8000여만원의 금품을 빼앗은 뒤 곧바로 해외로 도피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을 전전하며 도피생활을 했다.

 

도피자금이 떨어지자 필리핀에 여행 온 한국인을 납치해 금품을 빼앗았다. 심지어 한국에서 알게 된 사람을 필리핀으로 유인해 납치한 뒤 통장과 카드에서 돈을 인출한 뒤 살해했다. 이들은 강도 살인 외에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필리핀에서 한국인 여행객 여러 명을 납치·감금하고 권총·흉기 등으로 위협해 1억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았다. 현지 교도소에서 자살한 김종석을 제외한 최세용과 김성곤은 국내로 송환돼 재판에 회부됐다. 지난해 11월 부산지법은 1심에서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필리핀 여행 중 최씨 일당에게 납치됐다 살해된 홍석동씨의 경우엔 사건 발생 3년 만인 2014년 11월 마닐라시 외곽의 한 주택 마당에서 발견됐다. 홍씨 외에도 2011년 필리핀 여행을 갔다가 실종됐던 전직 공무원 김아무개씨의 시신도 함께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된 주택은 최씨 일당의 은신처였다. 홍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자 2013년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셋째는 한국인이 현지인을 고용해 청부 살해하는 경우다. 앞서 언급한 지난해 바콜로시 사탕수수밭에서 숨진 남녀 3명과 2008년 4월 필리핀에서 살해된 재력가 모두 청부 살해를 당했다. 2015년 9월 앙헬레스의 한 건물에서는 한국인 사업가 박아무개씨가 청부 살해로 현지인에게 목숨을 잃었다. 필리핀 경찰은 박씨가 현지에서 호텔을 운영한 점을 고려할 때 사업상 분쟁으로 인한 범행 가능성을 두고 수사 중에 있다.

 

2016년 10월11일 한국인 남녀 세 명이 시신으로 발견된 필리핀 마닐라 북쪽 바콜로시(市) 외곽 사탕수수밭 © 연합뉴스

현재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주(駐)필리핀 영사관에서 맡고 있다. 한국인 실종 사건이 빈번하자 2010년 10월에 필리핀 경찰청과 각 지방청에 한인 관련 강력범죄를 담당할 ‘코리안 데스크(Korean Desk)’가 설치됐다. 마닐라·앙헬레스·카비테·세부·바기오 등에 경찰관 6명이 파견 나가 있다.

 

그러나 우리 경찰은 수사권과 체포권이 없다. 필리핀의 과학수사 수준도 현저히 낮아 범죄 발생 시 이를 처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기본적인 통화내역 조회나 위치추적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범죄 피의자를 발견해도 긴급체포할 수가 없고, 영장 발부를 몇 달씩 기다리다가 놓치는 일도 있다. 경찰과 필리핀 교민사회에서는 여행객들에게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필리핀에서 이것만은 조심하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필리핀을 여행할 때는 그 나라의 문화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매사에 조심해서 행동해야지 “나는 괜찮겠지”라고 자만하면 위험을 초래할 수가 있다. 현지 교민들이 말하는 필리핀에서 조심해야 할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여행 가기 전 인터넷 카페 등에 개인정보를 남겨서는 안 된다. 이 정보가 범행에 이용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또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현지 한국인이나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현지인은 가급적 접촉을 삼가야 한다. 한국인 범죄조직원일 수가 있어서다.

 

친절을 베풀면서 다가오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특히 유명 기업의 간부나 직원인 척하면서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도 경계 대상이다. 택시를 탔을 때나 유흥업소 등에서 현지인이 건네주는 음료수는 마시면 안 된다. 이것을 마신 후 정신을 잃고 강도·납치·살해되는 경우가 있다.

 

필리핀에 가면 ‘돈 있는 척’하거나 ‘돈 자랑’을 해서는 안 된다. 필리핀에서 범죄 표적이 되는 사람은 대부분 ‘사업가’들이다. 돈이 많은 것을 자랑하고, 고가의 물건을 들고 다니거나, 흥청망청 돈을 쓰면 그만큼 위험하다. 택시를 탈 때나 내릴 때는 잔돈으로 계산해야 한다. 고액이 가득 든 지갑을 보여주거나, 1000페소(약 2만5000원)를 꺼내주면 돈이 많다고 판단해 우발적인 범행을 유발할 수 있다.

 

또 필리핀 현지인들을 하대하거나 무시 또는 막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필리핀인들은 체면을 매우 중시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모욕을 당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때문에 현지인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나 행동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 타인 앞에서 모욕을 주거나 부정적 감정을 드러낼 경우엔 보복을 당할 수가 있다. 필리핀 경찰도 외국인이 현지인과 시비가 붙었을 경우 현지인 편을 많이 든다.

 

여행 금지구역이나 위험지역에는 절대 가서는 안 된다. 여행전문가들은 “필리핀은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고 말한다. 여행지에서 밤거리를 혼자 걷거나 번화가일지라도 으슥한 골목길은 피해야 한다. 필리핀은 성매매가 불법이다. 자칫 성매매를 하려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가 있다. 유흥업소 여종업원이나 성매매 여성과 숙박업소에 들어갔다가 여성과 결탁한 강도나 경찰에게 곤욕을 치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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