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IS 공격을 트럼프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막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1.3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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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감정 높아질수록 IS 파괴 목표 실현은 어려워져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화약고를 건드렸다. 1월27일 서명한 반(反)이민 행정명령으로 이슬람권 7개국 국민들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가 취해졌다. 전 세계를 시끄럽게 한 이들의 입국 거부는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일단 트럼프가 취한 명령을 세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번 명령으로 이란,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 등 중동·아프리카 7개국 국민들은 90일간 미국 입국이 금지된다. 적용 대상만 약 1억3000만명에 달하는데 이미 미국행 티켓을 끊은 사람들을 비행기에 태우지 않는 항공사가 속출하고 있고 미국 공항에서는 이들 나라의 입국자들이 억류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난민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들 역시 120일간 미국에 들어올 수 없다.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 정부는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개인의 정보를 7개국 정부에 요청할 수 있다. 미국 입국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신고한 본인이 맞으며 ‘공공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해당 국가가 보증하라는 취지다. 만약 정보 제공을 소홀한 국가가 있다면 미국 입국 금지 조치는 지속된다. 

 

무슬림 7개국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1월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국제 공항에서 벌어지고 있다. © AP연합

트럼프는 이번 행정명령의 정당성을 ‘테러’에서 찾았다. “테러리스트와 관련된 개인을 찾아 미국 입국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례로 드는 게 2001년 9월11일 테러 공격이다. 입국 심사 절차가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당시 테러를 실시한 납치범들은 주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었다. 이집트와 레바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국적 소지자도 몇몇 포함됐다. 테러리스트의 입국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판단을 내린 미 정부는 9·11 테러 이후 입국 심사 절차를 전면적으로 바꿨다. 하지만 트럼프의 판단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에 입국할 수 있는 외국인의 공격을 100% 저지할 수 없다는 게 지금 미 대통령의 판단이다.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하면서 트럼프는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선 이후에는 그 공약 자체가 수정되거나 취소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결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강행했다. 대신 종교를 기준으로 한 일괄적인 입국 금지를 버리고 몇몇 국가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트럼프 정부가 7개국을 선택한 이유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NBC에 출연해 “7개국은 미 의회와 이전 오바마 정부에서도 테러 우려 국가로 지목됐다”고 지적했다. 2015년 미 정부는 전자비자 발급제도를 부분적으로 바꿨다. 한국을 포함한 40개국의 상대로 상용 혹은 관광 목적으로 미국에 들어올 경우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지만 이란, 이라크, 수단, 시리아 등을 여행한 사람은 입국 전 반드시 미국 비자를 취득하도록 했다. 2016년에는 리비아와 소말리아, 예멘 등 3개국이 추가됐다.

 

하지만 ‘테러’와 ‘9·11’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이번 조치는 물음표가 뒤따른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를 기획한 범죄를 수십 건 찾아냈다. 반면 테러를 기획한 용의자의 국적을 따져보면 이번 입국 금지 대상이 된 7개국 출신 용의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미국을 상대로 기획한 테러 관련 범죄로 기소되거나 기소되기 전 사망한 161명 중 입국 금지 조치가 취해진 7개국 출신 범죄자는 11명이었다.

 

입국 금지의 대상이 된 국가 중 시아파의 대표국이자 산유국인 이란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약소국이다. 이란에 대해서는 트럼프가 선거 운동 때 테러지원국이라 비난했고 오바마 정부가 만든 핵합의를 파기하는 것까지 언급했을 정도로 강경했다. 반면 다른 6개 나라는 정치 불안과 내전을 겪고 있는 곳이다. ‘이슬람 입국 금지’라는 선거 공약을 짜맞추기 위해 추가한 리스트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행정명령에 포함된 국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미국인의 이란 입국 금지 조치를 검토할 방침을 밝혔다. 이라크 의회 외교위원회도 정부에 보복 조치를 요구했고 터키 총리마저도 트럼프를 비판하는 등 이슬람 세계를 중심으로 반미 감정은 확대되고 있다.

 

 

IS와 싸우는 이라크가 포함된 행정명령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의 지적대로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들 7개국에서 온 이민자 출신의 테러로 미국 시민이 사망한 사례는 없었다. 특히 이라크가 여기에 포함된 건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이라크는 트럼프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삼는 IS괴멸을 위해 싸우고 있는 국가다. 미군은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술에서 진행되는 대(對) IS 작전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9·11 테러의 주범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었지만 이번 입국금지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빠졌다. 이집트는 트럼프 정부가 극단주의자로 지적한 ‘무슬림형제단’의 근거지인데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 중요한 석유 대국이며 이집트는 아랍의 맹주로 미국의 동맹국 중 하나다. 양쪽 모두 중동에서 강국이라서 입국 금지 대상국에서 제외됐다는 이유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신에서 제기하는 또 다른 축은 트럼프의 사업가 관계한다. 트럼프가 사업을 펼치고 있는 터키와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의 이슬람 국가들은 이번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오히려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도 빠졌다.

 

만약 트럼프의 지적대로 테러리스트의 입국을 저지하는 게 1차적인 목적이라고 한다면 아마 유럽 국가부터 입국 금지를 하는 게 전략적으로 옳은 방법일 터다.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에서 잇달아 발생한 테러에서 알 수 있듯이 테러 그룹에는 프랑스와 벨기에 국적의 무슬림들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이런 점에서도 이번 입국 금지 대상 국가 선정이 비합리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27일(현지시간) 테러위험국 7개국 출신 난민에 대한 입국 심사를 대폭 강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 EPA연합

IS 공격을 방해하는 행정명령

 

이슬람 세계에서 반미 감정이 높아질수록 트럼프가 내세운 IS 파괴 목표는 실현이 어렵게 된다. IS와의 싸움에서 필수적인 게 이라크와 시리아, 리비아 등의 군사 협력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들은 치욕적인 대접을 받았고 IS 인접 국가들이 미국의 편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생겼다.

 

트럼프는 국방부에 이미 IS의 조속한 정리를 위한 계획을 요구했다. 계획 속에는 미 군사 고문단과 특수 부대를 늘리고 지역 세력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전략 등이 포함될 수밖에 없는데 하필이면 그런 계획을 짜는 시기에 이라크 등을 화나게 하는 정책을 트럼프가 내놓은 셈이다. 

 

반대로 트럼프의 이슬람 왕따는 IS가 기대했던 것일 수 있다. 미국 입국이 거부되고 절망과 증오를 품은 이슬람 세력이 그대로 IS에 참가할 가능성이야 낮겠지만, 적어도 미국을 반대하는 기운만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세계에 이슬람 증오를 확산시키고 반대로 내쫓긴 이슬람 세계가 과격화될수록 IS는 유리해진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트럼프가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에 이미 미국 입국의 법적 승인을 얻어놓고도 공항에서 억류된 사람이 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미 국토안보부는 “미국에 도착하는 하루 외국인 여행객 32만5000여 명 중 억류된 사람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비자의 중지는 법원이 아니라 정부가 한다”

 

일단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일부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의 앤 도널리 판사는 ACLU 소속 변호사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미국에 입국하다 붙잡혀 억류된 7개 국가 출신의 난민 비자 소지자나 개인의 추방을 잠정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난민의 경우 본국에 돌아가면 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미 가족이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강제 송환할 경우 ‘돌이킬 수없는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게 판결의 이유였다. 마찬가지로 보스턴에서도 유효한 비자 또는 영주권을 나타내는 그린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억류 또는 강제 송환을 중지하도록 법원이 연방 정부에 명령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과 법원의 제동. 그러면 이 다음은 어떻게 될까. 일단 트럼프 정부는 법원의 명령에 불복해 항소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비자를 취소할 권리가 정부에 있다는 게 트럼프 정부의 주장이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법원 판결은 행정명령을 훼손할 수 없다. 정지된 모든 비자는 여전히 정지된 채로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그린카드(영주권) 소지자가 이번 행정명령의 집행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반면 “세관이나 국경 관리를 담당하는 부처에서는 중동·아프리카 7개국을 넘나든 여행자를 수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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