潘 빠진 대선 레이스 文 대항마로 兩安(양안) 부상
  • 박혁진 기자·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phj@sisapress.com)
  • 승인 2017.02.06 10:15
  • 호수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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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불출마로 안희정·안철수 기회 잡을 가능성 커져

경기 중에 갑자기 골키퍼가 사라졌다.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야당의 거센 도전에 맞서 보수진영의 골키퍼 역할을 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돌연 대선 그라운드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다. ‘트럼프도 한국 대선의 혹독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했다면 당선 못했을 것’이라는 여의도 정치권의 조크가 있다. 반 전 총장도 결국 그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집중적 공세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물론 설 연휴 전부터 반 전 총장이 ‘여의도판 갤럭시노트7’이 될 것이란 얘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화려하게 시장에 등장했지만 의외의 원인으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는 현상 말이다. 다만 그 시점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을 뿐이다.

 

지지율은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지고, 반대로 비호감도는 높아져 갔지만, 그래도 반 전 총장은 전체 대선 주자 중에서 유일하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항할 수 있는 2위 자리를 유지해 왔다. 보수 후보 중에서는 독보적 1위였다. 중도층 일부까지도 지지층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충청이라는 지역기반도 갖췄었다. 반 전 총장이 다양한 지지층을 갖고 있었던 만큼, 그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다른 후보들에 미치는 영향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월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뒤 차량에 타고 있다. © 연합뉴스

황 총리, 보수층에서 가장 큰 반사이익

 

반사이익의 1차적 수혜자는 황교안 국무총리,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등 보수 주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반 전 총장 지지층의 주요 뼈대는 보수적 유권자들이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층 정서에 가장 부합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황 총리의 지지율이 당분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흐름은 이미 반 전 총장 사퇴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YTN이 2월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황 총리는 11.8%의 지지율을 얻어 문 전 대표(33.1%)와 안희정 충남지사(12.3%)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같은 날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황 총리는 9%의 지지율로 3위에 올랐다. 이 조사에서도 1위는 문 전 대표(32%), 2위는 안 지사(10%)가 차지했다. 아직은 문 전 대표와 격차가 크지만 10% 전후를 기록한 황 총리의 지지율은 한 달 전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황 총리는 1월말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3%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고,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2% 전후를 얻는 것에 불과한 상황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일단 새누리당이 황 총리의 지지율 상승세에 고무된 상황이다. 이미 새누리당은 황 총리의 ‘결심’을 도울 수 있도록 대선후보 선출을 대폭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선거인단 구성을 아예 건너뛰거나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후보 선출 방식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새누리당 당헌·당규는 국민참여선거인단의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각각 80%와 20%씩 반영해 대선후보를 선출하도록 돼 있다. 80%에 해당하는 선거인단을 꾸리는 작업은 최소 보름 이상 걸린다.

 

새누리당이 당헌·당규를 개정하는 표면적 이유는 대선후보를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다른 당보다 훨씬 짧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당과 달리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지켜본 후 대선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박 대통령의 소속 정당으로서 헌재 판결 전 대선 준비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대선 준비 기간을 줄이려는 목적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초점은 황 총리에게 맞춰져 있다. 황 총리 입장에서는 권한대행 역할을 최대한 오래 끌고 가는 것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다. 그렇게 되면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늦게 뛰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거인단 구성을 최소화하거나 건너뛰는 방향으로 당헌·당규가 개정되면 황 총리의 고민은 하나가 덜어진다. 게다가 당내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는 황 총리 입장에서는 ‘조직 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다만 황 총리의 대선 출마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고민이다. 황 총리는 자신처럼 평생 공직에만 있었던 반 전 총장이 정치권에 이용당하고 버림받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그런 그가 과연 불확실한 대선 판에 뛰어들어, 장관 임명 때보다 더 정교한 검증을 받을 준비가 돼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황 권한대행 이외의 보수 정당 주자들은 아직까지 뚜렷한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바른정당의 경우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상태지만, 두 사람의 지지율은 아직까지 답보 상태다. 1% 내외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유 의원이 3%로 약간 오른 것이 눈에 띈다면 띄는 현상이다. 다만 바른정당의 주자가 1명으로 좁혀진다면 해당 후보 지지율이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은 작지 않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도하차는 대선 레이스에 변화를 몰고 왔다. 안희정 충남지사, 황교안 국무총리,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왼쪽부터)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시사저널 포토

반기문 불출마, 야권 구도에 더 큰 영향

 

반 전 총장의 불출마가 보수 후보들에게 반사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아직까지 대선 판도를 뒤흔들 만큼 효과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관전 포인트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가 야권 구도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다.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이 굳어질지 아니면 새로운 대항마가 떠오를지가 정치 전문가들이 눈여겨보는 지점이다.

 

일단 여야 후보를 총망라해 실시하는 여론조사만 보면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은 더욱 굳어져 가는 형국이다. 실제 반 전 총장 사퇴 후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독보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2월 1~2일 YTN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각각 33.1%와 32%로 1위를 차지했다. 두 조사 모두 2위 후보와 20%가 넘는 압도적 격차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에 가깝다고 보는 정치권 인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중장기적으로 민심의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반드시 한두 번은 온다고 보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펼칠 대북 강경정책이 대선 레이스에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는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을 묶어 놓거나 꺾이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해외순방국 중 첫 국가로 한국을 택한 것은 대북관계에 있어서 강경정책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대선을 앞두고 북·미 관계가 악화될 경우 아무래도 그동안 북한에 우호적 입장을 보였던 문 전 대표의 상승세가 꺾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현재까지의 대선 구도 프레임은 바뀔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유권자들 뇌리 속에 박힌 대선 구도 프레임은 ‘정권교체’였다. 후보 선택 기준 역시 ‘정권교체의 최적임자가 누구냐’로 모였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맞대결한 경험은 문 전 대표에게 ‘정권교체 선두주자’라는 상징성을 안겨줬다. 정권교체가 절실한 범(汎)야권층에겐 다른 무엇보다도 정권교체를 실현해 줄 인물이 필요했고 당연히 문 전 대표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의 부재는 이런 프레임을 바닥부터 뒤흔들고 있다. 범야권과 중도층에게 ‘정권교체가 어느 정도 현실화됐다’는 안도감을 주면서 여러 야권 후보를 둘러볼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럴 경우 일단은 표를 정권교체 최적임자에게 몰아주자는 기준에서 통치를 잘할 수 있는 인물, 역량이 있는 인물, 안정감을 주는 인물, 변화를 이끌 인물 등으로 후보 선택 기준이 다변화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그늘에 가려져 있던 야권 후보들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가 2월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 “결국 문재인 전 대표와 양자대결”

 

일단 반등의 계기를 만든 것은 안희정 충남지사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다. 안 지사는 야권에서 반 전 총장 불출마의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다. 특히 반 전 총장과 지역적 기반이 겹치기 때문에 충청표가 안 지사에게 빠르게 쏠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반 전 총장을 이념적 이유로 지지했던 중도보수층 일부도 안 지사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와 다르게 한·미 FTA와 사드(THAAD) 협정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노동 유연성도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젊지만 신중하고, 운동권 출신이지만 균형 있는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보수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을 수 있다. 문 전 대표와 온전한 화해를 하지 못한 호남 민심이 안 지사에게 반응하면 안 지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안 지사는 2월말까지 지지율을 15% 정도로 끌어올리면 경선에서 해볼 만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보수 텃밭인 서울 강남 지역을 공략함과 동시에 친노 적자(嫡子)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다. 2월2일에는 대연정(大聯政)을 제안하면서 참여정부의 적자임을 내세우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안철수 전 대표도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반 전 총장의 중도지지층 일부가 안 전 대표에게 이동할 수 있고, 보수층에서도 민주당 후보들에 비해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는 지난 11월 촛불정국 이후 계속해서 지지율이 하락했으나, 반 전 총장 불출마로 반등하는 모양새다. 일부 언론에서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의 양자 구도를 가정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은 안 전 대표에 대한 주목도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안 전 대표 역시 끊임없이 문 전 대표와의 양자 구도를 언급하는 식으로 대선 레이스를 끌고 가려 하고 있다. 그는 2월2일 국민의당 창당 1주년 기념식에서 “누가 더 대한민국을 개혁할 적임자인지, 누가 더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할 적임자인지를 묻게 되는 순간 문재인의 시간은 안철수의 시간으로 급격하게 이동할 것”이라며 “이번 대선은 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될 것이며 저는 이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가 양자 구도를 확신하는 배경에는 반 전 총장에 대한 지지가 장기적으로 보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 보수층 유권자들 입장에서 보면 황교안 국무총리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큰 자신에게 지지가 쏠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안 전 대표는 바른정당과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안 전 대표는 반문(反문재인) 세력을 결집하면서 호남에서도 추가 지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한때 지지율 15%에 육박하며 여론조사 2~3위를 기록했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시장에게 반 전 총장의 불출마는 악재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이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을 기점으로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반등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뚜렷한 ‘모멘텀’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다른 후보들은 반 전 총장의 지지층을 일부 흡수하고 있지만, 반 전 총장과 지지층이 완전히 달랐던 이 시장은 이러한 반사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향후 대선의 관전 포인트는 문재인 전 대표의 대항마 자리를 놓고 야권 내 안희정 충남지사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초반에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환해야 하는 문 전 대표로서는 거센 ‘양안(兩安·안희정-안철수)’의 도전을 방어해 내야 하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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