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연정 깃발’ 든 ‘노무현 후예’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7.02.13 09:43
  • 호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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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제기한 대연정론에 담긴 4가지 노림수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대연정(大연합정부)을 공식 제안한 것은 12년 전이다. 2005년 8월25일 KBS 《국민과의 대화》에서다. “지역 구도를 해소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야권에 대연정 카드를 내밀었다. “필요하다면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고도 했다. 총리지명권과 내각구성권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주겠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정치권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노 대통령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고도의 정치 술수가 숨어 있다고 강하게 의심했던 것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조차 대연정 제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2010년)를 보자.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은 완전히 실패한 전략이 되고 말았다”며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소회(所懷)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1등만 살아남는 소선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대연정을 해서라도 선거구제를 고치려고 욕심을 부렸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야당이 총리를 세우고 내각을 구성해 내치(內治) 분야를, 대통령이 외교·국방 분야를 맡는 프랑스식 동거정부를 꿈꿨다. 하지만 그의 실험은 실패했다. 그리고 잊혀졌다.

 

2월2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안희정 충남지사가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연정론을 제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文과 차별화·친노 선명성·확장성

 

잊힌 대연정 깃발을 ‘노무현 후예’ 안희정 충남지사가 12년 후 다시 들어올렸다. 그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2월2일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이루지 못한 대연정을 실현해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누구든 개혁 과제에 합의한다면”이란 전제조건을 붙였다.

 

범여권인 새누리당 및 바른정당을 포함한 대연정 제안에 당장 민주당 대선 경쟁자들부터 반기를 들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나중에는 (대연정론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연정은 촛불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며 친일 독재 부패 세력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안 지사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안 지사는 2월9일 “대연정은 선거전략이 아니다. 제 일관된 소신이고 신념”이라며 뜻을 굽힐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반면 바른정당 대선 주자인 남경필 경기지사는 2월9일 “올바른 정치는 대연정”이라고 화답했다. 연정론에 대한 대선 주자별 셈법이 다른 것이다.

 

안 지사가 제안한 대연정론에는 4가지 노림수가 내포돼 있다. 우선, 같은 친노(親노무현) 그룹으로 분류되는 문재인 전 대표와의 차별화다. 설 연휴 이후 안 지사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면서 15% 정도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래도 30% 정도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 전 대표를 맹추격해야 하는 상황이다. 향후 당내 경선 때 문 전 대표와 일합(一合)을 겨루려면 적어도 ‘안정적인’ 20%대 지지율을 확보해야 한다. 문 전 대표 추격 전략 가운데 하나가 대연정 제안이라는 것이다. ‘중도 성향’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월8일 “안 지사 지지율이 20%대까지 올라가면 문재인 대세론이 꺾일 수 있다. 당내 경선에서 ‘제2의 노풍(2002년 경선 때의 노무현 돌풍)’ 드라마가 연출될 수도 있다”며 “연정론은 문 전 대표와 안 지사의 정치철학 차이를 보여준 사례다. 안 지사에겐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대연정론을 통해 ‘노무현 적자(嫡子)’임을 부각시켰다. 대연정을 제안하며 “노 전 대통령의 ‘미완의 역사’를 완성시키겠다”고 강조한 대목이 주목된다. 문 전 대표와 안 지사의 정치 교집합은 ‘친노’다. 하지만 친노라고 똑같은 친노가 아니다. 친노 중의 친노, ‘노무현의 적자’는 안 지사다. 1993년 설립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노무현과 안희정은 ‘정치 동지’로 만났다. 안 지사는 이후 노 전 대통령 곁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급기야 2002년 대선 때 기업들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2월7일 기자와 만난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엄밀히 말해 문 전 대표는 친노가 아니다. 노 전 대통령과 항상 서로 존댓말을 하는 사이였다. 문 전 대표는 노무현의 이상과 가치를 따라가거나 추종하는 사람이 아니다. 1980년대 변호사 시절을 함께했지만 두 사람은 수평관계였다. 그런 면에서 안 지사는 친노의 적자다. 정치권에서 ‘좌(左)희정, 우(右)광재’로 불리며 노 전 대통령과 함께했다. 노무현의 대연정을 다시 제안한 것도 자신이 오리지널 친노임을 드러낸 것이다.”

 

확장성 면에서 불리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안 지사는 민주당 주자 가운데 가장 우(右)클릭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연정 제안도 그렇지만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한·미 정부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 전 대표의 ‘차기 정부서 재검증’이나 이재명 시장의 ‘합의 철회 후 원점 재검토’ 입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재벌 개혁 역시 특정 재벌을 겨냥하거나 정부 주도로 개혁하는 것에 반대한다. 안 지사는 중도 때론 보수 성향이 두드러진다. 친박(親박근혜) 핵심 인사가 기자에게 “골수 운동권이었던 안희정의 위장전술 아니냐”고 물을 정도다. 하지만 연정 제안이 민주당 경선에선 불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과 손잡는 것을 용인하겠느냐는 것이다. 대연정 제안이 당내 경선에선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8월25일 KBS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해 대연정을 공식 제안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安 “대연정, 4당 체제 한계 극복 방안”

 

대연정론은 실용적인 측면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원활한 국정운영을 할 수 없었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힘겨워 했다. 대연정을 제안했던 이유다. 현재의 4당 체제도 마찬가지다. 야권이든 여권이든 누가 정권을 잡아도 단일 정당으론 국정 추진력이 떨어진다. 국회선진화법은 쟁점 법안의 경우 재적 의원 5분의 3(180석) 이상이 동의해야 상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 의석 분포대로 야권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반대하면 쟁점 법안은 단 한 건도 통과시킬 수 없다. 여야 협치(協治)가 중요한 까닭이다. 안 지사 역시 여야 협치를 강조한다. 그는 2월5일 “우리가 재벌개혁을 통과시키려 해도 의회에서 안정적 다수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 법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며 “누가 되든 의회와 협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연정론은 대선 정국뿐 아니라 대선 이후에도 논란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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