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 갖춘 스타트업 인수가 곧 경쟁력이다
  • 차여경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4 14:15
  • 호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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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LG전자·카카오·한화 등 대기업들, 성장 가능성 높은 스타트업 투자로 혁신 역량 강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즉 개방형 혁신 바람이 재계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한화·카카오 등 국내 대기업들이 혁신 역량을 외부에서 끌어오기 위해 문을 열고 있다. 경쟁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바깥에서 가져오고 내부 자원도 외부와 공유한다. 대부분 기업들은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 하거나 적극 투자하며 기업 혁신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개방형 혁신이다. 지식재산권을 독점하지 않고 공유하는 것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핵심이다. 반면 예전처럼 기업 내부의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것은 클로즈드 이노베이션(Closed innovation·폐쇄형 혁신)이라고 부른다.

 

삼성전자는 2014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시작했다. 정보기술(IT) 시장 선두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혁신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삼성전자는 루프페이를 인수해 모바일 간편 결제 서비스 ‘삼성페이’를 만들었다. 또 스마트홈 플랫폼 업체 스마트싱스를 인수해 가전제품에 적용했다. 비브랩스와 하만 인수를 통해 성장 동력도 확보했다. 사외벤처 지원도 활발하다. C랩은 삼성전자가 창의형 조직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제도다. 지난해 8월 C랩 우수 아이디어 3건에 대한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했다.

 

© 시사저널 e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사업협력으로 변화

 

카카오는 스타트업 인수·합병에 적극적인 회사 중 하나다. 대표 사례가 내비게이션 앱 ‘김기사’의 인수다. 지난해 5월 카카오는 록앤 지분 100%를 642억원에 매입했다. 김기사는 카카오내비로 재탄생했다. 인수 후 주간 길안내 건수가 2배 이상, 월간 이용자는 2배 증가하는 성과가 나왔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한 방법인 스타트업 투자도 활발하다. 한화그룹은 자체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 드림플러스를 만들었다. 한화S&C 드림플러스는 2014년 만들어진 대기업 산하 벤처투자회사(CVC)다. 한화생명 핀테크센터 드림플러스63, 일본의 도쿄센터, 중국의 상하이센터 등 해외 연결망까지 보유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오픈서베이가 조사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6’에 따르면, 한화S&C 드림플러스는 스타트업 초기 투자 유치 시 선호하는 기업 1위로 조사됐다. 창업 전문 투자업체를 제치고 대기업이 뽑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창업 생태계는 점점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공헌이나 일방적인 투자가 중심이었다. 이제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새로운 사업협력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에 투자해 서로 윈윈(win-win) 하겠다는 전략이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대기업들은 이제 사내에서 해결했던 기술을 외부에서 찾고 있다. 필요한 기술을 공유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며 “투자캐피털을 출범시켜 투자하거나 스타트업 기술을 가져와서 파는 등 형식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대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을 만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스타트업을 인수·합병 하거나 투자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산업을 이해하고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기대 이사는 “해외 기업은 직접 스타트업을 접촉해 협업을 논의한다. 그러나 국내는 아직까지 중간 투자자를 통해 스타트업을 찾는다”며 “이제는 오픈 이노베이션 발전을 위해 기업이 직접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MS·구글·애플 등 AI 스타트업 경쟁적 인수

 

해외도 신기술 개발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을 이끌고 있는 IT 기업들이 주도적이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까지 4차 산업혁명에 최적화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인수·합병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하는 기술을 말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전자전 CES 2017’에서도 인공지능·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을 활용한 산업 융합이 주된 화두였다. 미국 정부는 한 해 정보기술 예산으로 900억 달러(약 103조1850억원)를 집행했다. 인공지능·사물인터넷 등 기술 개발과 표준화·산학연계를 위해서다.

 

올해 1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인공지능 스타트업 말루바 인수를 발표했다. MS는 말루바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MS가 만든 지능형 개인비서 소프트웨어 코타나와의 통합도 계획하고 있다. 인공지능 말루바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인공지능 시스템을 능가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구글은 인공지능 스타트업 9개를 인수했다. 2014년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졸업생들이 세운 딥마인드도 인수했다. 구글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인공지능 분야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

 

애플과 인텔도 인공지능 스타트업에 주목하고 있다. 애플은 인공지능 스타트업 투리를 인수했다. 이에 질세라 인텔도 인공지능 너바나시스템스 인수를 발표했다. 업계는 앞으로도 인공지능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벤처캐피털 통계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인공지능 스타트업이 대기업에 인수된 사례는 모두 31건이다.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인수한 대기업은 구글·애플·트위터·야후·IBM 등이다.

 

AR·VR 스타트업 인수·합병도 여전히 활발하다. 스냅챗을 운영하는 스냅은 AR을 다루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시매진을 4000만 달러(약 480억원)에 인수했다. 시매진은 AR을 전자상거래 분야에 접목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스냅은 이번 인수로 AR을 이용한 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제 스냅은 대형 유통회사나 백화점과 협업해 새로운 수익을 낼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서는 치열한 오픈 이노베이션 경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4차 산업혁명은 단기간에 사업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공룡기업들이 향후 서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 활용범위를 더욱 넓힐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창엽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장은 “구글·IBM·페이스북 등 미국 IT 기업들은 시장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공유하고 있다”며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을 인수해 시장 확대와 기술 발전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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