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crazy가 초래할 3C의 한국 사회
  • 김현일 대기자 (hikim@sisapress.com)
  • 승인 2017.02.14 14:30
  • 호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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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lict(갈등), confusion(혼란), crisis(위기)’

crazy-. 고등학교 기본 영어 단어이니까 굳이 발음기호를 표기하거나 뜻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80%를 훌쩍 뛰어넘는,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기록하는 대한민국이니까요. 비록 세계 최고 수준의 대졸자 실업률을 보유한 우리지만 말입니다.

crazy를 꺼내든 까닭을 많은 분들이 단박에 눈치 채셨을 겁니다. 또 공감하셨을 겁니다. ‘미친, 이상한, 말도 안 되는, 무분별한, 괴상한, 짜증나는, 열광적인’ 등으로 번역되는 crazy는 지금 우리 상황과 ‘딱’입니다.

 

그렇습니다. 2017년 벽두의 한국을, 한국 사회를 crazy처럼 단적으로 웅변하는 수식어는 없을 겁니다(우리말로 옮겼을 때의 민망함을 덜려는 의도에서 crazy를 그대로 사용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만). 특히 ‘대통령, 정부, 국회, 정당, 언론, 사회단체’ 등 이른바 지도층이 crazy를 선도·솔선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나라가 거덜 날지 모를 안보·경제 위기 상황임에도 이들은 경쟁적으로 대통령 탄핵과 이어질 선거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나라 살림을 휘청거리게 만들 국가적 현안들이 1단짜리 뉴스로 뒷전에 밀려나는 게 예사입니다. 수천만 마리의 닭·오리를 살(殺)처분한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 수백만 마리의 소를 역시 살처분해야 하는 구제역 파동이 전국을 휩쓸자 눈길을 건네는 시늉이나 하는 참입니다. 당장의 현안들에는 체면치레용 해법조차 못 내놓는 주제에 대단한 복지국가를 만들겠다고 떠벌립니다. 누구누구라 따질 것 없이 속과 앞날이 빤한 것을 공약이라고 내걸고 있습니다. 사기극 경연장 같습니다.

 

ⓒ 시사저널 고성준·임준선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저간 비정(秕政)은 단호히 규명하고 치죄(治罪)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하고, 나라 장래도 생각을 해야죠. 아직 일정도 잡히지 않은 대선에나 몰입하는 작태는 지도자는커녕 최소한의 국민 도리도 모르는 파렴치범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리조리 피해 가고는 있지만 잣대를 엄격히 들이대면 사전 선거운동을 한 선거법 위반 사범입니다. 준비를 해야 한다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언론도 아무개 대선 캠프가 어떻게 꾸려지고 누가 본부장이 됐다는 등 천연덕스럽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너나 할 것 없이 개판입니다. 법을 지키자면서 스스로는 법을 까뭉개는. 이런 가운데 엄청난 수의 국민들은 몇 달째 촛불을, 태극기를 들고 대규모 시위를 벌입니다. 나선 이유가 어떻든 무시무시한 편싸움입니다. ‘좌빨 종북’ ‘부역자’ ‘도둑놈’ 등등 서로를 향해 핏대를 올리는 모습을 보면 한 커뮤니티에서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누가, 어느 편이 대통령 자리를 ‘먹든’ 대한민국호(號)가 온전하게 굴러가긴 글렀다는 우울한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crazy가 ‘conflict(갈등), confusion(혼란), crisis(위기)’ 3C로 구체화, 증폭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니 competition(경쟁) 결과에 concede(승복)하지 않을 게 확연한 탓입니다.

 

제발 예측이 빗나가기를 바라지만 돌아가는 crazy 품새가 심상치 않습니다. 증오가 폭력을 낳고 다툼이 거듭되면서 경제공황 등이 심화돼 파국을 맞는 게 현실화할 소지는 농후합니다. 뜻있는 여러분들이 눈을 부릅뜨고 진정으로 나라를 지켜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원체 엉망진창인 현안이 곳곳에 널려 있다 보니 차라리 언급을 않게 됩니다. 해 본들 공염불이 되는 것도 이유겠지요. 하기야 나라 전체에 험악한 누란위기가 미구에 닥칠 게 빤하기에 (결코 사소하지 않지만 이들 개별 사안들은 제쳐둔 채) 매번 비슷한 경고를 발동하게 됩니다. 이 crazy에서 비켜나 함께 고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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