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임금근로자의 절반 넘어섰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7.02.17 11:10
  • 호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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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정부 통계의 함정 사내하청·특수고용 제외돼

정부 정책은 통계를 기초로 만들어진다. 5년마다 인구주택총조사를 실시하는 것도, 매월 생산이나 물가나 고용 등에 대한 동향을 발표하는 것도 정책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서다. 통계에 담긴 숫자는 현실을 반영하고, 그 심각성을 파악해 대안을 마련한다.

 

비정규직 정책도 마찬가지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수단조차 없었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상용직과 임시직, 그리고 일용직으로 나눌 뿐이었다. 이후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자 2003년부터 매년 3월과 8월에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지, 계속 일할 수 있는지 등을 물어 비정규직 규모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연구소, 그리고 노동단체에서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는 크게 차이를 보인다. 통계청은 644만 명(32.8%), 한국노동사회연구소(한노사연)는 874만 명(44.5%), 한국비정규노동센터(비정규센터)는 870만 명(44.3%)으로 본다. 서로 다른 조사를 실시한 게 아니다. 통계청이 조사한 원 자료에서 각각 계산한 결과다.

같은 자료를 갖고 분류했는데 세 기관의 분석은 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그건 ‘어디까지를 비정규직으로 볼 것이냐’를 놓고 각 기관마다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서다. 정부는 ‘계약기간을 특정하지 않았거나 정년 등 관행에 의해서 계속 근무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은 상용직이든 임시일용직이든 정규직으로 본다.

 

계속 근무가 어렵다 해도 ‘다른 일자리를 찾거나 개인 이유, 경영상 이유’라고 답한 사람 또한 근로 형태와 무관하게 정규직으로 본다. 반면 한노사연과 비정규센터는 임시직과 일용직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분류했다. 여기에서 통계청 결과와 약 240만 명의 차이가 발생한다. 두 기관의 차이(4만 명)는 상용직 가운데 계속근무가 불가능한 이유를 놓고 어떻게 분류하느냐의 차이였다.

 

자동차 완성차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분류된다. 세 기관 모두 정규직으로 분류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청업체 소속인지 묻는 질문이 없어 파악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로 정규직화됐지만, 통계만 놓고 보면 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모순적 결과가 발생했다.

 

 

“우리가 정규직이라고요?”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화물차 운전기사는 정규직일까 비정규직일까. 통계에선 둘 다 아니다. 이들과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는 아예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때문에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대상에서 아예 빠졌다. 비정규직의 정의를 ‘사업자와 정상적인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노동자’로 한다면 이들 또한 포함됐어야 했다.

 

사내하청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까지 비정규직에 포함한 실질적 비정규직 규모는 1145만 명으로 볼 수 있다. 정식 조사를 한 적은 없지만, 각종 자료를 취합해서 파악한 결과다. 2016년 7월 정부의 ‘고용형태공시’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간접고용 노동자(소속 외 근로)는 92만 명이다. 300인 이하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빠진다. 또 김유선 한노사연 선임연구위원이 국가인권위원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특수고용 노동자 규모는 229만 명이다. 이 가운데 비정규직 통계에 포함된 50만 명을 제외한 179만 명을 포함해야 한다.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고 개인·경영상 이유로 계속근무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임시일용직을 비정규직으로 본 한노사연의 분석 결과(874만 명)에 300인 이상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92만 명), 통계청 조사에서 제외된 특수고용 노동자(179만 명)를 더하면 1145만 명이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실질적 비정규직 비율은 임금근로자의 절반을 넘어선 셈이다.

 

물론 통계청이 고의로 비정규직을 축소하기 위해 범위를 축소한 것은 아니다. 지난 2002년 7월 노사정위가 합의한 비정규직의 정의 및 범주를 근거로 분석했다. 하지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구체적으로 실태를 파악할 수 있어야 올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며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사내하도급 문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시·일용직 규모, 줄어도 기뻐할 수 없다?

 

통계의 함정은 또 있다. 비정규직 규모가 줄어든다면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을까. 임시일용직의 비중은 매년 줄었다. 통계청 조사가 시작된 2003년 51.6%에서 꾸준히 감소해 2016년 33.9%까지 내려갔다.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임시일용직만 놓고 보면 비정규직 문제가 완화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임시일용직이 줄어든 빈자리는 시간제 근로자가 대신 차지했다. 용역근로가 많은 시설관리업과 파트타임 비중이 높은 숙박음식업도 불안정한 일자리 증가를 주도한 분야였다.

 

2016년 임시일용직 규모의 감소는 더욱 심각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2분기 이후 꾸준히 증가해 온 임시일용직 규모는 2016년 1분기 7.8% 감소하며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2분기에도 6.5% 줄어들었다. 지난해 임시일용직이 줄어든 직접적인 이유는 기업이나 사업체의 경기 악화로 볼 수 있다. 해고하기 쉬운 대상을 우선 희생양으로 삼은 셈이다. 정부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 12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내 10대 조선사 인력이 2만89명 감소했다. 이 중 사내하청 기능직 근로자는 1만7955명으로 전체 감소인력의 89.4%에 달했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일용직이 줄어들면서 상용직이 증가했다면 바람직한 신호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임시일용직이 쉽게 해고에 노출되니까 직업이 상실되는 기간과 횟수가 증가한, 고용이 악화된 상황의 결과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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