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투표 안 해서 나라가 이 모양이라고요?”
  • 조문희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2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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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조기 대선 정국 바라보는 20대 유권자 6인의 ‘수다’
 
여기 여섯 명의 20대 청년이 있다. 각자 뚜렷한 정치적 주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위에서 “말 빨 좀 세다”는 소리를 듣는 나름 ‘청년 논객’들이다. 2월14일 저녁, 시사저널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2017년 대한민국 현실과 다가오는 대선에서 어떤 기준으로 투표를 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문모은씨(여․24)는 신학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대학생이다. 집안 대대로 운동권 경력이 있는 이른바 ‘모태 운동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병호씨(남․23)는 금융권 취업을 준비 중이며, 통역장교 입대를 희망하고 있다. 서대웅씨(남․29)는 입사원서만 150번을 냈다. 지난해 가까스로 한 공공기관 전산직으로 입사했다.
 

구단비(여․25)・이성진(남․26)・정현우씨(남․26)는 모두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이다.구씨는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으며, 이씨는 언론고시 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있다. 정씨는 스스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말했다. 이들의 입을 빌려 20대 유권자 ‘표심’을 들여다봤다. 생생한 ‘수다’를 지상중계한다.​

 

2월14일 시사저널 회의실에서 20대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투표 안 하면 친구 안 해”

 

가장 먼저 화두가 된 것은 ‘헬조선’이란 단어였다. ‘헬조선’은 2030세대에서 먼저 사용하기 시작해 현재는 한국 사회를 강타한 신조어다. 한국이 ‘지옥(hell)’과 같다는 의미다. 보수 정치인들은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는 단어라며 비판한 바 있다. 취업이 안 되는 탓에 연애․결혼․출산까지 포기하는 그들에게는 지나온 대한민국 역사가 어찌됐든 ‘헬조선’이 엄연한 현실이다. 

 

 

서대웅: 평범하게 노력해서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죽어라 노력해야 평범하게 살 수 있다. 취업 관문에서 150번씩 떨어져도 연봉 3000만원 이하인 곳은 도저히 (이력서를) 못 쓰겠더라. 이 나라에서는 그 연봉으로는 살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받는 연봉도 결혼하고 서울에 집 사려면 많이 부족하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죽어라 노력해야 그렇게 살 수 있다. 근데 ‘돈도 실력’이라던 정유라는 몇 백 억을 모았다, 그것도 부정한 방법으로. 이게 ‘헬조선’이 아니면 무엇인가.

정현우: 어른들의 ‘꼰대’같은 시선이 청년들을 더 분노하게 만든다. 취업이 안 돼 힘들어하는 청년에게 ‘고생하는 게 당연하지’ ‘아프니까 청춘이지’라고 말한다. 이런 말에 대한 분노가 쌓여서 ‘헬조선’이란 단어로 표출된 것 같다.

구단비: 기본적으로 의식주 해결이 너무 어려운 나라다. 미국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거기 시급은 아무리 기본적인 일이어도 1만원을 줬다.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1시간 일해서 6470원 받고 뭘 먹을 수 있나. 밥 한 끼 먹기 힘든 나라인데 ‘헬조선’이 아니겠는가. 

(왼쪽부터) 서대웅, 정현우 ⓒ 시사저널 박정훈
(왼쪽부터) 서대웅, 정현우 ⓒ 시사저널 박정훈

이들의 분노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곧 표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투표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모두 “당연히 투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투표하지 않는 또래에게 “도대체 왜 투표를 안 하냐”며 언성을 높이는 참가자도 있었다. 이들은 그동안 20대 투표율이 낮았던 이유를 크게 두 가지 정도로 꼽았다. 하나는 다소 현실과는 동떨어진 청년공약, 다른 하나는 선거를 하기 어려운 주변의 상황이 그것이다. 전국 단위 선거는 엄연한 법정공휴일임에도 아르바이트나 수업을 빼주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만큼은 20대 투표율이 높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 너무나 막장을 봤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안 하면,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공감대가 생겼을 거다.

이성진: 이번에는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20대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많이 올랐을 거다. 이제 ‘20대가 투표를 안 해서 이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지 않을까. 주변에 투표 안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친구 안 할 거다. 

 

지지하는 대선주자 모두 달라

 

6명 모두의 지지를 받은 대선 주자는 없었다.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이 각자 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정권 교체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정권교체를 원한다하더라도 지지하는 후보가 달랐을 경우 목소리가 높아졌다.

 

 

: 무조건 정권교체다. 부정부패를 완전히 깨부술 수 있는 전투력을 가진 사람을 뽑고 싶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을 지지한다. ‘대깨문(대가리 깨져도 문재인)’이라고는 하지만, 문재인 전 대표도 기득권 세력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젊은 주자가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나가면 좋겠다.

: 이럴 때일수록 국정 능력을 갖춘 후보가 필요하다. 정직하고 안정감 있는 대통령이 적폐를 청산하면서 동시에 국가적 혼란도 수습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가 적합하다고 본다. 다른 후보들은 그런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병호: 안희정 충남지사가 좋다. 포용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나. 아무리 나빠도 국민 한 쪽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무조건 타협하지 않고 내몰겠다는 건 세련된 방식의 정치가 아니라고 본다.

 

대선 주자 중 가장 이야기가 많았던 인물은 안희정 충남지사다. 안희정 지사는 대연정론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들의 대화에서도 안 지사에 대한 얘기가 예상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병호: 헌법재판소에서 최근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을 때 안 지사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삼권분립의 나라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게 봤다.

: 안 지사는 ‘타이타닉’ 발언 때문에 비호감이 됐다. 타이타닉에서 어린이, 여성, 노인 순서대로 사람들을 구조한 것처럼 복지를 그 순서대로 가겠다는 건데, 대놓고 청년들을 등한시하겠다는 얘기로 들렸다.

: 오랜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 안 지사는 되게 영리하다. 저 사람의 과거 발언들을 보면 저런 정치적 입장을 취할 사람이 아니다. 보수까지 안고 가겠다는 것은 표를 얻으려는 ‘수작’으로 보인다. 이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100프로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고 말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왼쪽부터) 이성진, 문모은, 이병호 ⓒ 시사저널 박정훈

 

 

 

공약이 가장 중요한 투표 기준

 

참석자들이 후보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공약’이었다. 평소 지지하는 후보라 할지라도 공약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이번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의 공약 중 ‘청년공약’에 대해 물었다. 각 주자들이 제시한 청년 공약에 6인 모두의 호응을 얻은 정책은 없었다. 먼저 문 전 대표가 제시한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문 전 대표의 공약에는 소방, 경찰,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늘리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눈길을 끌만한 공약이지만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병호: 이게 국가 재정상으로 가능할 지가 의문이다. 단순히 숫자만 늘리겠다는 건 재정만 낭비하는 일 같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 해결하려는 것이다.

문모은: 늘리겠다는 공공일자리에 돌봄 서비스도 포함돼 있어서 좋게 본다. 여성들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 같다. 처우가 안 좋은 소방관 같은 일자리는 충분히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81만개란) 숫자를 못 박은 것은 뻔한 정치적 의도가 엿보였다.

: 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은 ‘걷기도 전에 뛰려는 격’이다. 컴퓨터 쪽에 일해서 알지만 우리나라를 IT(정보기술) 강국이라고 하는데 사실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하나 없다. 직업훈련소에서 요즘 교육하는 것도 코딩 교육뿐이다. 아직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나갈 수준이 아닌데 이걸 강조하는 건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이병호: 투자만 잘하면 괜찮은 비전인 것 같다. 워낙 세계적 흐름이니까. 우리나라에도 소수지만 능력 있는 사람 충분히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이건 너무 배팅하는 것 같다. 실컷 투자했다 안 되면 어떡하나.

이성진: 이재명 시장이 내놓은 기본소득제는 전형적 포퓰리즘 같다. 매년 보육대란이 일어나고 공적 연금도 바닥나고 있는데 기본소득을 도입할 필요가 있나 의문이 든다. 지금 당장 필요한 정책인지 모르겠다.

: 난 좋다고 본다. 고려대에서도 이번에 하위소득 20% 이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지원금을 줬더니 학점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그런 것처럼 기본소득도 장기적으로 보면 희망이 있을 것 같다.

이병호: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내놓은 청년창업 대책도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 청년 창업은 해봤자 푸드 트럭 아닌가. 성공한 창업을 하는 것도 소수의 몇 명뿐이다. 이런 식으로 ‘돌려막기’ 하는 것은 경제정책을 신경 안 쓴다는 소리다.

: 우리나라는 너무 고시 준비생이 많고 안정적인 것만 추구한다. 청년들이 취업에 목숨 거는 게 아니라 창업도 해야 경제가 젊어질 것 같다. 중국만 가도 대학가 앞에는 다 창업센터라는데, 우리나라 대학가는 술집에 고시텔 천국이다. 청년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건 좋은 시각인 것 같다. 

 

공약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청년들의 주된 관심사인 군대 문제로 주제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남경필 경기지사가 내놓은 ‘모병제’ 공약이었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남자에게는 솔깃한 공약이지만, 참석자 사이에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 찬성한다. 솔직히 군대는 청년에게 경력 단절의 의미가 크다. 가고 싶은 사람은 가서 돈 많이 벌고, 안 가고 싶은 사람은 그 시간에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군대 가보면 알겠지만, 주말만 되면 ‘걸그룹’에 목숨 거는 일반 병사들이 실제 전쟁에서 싸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모병제로 전문 병사를 교육하는 게 낫다고 본다.

이성진: 군인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모병제로 바꾼다 한들 군대에 가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군대 문화나 군 전반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 한 모병제 공약은 진지한 고민 없이 청년의 ‘표’만을 노리고 내세운 공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발성 아닌 근본적 대책 마련해야”

 

청년공약이 등장한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대선과 총선 때마다 허울 좋은 청년공약이 남발되지만 청년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공약이 실현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다양한 청년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2014년 5월 내놓은 보도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청년 공약 평가 점수는 4.3 만점에 2.8점에 불과했다. 6인의 유권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 청년 정책이 흐지부지되고 청년 공약이 재탕되는 것은 우리를 ‘디테일’하게 이해하지 못해서다. 청년 공약만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거나 대통령비서실 안에 청년자문위를 만드는 식으로 청년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면 좋겠다.

이병호: 공약이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근본적이면 좋겠다. 예산 몇 십 조 때려 부어서 단발성으로 효과를 보는 사업은 제일 내선 안 되는 공약이다. 우리 청년층이 살 미래를 ‘지속 가능한’ 사회로 만들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 ‘일단 내놓고 보자’는 식의 태도가 문제다. 정책을 이행하지 못하면 혼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인기만 얻으려고 두루뭉술한 공약을 남발하는데, 한 번 본보기로 따끔하게 혼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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