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된 간접고용 “우리 사장님은 누구인가요”
  • 이민우 기자·정지원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22 14:57
  • 호수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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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파견·용역·특수고용직 노동자들

2016년 5월 한 청년이 지하철역에서 목숨을 잃었다. 호출을 받고 안전문(스크린도어)을 고치던 청년은 승강장에 들어오던 열차와 문 사이에 끼여 숨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19세 청년이 남긴 갈색 가방에는 공구들과 함께 먹지 못한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숟가락이 들어 있었다. 제대로 밥 한 끼 먹을 시간 없이 일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져 온 국민을 비통함에 빠뜨렸다.

 

비단 구의역 사고만이 아니다. 2월3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해양공장에서 협력업체 반장 이아무개씨(44)가 자신이 작업하던 파이프 사이에 끼여 숨졌다. 울산 남구에 위치한 한화케미칼 울산3공장에서 매몰 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강아무개씨(52)가 숨진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았을 때다. 2016년 6월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붕괴 참사에서도 하청업체 노동자와 일용직들이 피해를 입었다. 2016년 9월에는 야간 선로 작업 중이던 협력업체 노동자 2명이 KTX에 치여 숨졌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인재(人災)였다. 똑같은 사고가 반복됐다. 최소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매뉴얼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 수칙을 지키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외주화의 끄트머리,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해 컵라면을 들고 다녀야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현실은 한국 노동시장의 왜곡된 구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외주화와 인력 감축이라는 비정한 논리에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구의역 사고로 숨진 청년에게 남긴 시민들의 추모글 © 시사저널 고성준

협력업체에 맡겨진 일터, ‘간접고용’이라는 역병

 

한국은 ‘간접고용 공화국’이다. 어느 무렵부터인가 우리네 일터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점령당했다. 간접고용이란 기업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인력공급업체 등을 통해 공급받아 일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파견·용역·위탁·도급·사내하청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하청업체나 용역업체에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고용됐다면 통계상 정규직으로 분류된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기업들은 핵심 사업만 남기고 외주화를 남발했다. 하청에 재하청의 틀에 갇힌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헐값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됐다. 간접고용 문제가 불거진 것은 제조업체였다. 자동차 제조공장에서 왼쪽 문을 조립하는 이들은 회사 소속이고, 오른쪽 문을 조립하는 이들은 협력업체 소속으로 채워졌다. 사회적 문제가 되자 조립은 본사 소속 정규직 직원들에게, 도색과 출고 업무는 외부업체 노동자들에게 맡기는 꼼수까지 벌어졌다.

 

제조업체에 집중됐던 간접고용은 이후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공 서비스, 신세계·이마트·삼성전자서비스 등 민간 서비스, 병원의 간호 업무, 원자력발전의 주요 부품 납품, 숭례문 복원 과정 등 안전·문화재 업무까지 무차별적으로 확산됐다. 기존 직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옮긴 뒤 물류·수리(AS) 등의 업무를 외주화하는 행태까지 자행됐다.

 

간접고용이 일상화된 이유는 회사가 각종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용역업체나 파견업체에서 고용한 인력이기 때문에 해고가 자유로웠다. 사고가 나도 원청회사는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교섭을 요구하면 해당 회사와 계약을 해지하면 됐다. 법망을 피해 가는 유용한 방식이었다.

 

물론 현행 파견법상 제조업은 파견 허용 업종이 아니다. 대부분이 불법파견인 셈이다. 하지만 합법파견과 불법파견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했다. 불법 여부를 판단할 근거는 인사노무관리의 독립성, 지휘감독권 행사의 주체, 사업 독립성 등이었다. 1월25일 여수산업단지의 한 협력업체에서 자살한 남고생의 휴대전화 기록에서 다른 관리자로부터 업무지시를 받은 내용이 발견됐지만 원청업체인 대림산업은 “협력업체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발뺌하는 상황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노동당국이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을 이유로 원청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 현지 협력업체에 30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다행히 법원에서 이 같은 간접고용 행태에 조금씩 제동을 걸고 있다. 2010년 이후 대법원은 한국지엠·현대차·남해화학·한국수력원자력·한전KPS 등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뒤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월10일에는 고등법원에서 간접공정에 투입된 사내하청 노동자까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지방노동위원회부터 중앙노동위, 행정소송 1·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가는 데 10년 가까운 세월을 투자한 결과였다.

 


비정규직 줄인다더니 간접고용 늘리는 정부

 

간접고용의 남용은 허름한 공단의 중소기업이나 잘나간다는 대기업 제조공장의 얘기만이 아니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2월1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342개 공공기관의 소속 외 인력은 8만188명에 달했다. 2011년 5만2936명에서 51%나 늘어난 수치다.

 

인천국제공항을 예로 들어보자. 외국을 찾거나 한국으로 돌아올 때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공항 직원들과 마주하게 된다. 서비스 안내부터 비행기표 발권, 수하물 검색, 출입국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만나는 사람 가운데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직원은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대민(對民) 업무는 아웃소싱 업체에 맡겨져 있다. 흔히 공항 직원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용역업체 직원이거나 비정규직이다. 인천공항공사 직원들은 여객터미널 주차장 건너편의 공항공사 건물에서 공항 건설이나 공항 운영, 마케팅, 경영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공공부문의 간접고용은 이명박 정부 때 대세로 자리 잡았다. ‘공기업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공공부문 외주화를 추진했다. 인력공급업을 핵심산업으로 성장시키려는 법 개정 작업도 벌였다. 인력공급·고용알선업에는 2011년까지 법인세의 20%를 깎아줬다. 그 사이 KTCS, 유니에스, 에스텍시스템 등 공룡 같은 인력공급업체들이 속속 등장했다. 경제민주화를 내걸었던 박근혜 정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차별완화만 강조할 뿐 간접고용의 남용 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이어지자 파견업 허용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자 정규직화 계획을 추진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공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비정규직 축소 비율을 경영평가 실적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비정규직이 감소한 자리를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정부의 비정규직 통계에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포함되지 않는 탓이다. 공공기관 입장에서도 인건비 규제를 받는 직접고용보다 규제를 받지 않는 간접고용을 늘리는 게 유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필수적인 업무에 소요되는 인력만 정규직으로 하고 나머지는 간접고용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공공기관의 고용보장과 임금에 대해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선하는 한편 간접고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된 이들에게는 그나마 ‘노동자’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하지만 일을 하지만 노동자가 아닌 특수한 이들도 있다. 바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다. 학습지 교사, 방송작가, 방송외주PD, 헤어디자이너,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자동차 판매사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법적인 신분은 ‘자영업자’ ‘개인사업자’다. 외환위기 이전에 직접고용된 노동자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근로계약서가 ‘업무위탁계약서’ ‘도급계약서’로 둔갑했다.

 

 

일은 하지만 노동자 아닌 ‘특수한 존재’

 

김환영씨(47)는 19년 차 자동차 대리점 판매사원이다.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조회를 한다. 업무전달을 받고 나면 동료들과 함께 판촉행사에 나선다. 오후 시간엔 개인판촉을 뛴다. 이처럼 여느 회사원과 다를 것이 없는데도 김씨는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4대 보험의 대상자도 아니다. 자동차 대리점 판매사원들 대다수는 개별대리점과 근로계약이 아닌 위촉계약을 맺고 일한다.

 

김씨가 특수고용직이 된 건 5년 전이다. 1999년도에 대우자동차 정규직 판매사원으로 입사해 12년간 일하다가 2012년 9월부터 신분이 바뀌었다. 회사가 직영점에서 대리점 체제로 전환하면서 직접고용하던 판매사원들을 모두 특수고용직으로 바꾼 탓이다.

 

자동차 대리점주와 판매사원이 판매대수당 수수료를 약 7대3의 비율로 나눠가지는 구조다. 이론적으로는 차를 많이 팔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김씨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대리점과 판매사원이 과도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김씨는 “처음엔 차를 많이 팔면 월급을 더 받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면서 “한 달을 꼬박 일해도 손에 쥐는 건 최저임금 수준인 120만원 남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판매사원들이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 옵션 끼워주기 경쟁을 시작했다”며 “수당에서 일부를 떼어내 내비게이션과 같은 각종 옵션을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안전망인 4대 보험의 진입장벽은 더 높아졌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됐다. 정규직일 때는 회사와 김씨가 절반씩 부담하던 보험료를 지금은 김씨가 전액 내고 있다. 김씨는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이 정규직일 때보다 월 30만원 더 나간다”고 말했다. 고용보험은 아예 가입조차 되지 않는다. 때문에 비자발적인 사유로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다. 산업재해보상보험도 가입대상이 아니다. 지갑은 가벼워지고 고용은 불안해졌는데 사회안전망은 더 열악해진 셈이다. 김씨는 “판매사원들은 특수고용직이라서 점주가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면서 “고용불안이 심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김씨의 동료들은 단 한 명도 퇴직금을 못 받았다. 김씨와 같은 회사의 대리점에서 2013년 12월까지 9년간 근무한 윤아무개씨도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퇴직금반환청구소송을 냈지만 소송에서 졌다. 현재 윤씨는 자금난으로 인해 항소를 포기한 상태다.

 

김씨는 “월차·연차 휴가도 따로 없다. 매년 8월초에 자동차 생산공장이 일주일 동안 일괄 쉬는데, 이때 쉬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월차·연차뿐만 아니라 시간외 수당도 언감생심”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판촉에 자주 빠지면 당직에서 제외돼 영업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여성 판매사원의 경우 더 심각하다. 출산휴가는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자동차 딜러’라는 말이 더 익숙하지만 김씨는 딜러라고 불리길 거부한다. 김씨는 “딜러라고 하면 사람들은 ‘판매왕’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최저임금 조금 넘게 돈을 버는 비정규직”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규직으로 일할 때와 비교해 업무내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데 특수고용직이 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면서 “직영점 체제로 다시 전환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2010년 이후 대법원은 한국지엠·현대차·남해화학·한국수력원자력·한전KPS 등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뒤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 연합뉴스

특수고용직 보호 정책은 ‘제자리걸음’

 

균열 일터. 지난 30년간 진행된 일자리의 질적 하락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노동 정책을 수립한 데이비드 와일 보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깊게 벌어지는 바위 틈(fissured)처럼 일터도 지난 30년간 균열을 겪었다”며 이 개념을 차용했다. 노동관계법을 피해 가기 위한 갖은 꼼수가 확산되면서 법 조항들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특수고용직 문제 또한 그 꼼수에서 출발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의도 있었다. 2001년 노사정위원회에서 처음으로 특수고용직에 대한 보호대책을 논의했고, 수차례 입법절차를 추진했다. 정부는 2006년 10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대책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을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노동자가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로 보고 사회보험 적용 등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겠다며 만든 특례 조항은 이들의 노동자 신분 회복을 어렵게 하는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치권의 입법 움직임도 있었지만 재계의 반발 등으로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19대 국회에서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이 이들의 노동자성(性)을 인정하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여전히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조사한 통계자료는 없다. 지난 15년 동안 50여 개 업종, 약 200만 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생겨났다고 추정될 뿐이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특수고용직 근로 형태에 대한 조사 결과, 특수고용직 직종 대부분은 사용종속성과 조직종속성 등 노동자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 지위 인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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