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붐’에 가려진 또 다른 얼굴 ‘아이돌 굿즈 마케팅’
  • 김은샘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24 14:06
  • 호수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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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 가수 팬클럽 판매에 의존 10~20대 팬 주머니 터는 ‘상술’ 비판도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주인공 제시와 셀린은 오래된 레코드 가게를 방문한다. 레코드플레이어(LP)판으로 가득한 가게가 눈길을 끌고, 좁은 감상실에서 LP판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생기는 그들 사이의 묘한 기류는 관객들에게 설렘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이 장면은 《비포 선라이즈》의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 LP 음반이 거의 자취를 감추면서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남는 듯했지만, 최근 영국을 비롯한 유럽지역과 미국·일본 등에서 LP가 옛 영광을 되찾고 있다.

 

침체된 한국 음반시장에도 아날로그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LP 음반이 ‘붐’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1990년대 초반 CD에 밀려 사라져 갔던 LP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CD로 대표되는 피지컬 음반시장의 침체는 이미 오래된 이야기고 디지털 다운로드마저 주춤하는 지금, LP 음반이 붐이라는 소식은 꽤 놀랄 만한 일이다. 과연 ‘LP 붐’이 한국에까지 밀려오고 있다는 게 사실일까.

 

(우측 상단부터) 태연 《I》(LP ver.), 빅뱅 10주년 기념 LP ,아이유 《꽃갈피》 © 시사저널 임준선·sm엔터테인먼트·로엔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


美·英·日 등에서 최근 LP 판매량 급속히 증가

 

1948년 컬럼비아 레코드사에 의해 처음 공개된 LP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반세기를 풍미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 등장한 CD에 의해 서서히 설 자리를 잃으며 잊혀져 갔다. 1993년 미국의 LP 판매량은 30만 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LP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음반산업협회의 자료에 의하면, 2015년 전 세계 LP 음반 판매량은 3200만 장으로 199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7년 전인 2008년의 500만 장과 비교했을 때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미국 음반 판매량 조사회사 ‘닐슨 사운드 스캔’에 의하면, 1993년 30만 장이던 LP 판매가 2008년부터 급성장세를 타며 2015년 1190만 장으로 늘었다. 미국 음악시장에서의 LP 음반 판매수익은 음악 스트리밍서비스 수익을 넘어섰다. 또 영국음반산업협회는 2016년 팔린 LP 음반이 320만 장으로, 전년에 비해 53%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1991년 이후 판매량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며, LP 음반 소비금액이 디지털 음원 소비금액을 넘어선 첫해다.

 

음반시장 선진국인 미국·영국 등에서 LP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미국 음반 마니아들이 시작한 ‘레코드 스토어 데이’의 영향이 컸다. 매년 4월 셋째 주 토요일, 미국·영국·일본 등 22개국의 레코드 가게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음반 특별 판매와 공연 등으로 이뤄진다. 콜드플레이·오아시스 등 유명 뮤지션들은 이날을 위해 한정판 LP를 제작하고 판매한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는 “해외 뮤지션들은 LP가 잊혀져 가던 시절에도 CD와 함께 LP를 꾸준히 제작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의 LP 발매는 옛 앨범을 재발매하는 정도가 아닌 아델·테일러 스위프트 등 인기 팝가수들을 필두로 신작 앨범 발매 시 음원·CD·LP 발매를 동시에 하고 있다. 반짝 인기가 아닌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세계 음악시장이 LP의 귀환으로 들썩이자, 최근 한국 음반시장도 LP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붐을 타고 한국도 2011년부터 레코드 스토어 데이를 모델로 한 ‘서울레코드페어’를 개최했다. 이는 LP를 직접적으로 접한 세대가 아닌 20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LP는 20대에게 오히려 ‘새롭다’는 인식을 주며 다가갔다. 이후 김광석의 앨범이 LP로 재발매돼 인기를 얻고, 아이유는 1980~90년대 명곡들을 담은 리메이크 앨범을 LP로 발매해 화제가 됐다. 이외에도 여러 아이돌 가수들이 LP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LP 붐은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

 

이를 통해 국내 일부 매스컴에서는 ‘한국에서도 LP 붐이 일고 있다’고 보도하고 나섰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일부 인기가수들의 LP 발매와 20대의 호기심을 ‘붐’으로까지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회현지하쇼핑센터에서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김지윤 전국음반소매상연합회 회장은 “한국 음악시장에서 LP는 끝났다”며 “한국의 LP 붐은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아이돌 등 인기가수들이 기념적으로 발매하는 LP 음반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LP 붐은 아니다”며 “‘아이돌 기념품’을 사는 것과 ‘LP 음악’을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40년간 오디오 사업을 해 온 명동오디오 하원기 대표도 “LP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보다는 깊이가 있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며 “원래 꾸준히 LP를 찾던 마니아층이 아날로그 붐을 타고 더욱 활발하게 찾는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최근 한국 음악시장에서 높아진 LP에 대한 관심은, LP 그 자체가 아닌 ‘팬덤 현상’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CD 음반이든, LP 음반이든, ‘팬층’의 구매력에 기대어 판매되고 있다는 시선이다. 음반 판매량은 아이돌 팬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엑소와 같은 인기 남자아이돌 그룹은 ‘밀리언셀러’를 달성하고 있다. 팬 한 사람이 같은 앨범을 많게는 몇 십 장씩 구매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기를 살려준다’는 게 그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인기 아이돌 가수들의 LP 음반이 단기간에 전량 판매되는 것은 CD 음반과 같이 특별할 게 없다는 이야기다. 조용필·김광석 외에는 지드래곤·태연·아이유·원더걸스 등 이미 일정부분 10~20대 팬층이 두터운 가수들 중심으로 LP 음반이 유통되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권현석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LP 판매량의 상승은 ‘아이돌 굿즈 마케팅’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LP 출시는 대형 기획사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볼 수 있다”며 “LP가 중심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화보 패키지에 가깝다”고 평했다. 정덕현 문화 평론가는 “아이돌 팬덤의 구매를 LP 시장의 부활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인기 아이돌의 LP 판매가 10~20대 팬의 가벼운 호주머니를 터는 ‘상술’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인기 아이돌들의 한정판 LP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량 판매된다. 실제로 빅뱅의 데뷔 10주년 기념 LP 패키지는 12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5000장 전량 판매됐다. 태연의 첫 솔로앨범 《I》 역시 LP로 한정 발매돼 팬들이 줄을 서서 구매했다. 정가 3만7000원이었지만, 현재는 중고 인터넷시장에서 25만원까지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뱅의 LP를 구입한 유아무개양(16)은 “한정판이라고 하니 너무 갖고 싶어 부모님 몰래 용돈으로 구매했다가 들통나서 혼났다”고 말했다. 한 음반업체 관계자는 “대형 기획사에서 기존의 노래를 LP로 제작해 한정판으로 고가에 판매하는 것은 어린 학생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상술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경준 문화 평론가는 “LP 소장이 ‘힙스터(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회현지하상가 LP매장 앞에서 한 시민이 LP를 구경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LP 붐 일어나기엔 국내 생산기반 취약해

 

다만 아이돌 가수들의 LP 앨범 발매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고, 향후 LP 인기 회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정덕현 문화 평론가는 “아이돌의 LP 발매는 대중, 특히 젊은 세대의 관심을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조창수(69)씨는 “50대 이상의 전유물이었던 LP를 젊은 세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는 “대중들의 LP에 대한 관심이 시장을 뒤흔들 정도의 움직임은 아니지만, 시장에 자리매김하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LP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담아내기에는 국내의 생산기반이 너무 허약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국내에는 LP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한 군데도 없다. LP가 한국 음반시장에 확고히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4년 국내 마지막 LP 공장 ‘서라벌레코드’가 문을 닫으면서 명맥이 완전히 끊어졌다. 이후 한 기업이 LP 생산을 이어가겠다며 조용필과 지드래곤의 LP 앨범을 제작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제작되는 LP에 계속해서 품질 문제가 제기됐고, 결국 공장은 문을 닫았다. 김지윤 회장은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는 LP에 대한 인식 자체에 악영향을 준다”며 “독일·영국·일본 등 품질이 보장된 해외 업체에 의뢰하는 게 일반적이다”라고 말했다. 아이유의 음반도 독일의 레코드 제작회사 ‘팔라스’에서 제작됐다. 해외 제작과 수입은 단가가 비싸진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LP 제작이 자유로울 수 없다. 가뜩이나 침체된 한국 음반시장에서 LP 제작이 모험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대형 기획사 가수 등 인기가 보장된 아이돌을 중심으로 LP 발매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LP가 한국에서 완전한 음악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권현석 연구원은 “LP 문화가 하나의 향유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수용돼야 한다”며 “디지털 문화와 융합된 상품이 유통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준 문화 평론가는 “시장에서 LP가 떠오르고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대중의 판단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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