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공감이지, 구구절절 긴 글이 아니다
  • 신수경 북 칼럼니스트(서울문화사 출판팀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2 15:28
  • 호수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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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하지만 강렬한 한두 줄의 글로 공감 불러일으켜 SNS 문화가 출판계 트렌드 바꾼다

제4차 산업혁명을 맞는 우리에게 미래학자들은 ‘인류의 미래는 공감의 시대’가 될 것이라 강조한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바로 SNS를 통해서일 것이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카카오스토리·블로그·트위터 등 다양한 SNS 매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과거에는 일기장에 글을 쓰고 누가 볼까 꽁꽁 숨겨 놓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것을 외적으로 드러내고 공유하기까지 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까지 함께 생각을 나누고 반응을 이끌어내는 시대다.

 

요즘 사람들은 SNS에 올라온, 자신도 잘 모르는 누군가의 글·만화·일러스트·사진 등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감하는데, 사람들은 이렇듯 한 화면 안에서 볼 수 있는 짤막하지만 강렬한 한두 줄의 글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독서와도 연결되는데, 이들은 간결하면서도 짧은 글들을 선호하고 이미 SNS를 통해 친숙한 저자의 책을 열정적으로 대한다. 이런 독자들의 선호도가 출판계의 트렌드도 바꿔놓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SNS상의 스타들이 출판계 인기 이끌어

 

200만 부 이상 판매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은 출간 전에 이미 SNS에서 250만 명의 팬을 거느린 대표 스타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 지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짧지만 강한 위로의 말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엄청난 공감을 이끌어냈다. 혜민 스님의 성공에 힘입어 수많은 이들이 SNS상에서 함께 소통하며 공감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고,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내 마음 다치지 않게》의 필명 설레다 역시 900장이 넘는 메모 형식의 짤막한 글과 일러스트로 ‘세상의 괴로운 일은 당신과 모두에게 일어난다’라는 화두를 던진다. 서로를 향한 이해와 있는 그대로의 인정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의 저자 구작가는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소리를 잃었고, 몇 년 전 그녀는 시력도 점차 잃게 되는 병에 걸렸다. 소리가 없는 조용한 세상에서 빛까지 사라지게 되는 세상을 준비하고 있지만, 오늘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소소했던 하루가 기적처럼 느껴진다며 전혀 슬프지 않다고 한다. 다른 이들에게 따스함과 설렘까지 주는 그녀의 그림 에세이는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주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공감할 수 있는 독자들이 없었다면, 그 시련과 고통을 견뎌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의 그림 에세이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 역시 삽시간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책이다. 그는 네이버 일러스트 플랫폼인 그라폴리오에서 남자친구와 자신의 사랑을 모티브로 사소한 연애의 감정과 순간들을 담은 그림들을 소개했다. 글은 겨우 1~2줄에 지나지 않았지만, 소소하면서도 따뜻한 그의 그림과 글은 팬들의 마음에도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전해 주었다. 《그 쇳물 쓰지 마오》의 저자 제페토는 7년 동안 뉴스기사에 시 형식의 댓글을 남겨 수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댓글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댓글 시인’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하지만, 그는 댓글을 통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작은 것들에 대한 아픔과 고마움을 전하고자 했다.

 

이 밖에도 《어떤 하루》 《1cm》 《나에게 고맙다》 등 SNS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낸 작가들이 다시금 책을 통해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게 작가와 독자의 공감대 형성은 나의 고민이 작가의 고민이고, 작가의 고민이 곧 나의 고민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메모장에 또는 포스트잇에나 씀 직할 짧은 글과 일러스트가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일까? 시라고 말하기에, 그렇다고 에세이라고 말하기에도 좀 곤란한 부분이 있지만, 분명 서점에서는 이런 장르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독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책들의 영향으로 최근 공간의 여백과 짧지만 인상적인 글을 담은 책들이 꽤 많이 생겨나고 있다.

 

 

‘거추장스러운 말들이 왜 필요한가’

 

짧은 기간 동안 10만 부 이상 판매된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이 이렇게까지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거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영상 《말괄량이 삐삐》 《키다리 아저씨》 《빨강머리 앤》에 대한 향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작가의 단상(斷想)과 함께 그때의 향수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일과 연애와 꿈의 좌절에 끊임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우리를 다독이는 격려의 말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다. 한 줄의 비밀 쪽지 형식의 책도 있다. 가수 타블로의 《블로노트》는 저자가 세상에 던지는 짧지만 인상적인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일러스트도 없고, 그 어떠한 디자인적인 요소도 없다. 그저 1~2줄의 문장이 한 페이지의 전부다. 다양하고 복잡해진 사회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매일매일 간결한 문장으로 인생을 이야기해 준다. ‘거추장스러운 말들이 왜 필요한가.’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는 위로를, 삶에 유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을 전해 주며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일반적인 독서를 즐기는 독자들은 ‘이것도 책이야?’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런데 분명 책이다. 자꾸만 반복해서 읽고 곱씹어 보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과 가치를 작가와 독자는 단 한 줄의 글로도 이해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문제는 독자의 마음을 짧은 글줄로 얼마만큼 사로잡을 수 있느냐다. 즉 공감 능력이 문제다. 다시 미래학자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그들은 이 공감 능력이 창의적인 사고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책은 어떤 장르든 독자를 공감하게 만드는 내용이 아니면 더 이상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는 분명 출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야흐로, 공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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