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의 부활-②] 중국 정부, 민족주의 청년 부추기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2 17:31
  • 호수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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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무장한 ‘펀칭’ 등장한 중국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국가 이익 우선주의’ 앞세워 세계 곳곳서 민족주의 발흥 

 

국경과 민족의 경계가 모호해져 가는 게 세계사 흐름이었다. 철학자 칼 마르크스는 민족 소멸을 예언하기도 했다. 실제 노동력을 팔아야 먹고사는 노동자 입장에선 국가도 민족도 중요치 않다. 자본이 있는 곳이면, 돈벌이가 되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이동한다. 한국 역시 다문화가정이 뿌리내린 지 오래다.

 

이처럼 무뎌져 가던 민족 개념이 되살아나고 있다. ‘국가 이익 우선주의’라는 외피를 두른 채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 민족, 특정 국가에 한정된 게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자국 이익, 자국 자본과 노동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더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보호무역과 반(反)인종·이민주의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동맹 관계도 깰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과거 역사에 비춰 민족주의가 자칫 파시즘과 제국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시사저널은 미국과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에서 발흥하고 있는 민족주의 내지 국가주의 현상을 들여다봤다. 

2016년 1월 한·중 어업협정선 안쪽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해경에 압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2월17일 저녁 중국 언론매체는 “한국 해양경찰이 중국 어선에 실탄 900발을 발사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전날인 16일 밤 9시 전라남도 가거도 남서쪽 74km 우리 해역에서 중국 어선 30여 척이 불법 조업했다. 이에 어업지도선과 해경 경비함이 합동 검문을 실시했는데, 중국 어선들이 선체 양쪽에 등선방지용 쇠창살과 철망을 설치해 검색을 방해했다. 밤 10시 어업지도선은 1척을 나포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40여 척이 몰려왔다. 총 70여 척으로 늘어난 중국 어선은 나포된 어선을 탈취하려 어업지도선에 돌진하면서 위협을 가했다. 해경 경비함이 중국 어선들에 수차례 경고방송을 했으나 극렬한 저항은 계속됐다. 밤 11시15분 가거도 남서쪽 56km에서 M-60 900발을 발사했다. 그때서야 중국 어선들은 저항을 멈추고 중국 영해로 달아났다.

 

해경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무기를 사용했다. 해경은 2016년 11월부터 무기사용 매뉴얼에 따라 총 20회에 걸쳐 실탄 3005발을 발사해 폭력을 행사하는 중국 어선에 강경 대응하고 있다. 중국 언론매체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 다만 그 보도 방식과 논평이 문제였다. 대부분의 포털사이트와 언론은 ‘군사’ 뉴스로 이 사건을 다뤘다. 또한 시기 불명의 불타는 중국 어선, 2014년 10월 해경이 쏜 총탄에 맞은 중국 어민의 X레이 등 자극적인 사진을 게재했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한국 해경이 중국 어선에 가하는 폭력적인 집법행위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여러 차례 반대 의견을 밝혔다”고 지적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관련 기사에 수천 개의 댓글을 달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댓글에서는 “우리는 단 한 방도 안 쏘았는데, 그들은 900발이나 쏘았다” “조업에 나서는 어선들은 한국 해경에 맞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 등 한국과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

 

 

펀칭, 극단적 민족주의와 애국심으로 무장

 

물론 “과거 우리 영해에서 남획을 일삼아 물고기가 사라져, 지금은 한국으로 달려가 조업을 하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말을 해도 이치에 맞아야 한다”는 일부 이성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펀칭(憤靑)’의 매도와 욕설에 금방 뒤덮이고 말았다. 펀칭이란 ‘분노한 청년’이란 뜻이다. 원래는 불공정한 사회현상에 불만을 가진 젊은이를 가리켰다.

 

그러나 펀칭은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애국심으로 무장한 젊은이로 변질됐다. 실제 펀칭은 모든 문제를 ‘중국 중심주의’ 입장에서 해석한다. 사건의 원인과 본질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오직 중국의 국익만이 이들의 판단 근거다.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반미(反美)·반일(反日)·반한(反韓) 등으로 전선을 끊임없이 확장한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조종을 받는 언론매체도 한몫한다. 중국 언론은 펀칭을 부추기면서 여론몰이를 한다. 그 선봉에 환구시보가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펀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발음이 같은 ‘똥 분(糞)’으로 바꾸어 ‘펀칭(糞靑)’이라 조롱할 정도다. 하지만 펀칭은 애국주의 교육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세력을 늘려가고 있다. 다만 펀칭이 부조리한 사회문제에 분노하고 있어, 중국 정부에 양날의 칼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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