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1~2개 차이가 가져온 WBC 19이닝 1득점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3.0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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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 규정대로 적용하니 방어율 40% 감소’ 논문도 있어

3월6일 WBC 대표팀이 이스라엘에 1대2로 패한 뒤, 김인식 감독이 과거에 썼던 칼럼이 기사를 통해 재등장했다. 지난 해 8월25일 쓴 칼럼인데 당시 김 감독은 “지금의 타고투저에는 거품이 있다고 생각한다. 타자들이 잘 친다고는 하는데, 오히려 일본과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허점 많은 스윙으로 한가운데 들어오는 약한 공들을 공략해서 타율만 높아진 선수들이 더 많다. 외국인 선수들을 상대로는 더 약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때만 해도 김 감독의 걱정이 현실이 될 거라고ᅟ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개막하자마자 폐막”이라는 팬들의 비난이 쏟아진 이번 WBC에서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이스라엘에 패하고 네덜란드에 패했다. 19이닝 1득점의 초라한 공격 성적표가 인상적이었다. 3할 타자 40명 시대를 맞이했던 지난해 KBO를 생각해보면 더욱 쓰라릴 법 했다. 당장 ‘KBO 거품론’이 제기됐다. KBO 내 타율은 허구라는 얘기인데, 이런 타고투저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주목받은 것 중 하나가 ‘좁은 스트라이크존’이었다. 김 감독이 쓴 칼럼대로 좌우가 좁으니 공은 가운데로 몰리고 타자는 치기 좋은 공을 때려내 타율이 올라가니, 이게 거품의 원흉이라는 얘기였다.

 

이번 WBC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만든 대회다보니 규칙 역시 메이저리그를 따르게 된다. 스트라이크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우리 타자들은 적응이 필요한데, 이게 오랜 기간 익혔던 거라 말처럼 쉽지 않다. 메이저리그와 KBO의 스트라이크존은 상하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좌우에서 폭이 다르다. 메이저리그는 좌우가 넓다. 우리네 프로경기에서 공이 한 두 개 쯤 빠진 코스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스트라이크콜이 이뤄진다. 다른 존을 맞이한 선수들은 자신이 설정한 존이 흔들리게 되는 셈이니 난관이 따로 없다. 쿠바와 호주의 평가전을 치른 뒤 대표팀 중견수인 이용규 선수는 “볼인줄 알고 흘려보냈는데,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공 2개 정도까지도 스트라이크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빈타에 허덕이던 WBC 한국대표팀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홈에서 2연패했다. ⓒ 연합뉴스

투고타저 극복하려는 MLB 방안은 ‘스트라이크존 축소’

 

이 스트라이크존이 공격력과 상호작용이 이뤄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최근 메이저리그가 꾀하고 있는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같다. 올해 메이저리그의 변화 중 하나로 예상되는 게 스트라이크존의 축소다. 2014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새로운 수장에 오른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얼마 전 현재의 스트라이크존을 변경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물론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현재 논의되는 변경안은 존의 가장 아래쪽을 무릎 아래쪽이 아니라 무릎 윗쪽으로 끌어올리는 거다. 예전보다 공 1~2개 쯤 위에서 스트라이크존이 형성된다는 얘기인데 이럴 경우 타자가 가장 공략하기 어려웠던 낮은 스트라이크를 투수가 던질 수 없게 된다. 작년에 스트라이크가 됐던 낮은 패스트볼이 올해는 볼이 될 수 있다. 

 

투수의 머리가 아플만한 이런 시나리오는 왜 추진되고 있을까. 배경에는 메이저리그의 투고타저 현상 때문이다.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팀 타율이 가장 높은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로 0.282를 기록했다. 팀 타율 0.260 이상인 팀이 고작 9개였고 0.250보다 낮은 팀도 9팀이나 됐다. 규정 타석에 도달한 선수가 146명이었지만 3할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25명에 불과했다. 개인 타율이 0.250보다 낮은 규정타석 선수도 30명이나 됐다. 

 

(반대로 KBO의 경우 팀타율이 가장 높은 팀은 두산 베어스로 0.298이었다. 팀 타율이 가장 낮은 팀은 kt 위즈로 0.276이었다. kt를 제외하면 모두 팀 타율 0.280 이상의 강타선이었다. 규정 타석을 달성한 선수는 55명이었는데 3할 이상을 기록한 선수만 40명이었다. 규정 타석 타자 중 타율이 0.250보다 낮은 선수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2016년 메이저리그 1경기 평균 득점은 2015년 4.48점보다 낮은 높은 4.25점이었다. 2000년 5.14점과 비교해 보면 경기당 1점 이상이 줄었다. 심지어 2015년에는 노히트노런 경기가 7게임이나 나오며 투수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워싱턴 내셔널스 에이스인 맥스 슈어저는 42년 만에 한 시즌 두 차례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이런 흐름이 길어지자 메이저리그는 해법을 강구했고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지면 타자의 위력이 늘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KBO의 스트라이크존(왼쪽)과 MLB의 존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 sbs 뉴스 캡처

신기술 감시 피해 스트라이크 열심히 적용한 심판 덕분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있다. 2000년의 5.14점 평균 득점은 약물 시대에 이뤄진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브라이언 밀스 플로리다대 교수는 ‘Expert Workers, Performance Standards and On-the-Job Training : Evaluating Major League Baseball Umpires’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심판의 스트라이크존 확대가 이런 결과에 기여했다고 증명했다. 

 

밀스 교수는 여러 해 동안 축적된 심판의 스트라이크콜을 추적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심판이 정확하게 스트라이크를 선언한 확률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9% 상승했다. 반면 정확한 볼 판정도 2.63% 올랐다. 이런 변화는 같은 기간 동안 투수의 방어율이 최대 40%나 떨어진 원인이 됐다고 밀스 교수는 지적했다. 그의 지적대로라면 투고타저 현상은 심판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늘려서라기보다 규정대로 스트라이크존을 적용하려고 애쓴 덕에 생긴 결과다. 투구의 속도와 궤도를 추적하는 ‘Pitch f/x’ 등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서 판정의 정확도를 모니터 할 수 있게 됐고 심판들이 신기술을 의식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특히 타자 무릎 근처의 낮은 공은 이전에 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점 스트라이크로 판정하게 됐다. 밀스 교수는 “낮은 공을 타자가 안타로 만들 확률은 높은 공보다 27%나 낮다. 따라서 투수는 낮게 공을 던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의든 타의든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지면서 투수가 던질 공이 많아졌고 타자는 점점 불리해져 투고타저라는 결과가 메이저리그서 나타나게 된 셈이다.

 

반대로 타고투저가 심한 KBO는 MLB와 반대의 시도를 하려고 한다. 이미 김풍기 KBO 심판위원장은 캠프 기간에 각 구단을 돌며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설명을 했다고 한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의도적으로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 규정된 범위 안에서 스트라이크존을 최대한 넓게 판정하겠다는 의미다”고 설명했다. 규정에 적힌 대로 스트라이크를 적용하겠다는 건 결국 스트라이크존의 확대를 뜻한다. WBC의 변수이자 국내 타자들의 거품론을 몰고 온 스트라이크존이 2017년 KBO 타자들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올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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