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호랑이’ 한국, ACL에서는 종이호랑이?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9 12:59
  • 호수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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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밀리고, 일본에 쫓기는 샌드위치 신세

2월28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열린 우라와 레즈와 FC서울의 2017 AFC 챔피언스리그(ACL) F조 2차전. 전반 21분 우라와 레즈의 측면 미드필더 우가진 도모야의 골이 터지자 중계 카메라에는 아연실색하는 황선홍 서울 감독의 표정이 잡혔다. 전반전이 반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서울이 허용한 4번째 실점이었다. 그 뒤에도 서울은 1골을 더 허용하며 2대5로 완패했다. J리그의 강호 우라와가 상대인 데다 원정인 점을 고려했을 때 쉽지 않은 승부는 예상했던 터였다. 하지만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큰 점수 차이는 국내 축구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아시아 축구 최상위 클럽대항전인 ACL에서 한국 4개 클럽(FC서울, 수원 삼성, 제주 유나이티드, 울산 현대)의 출발이 좋지 않다. 팀당 조별리그 2경기씩을 마친 현재 K리그는 중국 슈퍼리그와 일본 J리그에 크게 밀린 상태다. 조 1위를 달리고 있는 팀은 하나도 없다. ACL이 2009년부터 32개국 참가 체제로 규모를 확대한 이래 가장 부진한 출발이다.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중국, 일본과 달리 소극적인 투자에 그친 K리그가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한국 프로축구팀들은 초반 2경기에서 2승 2무 4패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장쑤 쑤닝이 영입한 콜롬비아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 로저 마르티네즈가 2월22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드리블 하고 있다. © PIC 연합

2승 2무 4패, 역대 최악의 출발

 

충격은 조별리그 1라운드부터였다. K리그 4팀이 받은 성적표는 1무 3패였다. 단 한 팀도 승리하지 못한 라운드였다. 서울과 제주는 홈에서 각각 상하이 상강과 장쑤 쑤닝에 0대1로 패했다. 울산은 J리그 챔피언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0대2로 패했다. 수원만이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원정 경기에서 1대1로 비겼을 뿐이다. 수원이 유일하게 골을 기록했는데 그마저도 상대의 자책골이었다.

 

2라운드는 서울의 완패로 출발했다. 수원은 홈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인 광저우 헝다를 맞아 세트피스(미리 정해 놓은 패턴대로 공격하고 수비하는 행위) 득점을 잇달아 성공시켰지만 후반 막판 실점하며 2대2로 비겼다. 그나마 자존심을 세워준 것은 울산과 제주였다. 울산은 홈에서 호주 A리그의 브리즈번 로어를 6대0으로 대파했다. 제주는 삼일절에 열린 감바 오사카와의 미니 한·일전에서 4대1로 승리하며 홈 패배를 원정에서 확실히 만회했다.

 

초반 2경기에서 K리그가 거둔 성적은 역대 최악이다. 2승 2무 4패로 2016년과 2015년에 거둔 4승 2무 2패의 성적이 완전히 뒤집혔다. 2014년에 K리그는 5승 3무를 기록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 점점 하락세를 타고 있다. 기존에 가장 부진했던 2012년의 2승 3무 3패보다 더 나쁜 결과다. 표면적으로는 지난 시즌 ACL을 정복했던 전북 현대의 부재가 일으킨 현상이라는 분석이 있다. 전북은 과거 시도했던 심판 매수가 지난해 적발돼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ACL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K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 빠지며 국제 경쟁력의 손실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북과 대등한 전력이라는 서울이 대회 초반에 연패, 그것도 5골이나 허용하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것은 단순히 설명되지 않는다.

 

K리그 클럽들의 초반 부진의 실체는 ‘저비용 고효율’ 축구의 한계라는 지적이다. 중국과 일본이 적극적인 투자로 선수단을 한층 강화한 것과 달리 한국은 오히려 씀씀이가 줄어들고 있다. K리그는 모기업의 지원에 1년 예산의 90% 이상을 의존하는 불안한 구조다. 모기업의 정책이나 경영 상태에 따라 구단 살림살이도 휘청거린다. 수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전환되며 삼성그룹 산하의 스포츠단에 대한 지원은 크게 줄었다. 지난 시즌 수원은 K리그에서 강등 위기까지 가는 수모를 겪었다가 FA컵 우승으로 가까스로 명예회복을 하며 ACL에 출전했다. 하지만 겨울 동안 권창훈, 이상호가 떠났다. 취약 포지션을 보완했지만 현상 유지 차원이었다.

 

황선홍 FC서울 감독이 2월28일 우라와 레즈(일본)와의 경기에서 완패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한국 프로축구연맹 제공

저비용 고효율 축구, 임계점 도달했나
 

GS그룹의 지원을 받는 서울은 수년째 예산이 제자리걸음이다. 자생력을 강화하며 자체 수입을 늘리고 있지만 중국처럼 대형 선수를 영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은 간판 공격수인 아드리아노를 중국 2부 리그의 스좌장 융창으로 보냈지만 큰 이적료를 주고 영입한 선수는 없었다. 이상호, 신광훈, 하대성, 마우링요 등을 보강했지만 죽음의 F조에서 경쟁하기는 버겁다. 그나마 겨울 동안 국내외 선수 보강에 적극적인 투자를 한 제주, 울산이 각각 승리를 챙겼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제주는 기존 선수를 지키면서 준척급 선수를 적절히 채워 팀의 두께와 조직력 강화를 극대화했다. 울산은 전북 대신 갑작스럽게 ACL에 나서면서 외국인 보강에 많은 돈을 들였다. 결국 그 선수들이 맹활약하며 첫 승을 거둘 수 있었다.

 

투자의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팀은 중국 클럽들이다. ‘축구굴기’를 앞세운 중국은 한층 강화된 외국인 선수와 그들을 뒷받침하는 자국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며 챔피언스리그에서 무서운 질주를 보이고 있다. 상하이는 총 1500억원을 들인 외국인 3인방 헐크, 오스카, 엘케손을 앞세워 조별리그 2연승을 달렸다. 특히 서울 원정에서는 헐크가 괴력의 중거리 슛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중국 축구가 대표팀, 클럽팀을 포함해 서울에서 거둔 역사적인 첫 승리였다. 광저우, 장쑤는 지난해 영입했던 특급 외국인들을 모두 유지하고 자국 선수 수준을 높이며 여유롭게 조 1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 클럽들도 올 시즌을 도약의 원년으로 삼았다. 한국, 중국에 밀려 최근 3년간 ACL에서 부진을 거듭했던 J리그는 지난해 영국의 퍼폼 그룹과 맺은 초대형 중계권 계약(10년 2조원)으로 재정 규모가 급상승했다. J리그는 우승 상금을 100억원으로 대폭 올려 상위권 팀들에 강한 동기부여를 함으로써 ACL에서의 분전을 유도하고 있다.

 

자국 선수의 실력이 우월했고 잠재력 있는 외국인 선수를 발굴해 셀링리그라는 오명 속에서도 ‘저비용 고효율’의 기조를 유지했던 K리그는 임계점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밀리고 일본에 쫓기는 샌드위치 현상이다. 그 징조가 올 시즌 ACL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ACL 우승을 이룬 최강희 감독은 “경쟁하는 팀들의 퀄리티는 높아지는데 K리그는 후퇴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50%도 안 되는 재정으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ACL에서 성적을 내는 건 점점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며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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