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사회보험’ 서류 떼느라 휴가만 이틀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7.03.09 13:06
  • 호수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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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회보험노무사 도움 받도록…제도 개선 필요성 대두

한 중견기업 재무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상범씨(35)는 최근 회사에서 눈칫밥을 먹었다. 경북 포항에 있는 아버지의 장애연금 신청을 위해 이틀이나 휴가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상 가장 바쁜 연초에 어쩔 수 없이 하루 연차를 낸 것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하루 더 연차를 통보하니 직장 상사의 반응이 싸늘해졌다.

 

물론 김씨에게 불가피한 사정은 있었다. 김씨의 아버지는 2015년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판정을 받자마자 치료를 위해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국립암센터로 옮겼다. 입원실이 마땅치 않은 탓에 병원 앞에 월세방도 구했다. 그러던 중 국민연금 고지서를 받고 계속 내야 하나 궁금해 전화를 했더니 장애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병원비와 각종 간병에 들어가는 비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장애연금을 신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김씨의 아버지는 혼자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빠졌다. 어머니가 복잡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 어려워서 결국 김씨는 눈칫밥을 먹더라도 장애연금을 신청하기 위해 연차를 냈다.

 

하지만 하루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던 김씨의 예상은 빗나갔다. 전화로 국민연금공단에 문의해 안내 서류를 충분히 적어놨다. 해당 지사로 접수하라는 말에 서류를 접수한 뒤 경북 포항시까지 내려갔지만, 병원에서 진료기록지를 미처 받아가지 못했다. 초진 진료기록지와 조직검사결과지까지 챙겼지만, 1년이 지난 시점 이후 6개월간의 진료기록지까지 챙겨야 하는지 몰랐다. 김씨는 결국 경기도 고양시까지 올라와서 다시 신청한 뒤 다음 날 다시 경북 포항지사를 찾아야 했다.

 

© 일러스트 김세중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보험제도

 

알아야 산다. 혼란의 시대 속에서 제도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사회는 국민들에게 ‘팔방미인’이 될 것을 요구한다. 은행 통장을 만들기 위해 서명날인을 해야 하는 서류만 10개나 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연초 ‘연말정산 전쟁’도 마찬가지다. 자칫 하나라도 놓치면 수십만원을 더 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일도 부지기수다.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은 발버둥친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하고 뉴스를 찾아본다. 정부기관에 전화해 상담을 받지만, 전부 알아듣는 이는 많지 않다.

 

국민연금·국민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제도도 알면 알수록 더욱 복잡하게 느껴진다. 국민연금법은 1973년 국민복지연금법이란 명칭으로 제정된 뒤 53차례나 개정돼 현재의 틀을 갖추게 됐다. 이 가운데 2007년 이후 최근 10년간 법이 바뀐 횟수만 34차례나 된다. 1988년 국민연금법으로 바뀐 뒤 직장생활을 하는 근로소득자의 경우, 소득의 9%에 해당하는 금액을 본인과 회사가 각각 절반인 4.5%씩을 부담하도록 했다. 2013년부터는 노령연금 지급 연령이 만60세에서 만65세로 바뀌기도 했다. 큰 틀의 내용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해당 법 소관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보좌진들조차 제도의 상세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국민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1999년 제정된 국민건강보험법 역시 36차례 개정 과정을 거쳤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알아서 책정되는 보험료를 내고, 의료비를 지원받는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다.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의 경우 지역가입자 보험료는 재산 등을 기준으로 책정된다는 정도다. 법조항에는 ‘요양급여’ ‘선별급여’ ‘보수월액’ ‘이의신청’ 등 어려운 단어들이 나열돼 있다. 제도를 파악하기 위해 법조항을 찾아본다 하더라도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제도의 복잡성으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 2012년 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실업자의 경우 임의계속가입 제도를 통해 보험료를 경감받을 수 있다. 회사를 관둔 직후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바뀌지만 건강보험료를 그대로 유지해 주는 제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제도를 모르고 지역보험료를 낸다. 특히 피부양자가 분리돼 별도의 보험료가 이중으로 발생한다.

 

국민연금공단 송파지점에서 가입자들이 연금제도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취업도 하지 못한 청년 구직자에게 국민연금 고지서가 통보되는 일도 허다하다. 실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납부예외 신청을 통해 보험료 납입을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납부를 중단시킨다고 해서 이득은 아니다. 나중에 노령연금을 받을 때 가입기간 또한 고려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작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정부기관의 상담 또한 부실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주변 사람들의 충고나 각종 기사, 온라인 검색을 통해 내용을 확인한다. 하지만 해마다 바뀌는 탓에 변경된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국민연금공단 등에서 각종 자료, 문의답변, 상담 등을 통해 제도를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은 찾기 힘들다. 개인마다 다른 상황 속에서 일반적인 경우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공단과 일반 국민의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경우 더더욱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 어렵다.

 

 

일찌감치 전문가 조력 제도화한 일본

 

일본도 사회보험법이 시행된 지 50년 이상 지나자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도가 복잡하게 설계됐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사회보험제도에 대해 복잡한 행정 문제로 불만이 쌓이자, 전문가가 대신 적절한 상담 대응이나 절차 대행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국민들은 이들을 통해 유족연금이나 장애연금 등 복잡한 행정 업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처럼 공단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론 충분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았다. 상담이나 서류 준비 등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노무관리의 근대화가 절실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적절한 노무지도와 함께 사회보험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사회보험노무사’ 제도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병에 걸려 휴직을 하고 퇴직한 경우 여러 제도가 맞물려 있다. 퇴직 전 휴직 중에는 건강보험에서 상병수당금이 지급된다. 상병수당금은 일정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으면 퇴직 이후에도 1년6개월까지 지급된다. 만일 질병으로 인해 일할 수 없고 장애가 있는 경우 장애연금을 수급하기도 한다. 이 부분이 끝난 뒤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절차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국민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아픈 와중에 공단에 문의해도 제대로 된 답변을 듣기는 상당히 어렵다. 이를 사회보험 전문가에게 설명을 듣고 업무를 대행할 수 있도록 하면 기업이나 국민들의 입장에서 편리성이 증대된다. 사회보험노무사가 직접 사업장의 보험가입 상황 점검 및 확인 등을 실시해 미가입사업장 2만8252곳을 발굴하는 실적을 올렸다.

 

한국공인노무사회는 2월24일 한·일 국제심포지엄을 열고 일본의 사회보험노무사 제도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 한국공인노무사회 제공

고이소 유코(小磯優子) 일본 전국사회보험노무사회연합회 이사는 “(일본에서) 사회보험노무사는 노동보험·사회보험 법령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상담 업무를 행하면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전문가가 대신 적절한 상담 대응이나 절차 대행을 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보호는 물론 원활한 운영과 행정기관의 부담경감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흔히 가족 중에 누군가 사망했을 경우 대부분 법무사를 찾아간다.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다. 상속 등기는 물론 상속세를 알아서 처리해 준다. 주택을 구입했을 때에도 복잡한 등기, 취득세 납부 업무를 법무사에게 맡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복잡한 세무 제도를 알지 못하는 탓에 세무 업무를 맡길 세무사를 찾는다.

 

하지만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제도적으로 대리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이 1년에 2조원가량 부담하는 상속세에 대해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한 해 납부하는 보험료가 77조원(건강보험 43조원, 국민연금 34조원)에 달하는 사회보험에 대해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고용·산재보험 전문가인 공인노무사에게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관계 업무를 대리하도록 하는 공인노무사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다른 법안에 밀려 여전히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에 대해 김양건 국회 환노위 전문위원은 “최근 저출산·노령화에 따라 사회보험을 통해 개인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커지고 있으나, 사회보험 관계는 그 내용이 복잡해 일반 수급권자가 독자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 어렵다”며 “사회보험 영역을 포괄하는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공인노무사가 사회보험 분야의 실무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직무에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이 배제돼 있다는 것은 공인노무사 자격시험의 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4대 사회보험 전 분야에 걸쳐 공인노무사의 역할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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