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에 금주구역 지정해야”
  • 조문희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9 14:38
  • 호수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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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범죄 증가해도 법안은 제자리걸음

서울 중랑구에 사는 공보경씨(여·24)는 열 발자국 거리의 집 앞 공원을 일부러 찾지 않는다. 분수가 있고 산책로도 잘 가꾸어져 있는 곳이지만, 밤만 되면 취객들로 아수라장이 되는 탓이다. 공원은 술에 취한 노숙자나 학생들이 고성방가를 하고 술병 등 쓰레기가 나뒹구는 곳이 됐다. 공씨는 “어릴 적엔 (공원을) 자주 찾았는데 이제는 주민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홍익어린이공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근처에서 회사를 다니는 조아무개씨(남·27)는 2월24일 퇴근길에 봉변을 당했다. 길가에 드러누운 취객 탓에 한동안 차를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조씨는 “평소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금요일 밤이 되면 더 심해져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공공장소에서 음주 관련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금주구역’ 지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체 범죄자 중 술에 취한 사람의 비율은 2005년 18%에서 2015년 26%로 증가했다.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2008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공공장소 음주행위에 대한 국민태도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금주구역 지정을 찬성했다.

 

해마다 여름밤이 되면 강원도 경포대해수욕장은 피서객들의 음주와 그들이 두고 간 술병과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 시사저널 포토

금주구역 지정 번번이 실패 “경제논리 탓”

 

문제는 금주구역 지정과 관련한 움직임이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공공장소에서 음주와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술 마시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며 반발하는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강원도 강릉 경포대해수욕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2012년 금주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주변 상인들과 관광객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듬해 금주구역 지정이 취소됐다.

 

서울시 역시 지난해 6월 비슷한 내용의 조례안을 마련했지만 답보 상태다. 공공장소에서 음주나 주류 판매 시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은 6개월째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조례안을 대표발의한 김구현 서울시의원은 “금주구역을 설정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불특정다수인 데 비해, 피해를 보는 주류업체는 매출감소라는 명확한 타격을 입는다. 법안 처리는 이익단체를 통해 반영되기 때문에 이해관계를 따질 수밖에 없다”며 조례안이 처리되지 않는 이유를 말했다.

 

지난해 12월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 법률안’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금주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윤종필 의원실 측은 “지자체에서 금주구역을 지정해도 상위법이 없어 처벌하지 못했다. 지자체에서 처벌 규정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당 개정안을 만들었다”며 개정안 마련 취지를 설명했다. 윤 의원실 측에 따르면, 전국 244개 지자체 중 51곳(20.9%)이 금주구역 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특정 장소를 명시한 곳은 2곳(경북 상주시, 충북 증평군)뿐이고, 나머지 지자체들은 ‘지정할 수 있다’는 근거 규정만 둔 수준이다.

 

그러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류협회 등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탓이다. 주류협회 측은 “금주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선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주지역을 설정하면 주변 상인들만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했다.

 

서울 홍대 앞 홍익어린이공원 부근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한 남성이 부축해 주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한국 음주규제 후진국 수준”

 

금주구역 지정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2월28일 서울 뚝섬 한강공원 앞에서 만난 유민아씨(여·24)는 “어린 동생들과 공원에 나왔는데 취객들이 행패 부리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뭘 배울까 걱정된다. 담배는 강하게 규제하면서 술은 왜 안 되나”라고 말했다. 최민우씨(남·29)도 “우리나라는 술에 너무 관대하다. 공공장소에서라도 술을 못 마시게 규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음주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금주구역 지정에 찬성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엄호란씨(여·24)는 금주구역 지정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한강에서 치맥(치킨과 맥주)을 못 먹으면 서울 사람들은 무슨 낙으로 살겠냐”며 걱정했다.

 

이에 대해 김구현 서울시의원은 “서울시는 한강공원 전체를 금주구역으로 설정할 생각이 없다. 어린이나 노약자와 같이 음주로 인해 피해를 보기 쉬운 이들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종필 의원실 측도 “국가가 금주구역을 일괄적으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고 지자체 측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자체들이 여러 방면으로 숙고를 해서 지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주구역 지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애숙 청주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음주에 관대한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나라 음주규제 정책은 매우 후진적인 수준이다. 술 가격도 싸고 규제도 음주운전이나 청소년 주류 판매 관련한 정도”라며 강도 높은 음주규제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외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음주규제 강도가 세다. 미국 뉴욕주, 캘리포니아주 등은 공원에서 술을 들고 다닐 수 없다. 캐나다 역시 공공장소에서 술을 개봉한 채 들고 다니기만 해도 처벌한다. 싱가포르는 심야에 음주를 제한하고, 호주 시드니는 야간에 술을 판매할 수 없다. 영국에서는 경찰이 공공장소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음주규제 정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주문했다. 정애숙 교수는 “중앙정부가 나서서 음주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과거 흡연규제도 처음에는 반발이 매우 심했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정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워낙 찬반이 갈리는 정책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합의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 상인 등 피해를 보는 이들을 포용하고 어느 정도 보상을 해 줄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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