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조현병 환자들’ 위험 부른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6 10:08
  • 호수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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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만 명 정신질환자 중 10만 명 정도만 치료받아

최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40대 여성 황아무개씨(48)가 80대 노모를 향해 칼을 휘두르다가 가족의 제지를 받았다. 황씨는 “엄마는 죽어야 한다”며 부엌칼로 노모에게 상해를 입혔다. 때마침 집에 들어온 오빠가 막지 않았다면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황씨는 중학생 때부터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평소 노모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증상이 심해지자 결국 어머니에게 칼을 휘둘렀다. 경찰은 황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 이번 사건은 자칫 ‘존속 살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뻔했다.

 

조현병을 가진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1월 포항에서는 40대 아들이 흉기로 아버지를 살해했다. 그는 평소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 했다. 오늘도 나를 죽이려고 해서 내가 먼저 죽였다”고 진술했다.

 

같은 달 전남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조현병 환자인 30대 아들이 60대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아들은 “살해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나를 죽일 것이다”는 환청(幻聽)을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조현병이 묻지마 범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7월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50대 남성이 70대 이웃주민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잡고 넘어뜨린 뒤 “전화하면 죽이겠다”면서 목에 흉기를 들이대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경찰이 출동하자 흉기를 들고 찌를 듯이 달려들기도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가해자는 조현병 환자였다.

 

© 일러스트 정재환

사회에서 방치된 환자들

 

조현병 환자의 특징은 대개 망상과 환각, 환청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 주변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환청이 들린다거나 환영(幻影)을 봤다며 떠들고 다니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이웃에게 욕하거나 의심하는 사람, 반복적으로 괴성을 지르는 사람 등이다.

 

조현병 환자들은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증상이 심해질 경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격적인 성향을 갖는다. 대수롭지 않은 상대방의 언행이 피해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이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조현병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병의 진행을 막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상당수의 환자는 아무런 치료 없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조현병 환자는 전국에 50만 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치료를 받은 사람은 이 중 5분의 1인 10만 명 정도에 그치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은 증상이 재발할 위험성도 매우 높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정신의학과 허버트 멜처 교수는 “유지요법을 진행하지 않을 경우 1년 이내에 재발할 확률이 60~70%, 2년 이내에 재발할 가능성은 거의 90%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이른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의 범인 김아무개씨(35)도 조현병 환자였다. 당시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으나 정신상태 등을 감정한 끝에 ‘조현병’에 의한 살인으로 결론났다. 검찰의 정신감정 결과, 김씨는 피해망상과 환청 등의 증세를 보였다. 김씨는 조현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었지만 퇴원한 뒤에는 약물 복용을 중단했다. 그 후 가출해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해 왔다. 김씨는 사실상 방치된 상태에 있었다.

 

같은 해 10월 서울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경찰관을 살해한 성병대(47)도 과거 수감 시절부터 조현병 진단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반감을 키웠고, 결국 살인 사건의 가해자로 돌변했다.

 

법정에 가면 조현병 환자들은 죄질에 비해 아주 가벼운 형을 선고받거나 감형 요인이 된다. 지난해 5월 수락산에서 6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김학봉(62)도 조현병 환자였는데, 그는 15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김학봉은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조현병을 이유로 8년으로 감형됐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씨가 2016년 5월24일 서울 강남역 인근 주점 화장실에서 범행 장면을 재연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충동적인 범죄 막는 것 불가능

 

물론 조현병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통계적으로 봐도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범죄율은 일반인들보다 오히려 낮다. 전체 범죄자 중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0.3~0.4%로 매년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조현병 환자들이 범행에 나설 경우 예측이 불가능하다. 조현병 환자들의 사건에서 보듯이 환청이나 망상에 사로잡힌 충동적인 범죄를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령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의 경우 그 원인이 정신질환(36%), 알코올·약물 중독(35%), 현실 불만(24%) 순으로 나왔다. 통계에서 보듯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묻지마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범행 장소의 61.5%가 길거리나 공공장소였고, 피해자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당했다. 길을 가거나 운동하다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심지어 출근하던 지하철 안에서도 당할 수가 있다.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두르는 탓에 방어하기도 어렵다.

 

조현병의 경우 ‘방치’보다는 적극적인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극구 꺼려 한다. ‘조현병’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위험이 야기될 수 있다.

 

수년 전 경기도 파주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던 30대 남성이 길 가는 여중생을 뒤에서 휴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일이 있었다. 가해자는 함께 살던 노모가 사망하면서 조현병 약을 복용하지 않고 치료도 중단한 채 방치돼 있었다. 범행 이전에도 사전 징후가 있었다. 가해자가 괴성을 지르거나 기이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했지만 이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주민들은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봐 쉬쉬하며 지내다가 결국 화를 불렀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단지에 조현병 환자가 살고 있을 경우 아파트 관리실에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환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가급적 주민들과 마찰이 없도록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는 5월말부터는 정신병원 강제 입원이 사실상 어려워진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해 강제 입원 규정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취지는 정신질환자 인권보호와 강제 입원으로 인한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그동안 정신병원 강제 입원을 악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고, 부작용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거나 체계적으로 관리할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는 분명 문제다.

 

당장 이 법이 적용되는 5월 이후에는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는 정신질환자 8만여 명이 한꺼번에 퇴원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퇴원하는 환자들 중에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될 경우 또 다른 비극적인 사고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환자 본인도 위험하지만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도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물론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이에 대한 대안도 마련돼 있다. 경찰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게 한 것이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제44조 2항)에 따라 경찰은 범죄 가능성이 있는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을 의사 등 의료 관계자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정신건강 상태를 살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격리 조치해 범죄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현재는 정신장애가 의심되는 현행범에 한해 경찰관의 응급입원 조치가 가능하다.

 

‘수락산 살인’ 피의자 김학봉씨가 2016년 6월3일 현장검증을 위해 서울 수락산 등산로 범행 현장에 서 있다. © 연합뉴스

체계적인 관리, 치료 시스템 마련해야

 

장애인 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전문적 지식도 없는 경찰이 자의적인 판단을 통해서 가두고 수용하는 것은 예방 차원보다는 인권침해 소지가 더 크다”고 지적한다.

 

장애인 단체들이 우려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경찰도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신질환자의 범죄 위험도를 진단할 ‘정신건강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일선 경찰서에 내려보낼 방침이다. 경찰관이 현장에서 정신질환자의 폭력성과 위험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체크리스트는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나’ ‘지금 자해(자살)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드나’ 등 총 11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고, 문항마다 고·중·저위험 3단계로 분류를 했다. 고위험이 1개 이상이면 경찰관이 곧바로 정신과 전문의의 동의를 받아 강제 입원 조치를 할 수 있다. 강제 입원 환자는 본인과 가족이 거부해도 입원 후 3일(72시간) 동안 퇴원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경찰에서 만든 ‘정신건강 체크리스트’는 3년 전 영국의 한 대학에서 발표한 논문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나 ‘졸속 행정’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연구용역까지 발주했는데도 충분한 검토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경찰은 적용 대상과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조현병 환자들을 이방인 취급하거나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이들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실시한 ‘여성안전 대책 당·정·외부전문가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중증 정신질환자가 의료기관에서 퇴원한 후 지속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철 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은 “의료기관에서 정신보건간호사나 사회복지사가 퇴원 후 환자의 치료 현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사례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기관에서 사례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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