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핵 원죄의 싹을 제도적으로 뽑아내야
  • 김세형 매경 논설고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7 16:35
  • 호수 14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인이 기억하는 대통령 탄핵은 2016년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그리고 2017년 한국의 박근혜, 두 사람일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사 229년에서 세 사람(존슨·닉슨·클린턴)이 탄핵 절차를 밟았지만, 끝내 탄핵된 경우는 없었다(닉슨은 탄핵 선고 직전 하야로 물러났다). 대통령의 탄핵은 ‘백 년 만의 고독’보다 더 확률이 낮은 사건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13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절차에 이어 이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국 탄핵으로 물러나게 된 것은 대단히 희귀한 케이스다. 부끄러운 세계 신기록이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헌재가 밝힌 대로다. 최순실씨 등을 봐주느라 헌법·법률을 위반하고, 은폐하고, 검찰수사도 거부해, 헌법 수호자로서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을 여성 헌법재판관이 파면하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국민 신임을 배반했다는 격한 어휘도 등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2016년 탄핵된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 연합뉴스·AP연합

탄핵은 의원내각제 국가에는 없고 대통령제 국가에만 있는 정치현상이다. 왜 유독 한국의 대통령은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곤 하는가. 서울대 법대 교수를 역임한 정종섭 의원은 “한국의 대통령은 임금님이다. 대통령선거는 임금님을 뽑는 행위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국민들도 대통령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화근”이라고 말한다. 박 전 대통령도 최순실씨에게 장관 추천을 하라 하고, 미르재단 등을 만들어 돈을 챙겨준 게 뭐 이상하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탄핵은 1789년 프랑스혁명 때 왕을 단두대에 매단 것처럼 국민 정신에 있어 트라우마다. 프랑스는 혁명 후 처리를 잘못해 오늘날까지 한 번도 독일을 이겨보지 못했다. 한국은 전후(戰後) 대략 2000년까지는 세계 최우등생이었으나, 지금은 열등생 조짐이 보이는 나라다. 외교관들도 요즘 한국 관리를 대하는 상대 국가의 태도에서 역력하게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한국이 탄핵의 원인이었던 나쁜 병들을 치유하고 업그레이드하는지 세계는 주목할 것이다. 사드 보복을 가하는 중국, 위안부 문제로 한국을 뭉개려는 일본은 특히 예의주시할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면 한국은 낙오한다. 최우선 과제는 촛불과 태극기를 놓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박근혜에 대한 구속수사니 뭐니 하는 문제로 광장을 계속 채우면 한국의 장래는 암담하다. 이제 2개월 내로 새 대통령을 뽑는다. 주자(走者)들은 더 이상 광장을 정치의 탐욕 장소로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탄핵 원죄의 싹을 제도적으로 뽑아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 개헌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전히 수술하는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했는데, 인식부족이란 느낌이다. 한국의 저명한 법조인·헌법재판관 출신에게 모두 확인했다. 다만 국민이 대통령제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니 ‘힘을 뺀 대통령+실세총리’ 제도가 답이라는 것이다. 독일·오스트리아 대통령 모형이 가장 좋다고 한다. 대통령의 왕관은 내려놓되 법률안거부권·헌법기관장 임명권에다 국방·외교 정도의 권한만 주고, 나머지는 실세총리에게 주는 방식이다. 이른바 이원집정부제다. 이 개헌을 차기 3년 내 못해 내면 한국은 선진국으로 못 가고, 또 10년 내 두 번째의 탄핵 사태가 나올지도 모른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