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에 숨겨진 진실, 김남길은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1 14:35
  • 호수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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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업체에 맡겨진 원전 안전…피폭·사고 위험에 노출된 외주업체 직원들

 

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를 주제로 한 영화 《판도라》. 규모 6.1의 강진이 발생하자 노후 원전인 ‘한별발전소’가 타격을 받는다. 원전 관리에 소홀했고, 결국 초유의 재난 사고로 이어진다. 제대로 된 대응 매뉴얼을 갖추지 않은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방사능 유출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된다. 도로는 피난 가려는 인파로 아수라장이 됐고,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인근 마을에 살며 원전에서 일하던 현장 노동자들은 이미 방사능에 피폭됐음을 느끼고 2차 폭발을 막기 위해 원전에 다시 들어간다. 절망의 순간, 목숨을 내놓고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감동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영화 《판도라》는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예상 밖 흥행을 거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한 데다 경주 지진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력 정치인들도 영화를 단체로 관람한 뒤 탈핵과 국민안전 등의 목소리를 내놨다. 그만큼 이 영화가 주는 경고의 메시지는 국민들 사이에 울림을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감 있게 가상의 현실을 그렸다는 이 영화에 한 가지 진실이 숨겨져 있다. 바로 방사선 안전관리 업무가 대부분 협력업체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원전 내부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대부분 영화 속 ‘대한수력원자력’ 소속이 아니라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점에 관객들은 미처 집중하지 못했다. 주인공 재혁(김남길 분)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다를까. 방사선 안전관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집중 추적해 봤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방사선 관리구역 작업, 방사성폐기물 처리 등의 업무를 협력업체에 맡기고 있다. 사진은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 NEW

‘방사선 관리구역 무단이탈 사건’의 이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선 한 영상이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전남 영광군 한빛원전에서 방사선 안전관리원이 관리구역을 거리낌 없이 무단으로 이탈하는 영상이었다. 당시에는 한 근로자의 단순한 출입절차 위반으로 여겨졌지만, 그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원전 안전관리의 허점이 드러났다.

 

원전은 국가보안시설에 해당한다.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특히 방사선 관리구역은 방사선 피폭 등의 위험으로 인해 더욱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그런데 방사선 관리구역에서 한 근무자가 출입게이트를 넘어 밖으로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국감 당시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용역회사 직원이 (게이트를) 무단으로 넘어오기도 하고 계측기를 들고 나오기도 한다”며 “보고서를 남겨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후속조치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조석 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은 “경미한 사항”이라며 “보고서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이 과정에서 방사선 관리구역 출입절차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 의원은 “현장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무단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기록도 남아 있지 않고 위반 이후에 어떻게 조치됐는지 그 과정도 남아 있지 않다면 국민들이 안전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문제는 한수원 측의 입장이었다. 한수원 측은 당시 “용역업체 인력 관리나 근무 현황 등은 용역업체가 자체적으로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조석 전 사장은 “외부용역을 주다 보니까 근로감독 문제 등과 같이 맞물려 여러 문제가 있다”며 “재발 방지 노력을 하겠다”고 답변했다.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치부되고 한수원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황이었다.

 

2016년 11월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으로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오른쪽)이 취임했다. 이 사장은 “국내 원전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현장 작업자 자격 조건 파악 어려워

 

실제로 한수원은 원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관리가 용이하고 반복적인 업무에 한해 전문업체에 위탁·관리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그럴까. 한 원전의 방사선 안전관리 업무를 위탁받은 S업체의 구인공고를 확인한 결과, 이들의 업무는 방사선 안전 업무 전반에 걸쳐 있었다. △방사선 관리구역 출입 및 작업관리 △보전구역 방사선(능) 측정 △방사선 관리구역 제염 △방사성폐기물 처리 △고체 방사성폐기물 처분업무 등을 맡고 있었다. 사실상 원전 운영에 관한 모든 현장 업무가 외부업체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특히 한수원의 사내하도급 인력은 2014년 이후 갑자기 증가했다. 한수원 경영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수원 소속 외 인력은 2011년 8711명에서 2016년 1만1769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사내하도급 인력은 2013년까지는 전혀 없었지만, 2014년 4503명, 2015년 4611명, 2016년 5080명으로 증가했다. 용역업체 직원 수도 2011년 936명에서 2016년 1795명으로 급증했다.

 

김경수 의원은 “처음에는 단순 청소업무만 용역업체에 맡기다가 원전의 경제성 등을 평가하게 되니까 용역 가능한 업무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며 “실제 피폭량을 계측하고 측정하고 제염 작업 등 어찌 보면 위험하기도 하고 숙련도가 필요한 업무들까지도 전부 용역이 가능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용역업체에 맡겼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용역업체 직원들의 자격 기준을 확인해 봤다. 한수원과 용역업체 측은 책임을 떠넘겼다. 한 용역업체 관계자는 발주처인 한수원에서 자격기준 등을 검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한수원 측은 협력사에서 자격 조건이나 학력 조건 등을 요건에 맞게 채용하고 관리한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한 원전의 방사선 안전관리 용역업체의 경우 직원 가운데 원자력 기사 자격증 소유자는 단 4명에 불과했다.

 

원전 협력업체에서 일했던 한 근로자는 “현재 공업고등학교나 원자력공학과 같은 전문학과를 졸업한 자에 대해선 무조건 채용이 된다”며 “자격증은 필수 조건이 아니지만 월급을 받을 때 자격수당을 조금 더 받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 용역업체의 신입직원 초임 연봉은 2500만원 수준이었다. 여기에 방사선취급감독자면허(SRI)나 방사선기술사 자격증이 있는 경우 월 30만원, 산업기사나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이 있는 경우 월 5만원 정도를 더 주는 수준에 불과했다.

 

특정한 자격이 없어도 원전에서 일하는 길은 열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존 협력업체 간부들이 주변인들을 많이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특정한 자격이 없어도 원전에서 일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원전 근무자 가운데 지역 주민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70% 이상 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방사선이 샜을 경우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등의 업무에도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일단 입사한 뒤 경력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자격을 취득하는 구조로 돼 있다.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자가 1년 이상 해당 전문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면 초급 숙련기술자가 된다. 3년이 지나면 초급 기술자, 12년이 되면 중급, 15년이 되면 고급 기술자까지 등급이 상향된다.

 


원전 내 안전사고, 대부분 협력업체에서 발생

 

물론 방사선 안전관리원이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거나 관련 자격증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 안전과 직결돼 있는 업무니만큼 합리적인 자격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는 분명히 짚어볼 대목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업무마다 특성과 자격 요건이 다르지만 몇 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기만 하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 사람들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느냐가 문제”라고 밝혔다.

 

실제로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외주업체 직원에게 발생한 사고가 현저히 많았다. 윤종오 의원(무소속)이 2014년부터 2017년 2월까지 원전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고를 분석한 결과, 전체 96건 가운데 한수원 직원 13명, 협력업체 직원 83명이 사고를 당했다. 이 중 사고로 사망한 직원 7명은 전부 협력사 직원이었다. 한빛5호기에서 2명(2014년 1월6일), 월성3호기에서 1명(2014년 9월27일), 신고리3호기에서 3명(2014년 12월26일), 섬진강 수력발전소에서 1명(2016년 1월19일)이 목숨을 잃었다.

 

한빛5호기 사고의 경우 한전KPS 잠수원 1명이 수심 5m에서 수문 열기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그러자 하청업체 직원이었던 보조원이 산소마스크를 쓰고 들어갔지만 실종됐다. 나중에 들어간 보조원은 수영도 못하고 산소마스크도 써본 적이 없었다. 사고 당시 안전관리자는 현장에 없었고, 현장에 있던 정규직 직원들은 사고가 발생했어도 작업반장이나 소방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했다.

 

원전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방사선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원전 내 방사선 작업 노동자의 피폭량은 원청인 한수원 직원보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10배 이상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원청과 하청 평균 피폭량 비교에서는 한수원이 0.11mSv인 것에 비해 ○○중공업, ○○KPS 등 협력업체 평균은 각각 1.61mSv, 1.57mSv 등 15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2015년 1.13mSv, 1.34mSv 보다 격차가 더 커진 셈이다. 한수원 등은 방사선 작업 종사자 법적 선량한도가 연간 50mSv, 5년간 100mSv로 기준보다 낮다는 입장이지만, 일반인 연간 한도인 1mSv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2016년 핵발전소 방사선 작업 노동자 1인당 평균 피폭량은 0.76mSv로, 2015년 0.59mSv에서 약 0.17mSv 높아졌다.

 

외주화 이후 사고 대처는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그동안 지진이 발생해 원전 사고 위험이 높아졌던 순간의 대처를 보면 이를 파악할 수 있다. 지난해 7월5일 울산 해상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직원 비상연락망을 통해 위험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이 비상연락망에 외주업체 직원들은 빠져 있었다.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한 9월12일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월성과 한울 원전에서 수처리 업무를 하는 직원들에게만 문자가 전달됐다. 그 외 경비, 청소, 경정비 업무를 하는 직원들에게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고리원전에선 수처리 업무를 하는 외부업체 직원들에게도 문자가 전달되지 않았다.

 

 

‘위험 경고’ 외면하는 한수원

 

17·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승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원전에서 방사선 관리 업무를 용역업체 근로자에게 맡기면 근로감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데다 안전 매뉴얼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며 “핵심적인 업무를 경제성을 앞세워 용역업체에 맡기는 위험의 외주화는 국민 안전을 담보로 돈을 벌겠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김종훈 의원(무소속)은 “원자력발전소 업무는 대부분 국민 안전과 밀접하게 결합돼 있지만 한수원은 안전 업무의 기준도 없이 무분별하게 발전소 내의 경비, 정비, 수처리 등 운전과 관련된 업무까지 효율화라는 명분으로 외주화를 진행해 왔다”며 “한수원은 당장 사고 대응에서 외주업체 직원들과의 공동대응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운전 등 안전 업무부터 직고용 체계로 전환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한수원은 발전소를 건설하고 전기를 만드는 일을 주업무로 여기기 때문에 안전관리 업무를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며 “방사선이 샜을 때 오염물질을 제거하거나 방사성 물질을 처리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국민 안전과 직결된 일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한수원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주형환 장관은 원전 외주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답변한 뒤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한수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3월7일 원전안정성증진 심포지엄에서 “무엇보다 설비 및 원전 운영체계에 대한 개선이 이뤄졌다 해도 설비를 운영하는 원전 종사자의 사고 대응 능력과 안전문화에 대한 의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국민은 원자력발전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라며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까지 국내 원전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이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관섭 사장은 방사선 안전관리 업무의 외주화에 대한 대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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