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자 청산에 떨고 있는 검찰 “현대판 기축옥사(己丑獄事) 될라”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4.04 10:36
  • 호수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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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前 대통령 구속에도 웃지 못하는 검찰…김수남 검찰총장 사퇴설에서 대규모 부역자 청산설까지

 

낭떠러지까지 몰렸던 검찰이 동아줄을 잡았다. 검찰은 지난 3월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뇌물수수를 비롯한 13개 혐의를 모두 적용하는 초강수를 뒀다. 구속된 역대 전직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혐의다. 검찰이 ‘법 앞의 평등’이라는 법치주의 원칙을 바로잡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여기에다 법원이 3월31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내내 ‘권력의 시녀’라고 조롱받던 탕아가 정의의 사도로 화려하게 복귀한 듯한 모습이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에서도 성과를 낼 경우 차기 정부에서 예상되는 ‘검찰 개혁’이라는 수술대를 피할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엿보인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도 온도차는 확연하다. 당장 김수남 검찰총장은 사퇴설에 휩싸였고, 검찰 수뇌부들은 ‘우병우 사단’ ‘박근혜 정부 부역자(附逆者)’라는 꼬리표가 붙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2월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장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수남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호위무사’ 김진태 “김수남 총장 즉각 사퇴”

 

“전직 대통령이 산발한 채 포승줄에 묶여 감옥으로 가는 것을 전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가. 촛불에 줄을 대서 임기를 그렇게 보장하고 싶었느냐. 자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해 검찰권을 위임한 대통령을 부정한다는 것은 본인의 존재 근거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당장 사퇴하라.” 박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통하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김 총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 수위의 차이가 있을 뿐, 김 총장 사퇴설의 핵심 내용은 김 의원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임명권자에 대한 구속수사가 시작된 만큼 ‘도의상’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역대 검찰총장은 도의(道義)를 충실히 따랐다. 김기수 전 총장(1995년 9월~1997년 8월)은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를 구속기소한 뒤 자진사퇴했다. 이명재 전 총장(2002년 1~11월)은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의 세 아들이 연루된 이른바 ‘홍삼트리오’ 수사를 마지막으로 옷을 벗었다. 임채진 전 총장(2007년 11월~2009년 6월)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자신을 임명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 중 서거하자 총장직을 사퇴했다.

 

특히 김수남 총장은 자신을 검찰 수장에 앉힌 대통령을 구속한 첫 검찰총장이 됐다. 김 총장은 박근혜 정부 초기 고검장 승진에서 탈락하면서 옷을 벗어야 하는 위기까지 몰렸지만, 수원지검장으로 재직할 때 이석기 옛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지휘하며 ‘역전 만루홈런’을 쳤다. 이 사건 이후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차장을 거쳐 검찰총장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대검 관계자는 “이석기 사건으로 김 총장이 박 전 대통령의 수첩에 이름을 올렸다는 말까지 돌았다”면서 “임명권자에 대한 ‘도의’ 때문에 검찰총장이 옷을 벗어야 한다면 김 총장은 말할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김 총장 사퇴설의 또 다른 이유에 있다. “김 총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검찰을 지휘한 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은 청와대의 가이드라인, ‘원칙’은 고무줄 수사로 보인다. 그 결과, 김수남 총장 치하의 검찰 신뢰도는 지하까지 떨어졌다.” 부장검사 출신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와 같은 지적은 검찰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선 가운데 하나다. 즉 검찰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사에서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보여왔던 ‘정치검찰’의 모습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수남 검찰총장과 공안부장들이 3월17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조기 대선 대비 전국공안부장검사회의에 참석했다. © 연합뉴스

대대적 부역자 색출작업 우려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공무원이다. 임명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대통령이 임명권을 틀어쥐고 있다. 현재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가 독주를 하고 있다. 정권이 교체될 경우 ‘부역자 청산’은 차기정권 초기 최대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검찰이 제1순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요즘 기축옥사(己丑獄事)를 다시금 들여다보고 있다.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오고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 한 검찰 고위간부의 하소연이다. 기축옥사란 1589년(선조 22년) 정여립의 역모를 빌미로 서인에 의해 동인이 대거 숙청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조선시대 최대 규모인 1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동인은 몰락했으며 전라도는 반역향(反逆鄕)이라는 오명을 쓰고 인재등용에서도 불이익을 받아야만 했다. 당시 역모의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며, 정여립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은 전부 희생됐다.

 

향후 다가올 검찰 내 부역자 색출작업이 기축옥사와 같은 대대적이고 무차별적인 숙청작업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검찰 간부는 “기축옥사 당시 ‘정치’와 무관한 주변 인물들까지 휩쓸려 들어가 희생됐다”면서 “검찰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다수의 검사들은 정치권과 무관하며, 검찰 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알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부역자라는 꼬리표는 사직서와 다른 의미가 아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면책특권을 내세워 공공연하게 ‘우병우 사단’ 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이는 성실히 공직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검찰 비리를 다룬 영화 《더 킹》은 대선 때마다 권력의 편에 서려고 발버둥치는 검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특정 후보가 낙선하기를 바라며 굿을 벌이는 장면까지 나온다. 현실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검찰의 권력에 대한 해바라기 속성을 고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임명권을 폐지하고 선출제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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