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목줄 쥐고 ‘핑퐁게임’만 벌이는 국민연금․산은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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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우 ‘빅2’만 남기고 대우조선 청산될 수도

국민연금과 산업은행의 ‘기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이자 채권단 대표다. 국민연금은 산업은행의 최대 사채권자다. 현재 대우조선이 발행한 전체 채권액 1조3500억원 중 30%에 육박하는 3887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대우조선 회생을 위해서는 두 기관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서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핑퐁게임’만 벌이고 있다는 비난이 대우조선 안팎에서 일고 있다. 그러는 사이 수조원의 국민 혈세가 들어간 대우조선 회생 문제는 더욱 안개 속에 휩싸였다. 

  

최악의 경우 조선업계 ‘빅2’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만 남고 대우조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최종 파산하면 적게는 17조원, 많게는 59조원에 이르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갈 길은 바쁜데 채권단 대표와 사채권을 가진 기관은 기싸움만 벌이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21일 만기 돌아오는 회사채 4400억원 처리 주목

 

21일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4400억원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우선 주목된다. 21일 이전에 국민연금을 포함한 사채권자들이 회생 동의안에 도장을 찍어야 대우조선 역시 한숨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3월23일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방안을 확정했다. 여기에 맞춰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월급 전액 반납’을 선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우조선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살아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대우조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국민연금과 산은 역시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9일 산은의 추가 감자를 포함한 네 가지 조건을 요구했지만 산은이 거절했다. 대신 만기 유예 회사채 우선 상환하는 등 수정 제안을 10일 국민연금 측에 역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이 수정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양측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심지어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에 대한 직접 실사를 요구하며 산은을 압박했다. 정용석 산은 부행장이 10일 국민연금 본사가 있는 전라북도 전주로 직접 내려가 협상을 벌였지만 서로간의 입장치만 확인해야 했다. 

 

국민연금은 11일 A4 3장 분량의 입장 자료를 내고 “충분치 않은 자료를 근거로 손실(채무조정안 수용)을 떠안으라는 산은의 제의는 적절치 않다”며 “특정 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감내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곧바로 산은의 반격이 시작됐다. 산은 측은 반박 자료를 통해 “채무조정안과 관련된 자료를 충분히 국민연금 측에 제공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나온 국민연금의 재실사 추진 요구는 현실성이 없다”고 맞받았다. 정부는 오늘(12일) 유일호 경제부총리 주재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해법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현재 두 기관이 처한 상황도 대우조선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4월3일부터 4주 일정으로 산은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재무건전성과 여신리스크 관리, 신용평가 적정성 문제 등이 주요 검사 테마다. 대우조선 문제를 잘못 처리할 경우 금융당국으로부터 표적이 될 수 있는 만큼 산은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전직 기금윤용본부장이 최근 검찰에 구속됐다. 비난 여론이 확산되면서 국민연금 역시 특검으로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산은 측의 요구를 그냥 받아들일 경우 또 다시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대우조선이 사실상의 법정관리인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P플랜은 일반 법정관리와 달리 회사 정상화를 목적으로 한다. 일반 법정관리에 돌입하게 되면 채권은행들이 자금 지원을 중단하게 된다. 하지만 P플랜은 자금지원을 계속할 수 있다. 채권 보유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는 것이 조건이다. 지금처럼 국민연금의 반대가 계속될 경우 P플랜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 이 경우 대우조선은 청산 절차를 밟게 된다.  


P플랜 선택시 손실 규모 1조원 이상 높아져

 

물론 금융권 일각에서는 다른 얘기도 나온다. P플랜을 선택하는 순간 양쪽 모두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때문에 진통은 있겠지만 결국에는 두 기관이 합의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 실사를 맡은 삼성회계법인 자료에 따르면 P플랜 선택시 전체 채권액 7조7362억원 중 4조3815억원이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회수율은 43.4%에 그친다. 

 

반면 채무재조정을 선택하면 손실 규모는 3조1478억원(회수율 53.2%)으로 높아진다. P플랜을 선택하는 순간 1조원 이상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외 신인도 악화에 따른 수주 취소가 이어지면서 채권 회수율은 더욱 낮아질 수 있다. 국민연금이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P플랜을 선택하겠느냐는 것이 금융권 일각의 시각이다. 자칫하면 배임 시비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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