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 30대 후계자 위한 ‘지주사 전환’과 ‘인적분할’ 논란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3 14:19
  • 호수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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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10) 현대중공업그룹] 후계자 정기선 전무 해외영업 총괄…실적 악화로 인한 노사갈등 커져

 

한때 세계 최고의 조선(造船) 기업으로 평가받던 현대중공업은 현재 경영 위기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회사 안팎에서는 지금의 불황이 일시적이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내 갈등은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2월23일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994년 이후 23년 만에 전면파업을 단행했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경영수지 악화가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그것으로만 모든 걸 설명할 순 없다. 현대중공업의 한 현장직 간부는 “3조원가량 흑자를 냈을 때도 사측의 임금 동결 요구를 받아들였는데, 이제 와서 대우조선해양과 비교하며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회사의 처사에 너무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현대중공업 안팎에서는 이러한 노사갈등에 대해 “곪았던 내부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다”고 지적한다.

 

노사갈등은 2월27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표면화됐다. 이날 임시주총에 올라온 주요 안건은 ‘인적분할’이었다. 인적분할 후 구조조정을 우려하며 노조가 강하게 반발했지만, 해당 안건은 원안대로 가결 처리됐다.

 

2016년 6월13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서 열린 15만9000t급 원유운반선 2척 명명식에서 스타브로스 리바노스, 조지 리바노스 선엔터프라이즈 회장, 정기선 전무,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왼쪽부터)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 뉴시스

 

지주사 현대로보틱스, 그룹 핵심으로 급부상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적분할은 그동안 일부 주주들이 꾸준하게 요구했던 바였다. 덩치는 큰 반면, 실적은 좋지 못해서다. 올 초 발표된 매출액 가이던스(guidance)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별도기준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1% 감소한 15조원, 현대미포조선은 34.3% 줄어든 2조30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위험요소가 많이 반영된 탓에 보수적으로 나왔다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인적분할은 지배구조 변화와 실적개선을 위한 다목적 포석으로 봐야 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에 있어서 핵심 과제는 순환출자 고리를 어떻게 끊느냐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외견상으로 보면,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전 새누리당 의원)이 최대주주 역할만 할 뿐, 실질적인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책임지는 구조다. 국내 10대 그룹 중에서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된 곳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유일하다. 하지만 정 이사장의 장남이 현재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완전한 분리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적분할 이전까지 현대중공업은 현대삼호중공업을, 현대삼호중공업은 현대미포조선을, 현대미포조선은 다시 현대중공업을 보유하고 있었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최대주주가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7.98%를 매입하면 된다. 하지만 수천억원의 금액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때문에 대안으로 나온 것이 하나의 회사를 여러 개로 쪼갠 뒤, 지주회사 아래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이다.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이 2월 임시주총에서 통과되면서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는 한결 단출하게 됐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전기전자), 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현대로보틱스(로봇 및 투자)로 나뉘고, 존속법인인 현대중공업은 조선·해양과 기타사업 부문을 맡는다. 그린에너지와 서비스 부문은 현물출자 방식으로 분사한 뒤, 그린에너지는 존속회사인 현대중공업의 자회사로, 서비스 부문은 현대로보틱스 아래로 들어간다. 아울러 현대중공업그룹의 알짜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는 현대로보틱스 아래로 들어가며 현대중공업 자사주(지분 13.37%)와 현대오일뱅크가 가진 차입금 2조원도 현대로보틱스로 넘어간다. 사실상 현대로보틱스가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지주사로 변신하는 것이다. 신설된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현대건설기계·현대로보틱스는 1993~94년 현대중공업으로 합쳐진 현대중전기·현대중장비산업·현대로봇사업이 다시 나뉘는 것으로 보면 된다. 현대중공업은 인적분할에 대해 “당시에는 사업 규모가 크지 않아 현대중공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타당해 보였지만, 이제는 각 사업의 규모 증대와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 보다 더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독립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자사주 마법’ 막기 전 지주사 전환 서둘러

 

주식시장의 평가는 우호적이다. 임시주총에서 ISS(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로서 미국 금융사인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의 자회사)를 비롯해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은 주주들의 이익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며 찬성 의견을 냈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던 서스틴베스트도 최근 “분할 신설회사의 정관상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되는 조항만 개선된다면 합병 자체에 문제는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이번 인적분할을 최대주주의 경영권 승계를 쉽게 하기 위한 꼼수로 보는 시각도 있다. 관전 포인트는 지주사가 될 현대로보틱스다. 참여연대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인적분할은 정몽준 이사장이 자사주를 이용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쓰일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분할 전까지 최대주주인 정 이사장이 현대중공업 지분 10.15%를, 국민연금이 8.11%를, 사촌회사인 KCC가 7.01%를 각각 확보하고 있었다.

 

현대중공업이 분할되면 정 이사장의 지분은 각 회사에 10.15%씩 동일하게 나눠진다. 현대로보틱스가 지주사가 되면 13.37%에 달하는 현대중공업의 자사주는 현대로보틱스 소유로 바뀐다. 상법 제369조에 따라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적분할 후 지주사가 되면 현대로보틱스는 자사주 비율만큼 신주를 배정받는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라고 불리는 과정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국회에는 자사주의 마법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재계는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주요 대기업이 대선 후 ‘재벌개혁’이 화두가 될 것에 대비해 인적분할 및 지주사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고 본다. 한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자사주는 일종의 배당과 같은 것으로 소위 주주이익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인데, 본래 취지와 달리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공적인 인적분할을 위해서는 현대로보틱스의 성공적인 지주사 전환이 뒷받침돼야 한다. 최대주주는 현대로보틱스의 지분만 확보하면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손에 쥐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로보틱스 지분을 최대주주에게 넘기는 대신, 최대주주가 보유한 현대중공업·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현대건설기계 지분을 넘겨받는 방식이 유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대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주식을 지주회사에 현물 출자할 경우, 지분율을 최대 33.45%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다. 주로 노조 쪽의 시각이다. 그러면서 노조는 현대로보틱스가 유상증자 과정을 거치면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최대 43.60%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구조 변화의 밑바탕에는 경영권 승계가 깔려 있다고 본다. 박기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은 “지금 상황에서 정기선 전무가 부친(정몽준 이사장)의 지분을 물려받을 경우 50%를 증여세로 내면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지만, 지주회사 지분을 40%까지 올려놓으면 안정적인 지배 체제 구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중공업에서 정기선 전무(36)는 기획실 부실장과 선박영업 부문장을 맡고 있다. 정 전무는 2009년 1월 재무팀 대리로 입사한 뒤, 그해 8월 유학을 떠났다. 2013년 6월 부장으로 재입사한 뒤, 3년여 만에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나이로만 치면 10대 그룹 가운데 최연소다. 현재 정 전무는 현대중공업 주식을 617주 보유하고 있어 지분 승계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경영권을 넘겨받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재로선 어떤 식으로 지분 매입에 나설지가 관심거리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얼마나 사느냐가 아니라, 지분 매입 그 자체다.

 

정 전무는 최근 수주 관련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당시 현대중공업은 관련 프로젝트에 대해 정 전무가 주도한 첫 해외사업이라고 홍보했다. 지난해에는 선박 명명식에도 참석했다. 또 그해 11월에는 일본·유럽·중국·한국·미국(JECKU) 5개 국가의 조선 기업 대표자회의에, 올 4월초에는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국제 가스산업 컨퍼런스·전시회 ‘가스텍(Gastec)’에 회사 대표로 참석했다.

 

하지만 사내에는 정 전무의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한 현장직 직원은 “해마다 직원들과 주요 경영진이 참석하는 안전결의대회에 한 번도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면서 “현장보다 해외 영업과 같은 대외적인 활동에 주력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조선업은 사업의 특성상 오랜 영업 노하우가 필요한데, 최근 진행된 마케팅 활동이 30대 중반의 정 전무 작품이라고 누가 생각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고위직 출신 인사도 “현대중공업은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으면 기업 경영이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정 전무가 기술파트보다는 영업파트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공익재단 주식 출연도 경영권 승계용?

 

그룹 지배구조와 관련해 주목받는 또 다른 곳은 공익재단인 아산나눔재단이다. 현재 아산나눔재단은 0.65%의 현대중공업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은 청년역량강화·창업지원·취약계층지원 등의 목적으로 2011년 10월 설립됐다. 이사장은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 사무국장은 정몽준 이사장의 큰딸인 정남이(35)씨가 맡고 있다. 재단 운영이 사실상 정 사무국장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2011년 당시 아산나눔재단은 정 이사장과 현대중공업그룹이 5000억원을 출연해 큰 화제를 모았다.

 

2015년 회계연도 기준 아산나눔재단의 결산보고서를 보면, 정 이사장은 2000억원 전액을 주식으로 출연했다. 현금은 현대중공업이 1530억원, 현대삼호중공업이 340억원, 현대미포조선이 240억원, 현대오일뱅크가 220억원 등 주로 회사가 냈다. 범(汎)현대가(家)에서도 대부분 현금으로 재단에 출연한 가운데, 친형인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만 주식 98억원어치를 출연금 명목으로 냈다. 최대주주가 공익법인에 주식으로 납부한 것은 절세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행 세법에서는 5% 이하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공익재단의 경우 상속·증여세를 면제받는다. 운영 수익의 80%를 공익목적사업에 사용하는 성실공익재단의 경우 최대 10% 지분까지 비과세를 적용받는다. 따라서 재단 이사장이 정기선 전무로 바뀔 경우 현재까지 낸 정 이사장의 지분은 양도 시 모두 비과세된다. 한 대형 법인 소속 회계사는 “회사는 현금으로 운영자금을 대도록 하고 최대주주는 주식으로 출연한 것은 나중에 있을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2월27일 울산시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에서는 인적분할 등의 안건이 처리됐다. © 연합뉴스

이 공익재단의 2015년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230억원이다. 같은 기간 건물 임대료와 금융상품 이자 및 주식 배당 수익이 포함된 총 수입은 132억원이었다. 이 중 고유목적사업으로 쓴 돈은 관리비를 포함해 74억원이다. 순수목적사업비에 쓴 돈은 66억원으로, 금융상품 투자에 따른 이자 수입(68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써야 할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한 해 전에도 이 재단은 목적사업비로 책정해 놓고 다 쓰지 못한 돈이 113억원에 달했다. 물론 목적사용 용도로 준비한 돈을 당해 연도에 쓰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설립 본연의 목적에 맞도록 정해진 예산의 80%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 현재 아산나눔재단은 2015년도 미(未)사용금액 57억원까지 포함하면 180억원의 예산이 정해진 용도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아산나눔재단에 토지 342억1500만원, 건물 69억5000만원 등 411억6500만원 상당의 부동산을 매각했다. 이 중 토지는 41억7300만원의 손익, 건물은 14억4900만원의 손실을 봤다. 한 세무 업계 관계자는 “최대 출연자와 관련한 회사 자산을 공익재단을 활용해 현금화했다는 점은 비판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해당 부동산 매각 건은 주채권은행에 제출한 3조5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에 포함된 내용으로 재무구조 건전성 강화를 위한 비핵심 자산 매각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자녀 넷 중 셋째만 결혼…막내는 SNS에서 구설 오르기도

 

현대중공업그룹의 최대주주는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다. 정 이사장은 1975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88년 무소속으로 13대 국회에 입성하기 전까지 회사 대표를 지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대표까지 지낸 정 이사장은 2014년 6·4 지방선거에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했다.

 


정 이사장은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인 김영명씨와 결혼해 슬하에 2남2녀를 뒀다. 장남인 정기선 전무는 대일외고·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학군단(ROTC) 43기로 임관했다. 현대중공업 입사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밟았다. 졸업 후에는 잠시 다국적 컨설팅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지사에서 근무했다. 아직 미혼이다.

 

큰딸 정남이씨는 연세대 철학과와 미국 남가주대(USC) 음대를 나와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슬론스쿨)을 졸업했다. 현재는 아산나눔재단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재단에 들어오기 전에는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를 다녔다. 둘째 딸인 선이(32)씨는 형제 중 유일한 기혼자다. 미국 MIT 건축과에서 공부하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사위 백종현씨는 미국에서 건축사무소를 다니고 있다. 막내 정예선(22)씨는 바로 위 누나와 10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다. 연세대 철학과에 재학 중이다. 정 이사장이 2014년 서울시장 예비후보였을 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자신의 SNS에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나”라는 글을 올려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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