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전, 향에 먼저 취해버린 봄냉이
  • 김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4 10:27
  • 호수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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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시사미식] 4월이 되면 내장과 뇌가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냉이에 대한 추억

 

4월이다. 제대로 된 봄은 사실 3월이 아니라 4월부터다. 그래선지 다른 달에 비해 바깥나들이가 부쩍 늘어난다. 만물이 남김없이 소생하며 움을 틔우고, 푸근해진다. 오랜만에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걷는다. 살결에 닿는 바람이 따뜻하니 세상이 다 따뜻해 보인다. 곱디고운 꽃들과 함께 나물도 고개를 쳐든다. 봄을 상징하는 대명사는 아무래도 냉이다. 이 녀석은 열을 받으면 향을 한껏 뿜어낸다.

 

가만있자, 4년 전인가? 아니면 5년 전? 언제였는지는 별 상관없다. 딱 이맘때쯤이었다. 그날도 필자는 방송국 승합차에 실려 있었다. 해도 뜨기 전에 출발해 두어 시간, 충청도 어느 농가에 닿았다. 어떻게 이런 집들을 찾아내는지… 30년쯤 과거로 타임슬립(시간을 거슬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일) 한 모양새다. 형식적인 인사를 마치고 터덜터덜 부녀회 누님들을 따랐다. 여기서부터는 다 아는 내용이다. 냉이 캐는 모습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대로다. 손에는 호미가 들려지고, 땅을 헤집고, 누님들의 꾸짖음과 칭찬이 교차하고, 온몸은 흙투성이가 되고….

 

© 시사저널 최준필

냉이밥에 냉이된장찌개, 냉이전까지

 

제아무리 칼럼니스트라 해도 카메라 앞에서는 소용없다. 익숙하지 않은 노동에 내장지방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배 속에서 꿈틀거림이 감지되더니 이내 신호가 들린다. ‘꼬르륵’ 에너지가 떨어진 뇌까지 합세하며 빨리 당(糖)을 공급하라고 난리다. 머릿속은 이미 비상이 걸린 상태. 다행히 어설픈 노동은 중단되었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봄타령과 함께 본부로 복귀. 베이스캠프에 남아 있던 나머지 스태프들은 이미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재래식 부엌도 있지만 이래야 생동감이 산다는 엄포 덕에 거의 모든 촬영은 마당과 수돗가에서 이루어진다.

 

불린 쌀을 가마솥에 넣고 한소끔 끓이는 동안 냉이를 다듬는다. 음식을 망치고 싶지 않으면 뿌리와 잎이 만나는 골을 잘 손질해야 한다고 제일 몸집 큰 누님이 세 번이나 강조했다. 그 덕에 우리 집에서는 아직까지 으적으적 씹히는 냉이를 만날 수 없다. 그 많던 냉이가 정확히 4등분 되어졌다. 무슨 일인지 묻자 덩치 큰 누님이 보면 안단다. 부녀회 분들이 원래 웃음이 많은 건지, 아니면 텔레비전에서 보던 사람이 눈앞에서 혼이 나서 그런 건지, 모두들 배를 잡고 ‘까르르’다.

 

소쿠리에 담긴 녀석 중 4분의 1은 보란 듯이 밥을 짓는 솥 안으로 들어갔다. 엥? 냉이는 양념장만 만들어 먹는 줄 알았는데, 밥물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는 위에 훌훌 뿌리는 게 아닌가. 원래 인간은 고이 간직하던 상식이 무너지면 갈피를 못 잡는 법이다. 고소한 기름 향이 아니었더라면 그 시간이 꽤 길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커다란 냄비에 감자와 고기를 넣고 볶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법이라며 부녀회장님이 점잖게 나선다. 그 후로 쌀뜨물과 된장을 풀어 넣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소리에 놀라 또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달구어진 번철 위로 냉이 반죽을 한 국자 크게 뜨더니 조심스레 내려앉힌다. 차가운 반죽은 기름을 만나며 소리를 지른다. ‘치이이이익~’ 반죽 속에 갇혀 있던 공기는 기름을 데리고 하늘로 오르는 모양이다. 고소한 내가 진동을 한다. 머리가 아파진다. 스트레스 받았을 때의 두통과는 차원이 다르다. 두어 번 뒤집는 시늉을 하더니 뒤집개를 깊게 찔러 단박에 위아래를 바꿔놓는다. 노르스름한 녀석의 표면에 숨을 멎게 하는 기름이 한가득이다.

 

인간의 뇌는 칼로리가 높은 음식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순간 뇌가 꿈틀대는 게 느껴진다. 타박을 반복하던 덩치 큰 누님이 냉이전의 귀퉁이를 찢어 필자 입으로 밀어넣는다. 향보다 10배는 센 열기가 입술과 혀를 지졌다. 반사적으로 혀를 내밀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자연스레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짓궂은 누님들의 박장대소가 이어졌다. 혀를 최대한 민감하게 움직이며 깨무는데, 가장자리는 비스킷처럼 바삭대고 냉이는 보드랍게 씹힌다. 깨물수록 향이 더해진다. 목구멍으로 꿀떡 넘기고 나니 고소한 쌉싸름함이 코로 뿜어져 나온다. 기가 막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억울함도 잊고 주책맞은 내 엄지손가락은 하늘을 향해 치켜져 있었다.

 

또 다른 누님이 내 손을 끈다. 찌개 담당인 모양이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냄비 뚜껑을 열고 또 한 주먹의 냉이를 집어넣는다. 불에서 내리며 도로 뚜껑을 닫는다. 내 표정이 의아했던지 또 한 수 지도에 들어간다. “츰(처음)부터 냉이를 구(넣고) 끓이니께 향이 다 사라지는겨.” 펄펄 끓인 찌개를 불에서 내리고 냉이를 집어넣어야 아삭거림도 살고 향이 도드라진다 했다. 의심이 사라지는 데는 2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커다란 국자 한가득 찌개국물과 냉이를 건져 내게 건넨다.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을 테다 결심을 하고 입김을 불었다. 그새 스멀대던 냉이와 된장의 향이 코를 간질인다. 어질하다. 먹기도 전에 냉이된장찌개에 취해 버렸다.

 

시골된장은 결코 도시민을 배신하는 일이 없다. 갑자기 할머니·어머니·장모님, 내 주변의 어르신은 다 떠오른다. 국물이 묵직하다. 하지만 거칠지 않다. 냉이가 거드는 덕분이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된장을 냉이 녀석이 부양한다. 뜨끈한 국물이 정확히 식도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고개를 돌리는데 밥솥이 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마찰음을 내며 뚜껑이 열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김을 쐰다. 키득키득.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비벼댄다. 이게 그 유명한 가마솥 스팀 마사지일 줄이야. 김이 걷히자 부녀회장님이 야구방망이만큼 긴 주걱을 가져와 밥을 뜨기 시작한다. 새하얀 밥에 냉이가 어우러져 점묘파 작품 같은 비주얼을 선사하다. 이런 표현을 붙여도 될지 모르겠으나, 몽환스럽기까지 하다. 냉이된장찌개에 코팅이 된 밥알들은 산만했다. 이리 흩어지고 저리 흩어지고. 입안 전체를 돌았다. 깨물수록 단물이 줄줄 흐른다. 나머지 4분의 1의 냉이는 어디 갔느냐 물으니 검정 비닐 하나를 필자 손에 안겨준다. 필자의 내장과 뇌는 4월을 그리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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