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은 ‘또’ 대선캠프 출장 중!”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4 16:23
  • 호수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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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캠프 1000명, 安 캠프 800명…정치 계절마다 논란 빚는 폴리페서

 

서울에 위치한 A대학교 무용학과에 재학 중인 김주희씨(가명·23)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담당 교수 B씨로부터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문재인 후보가 무용계를 위한 공약을 냈으니 다 같이 밀어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과 학생들이 모두 포함된 단체 채팅창에 해당 메시지를 보낸 B교수는 “지금 바로 전화로 선거인단 신청한 후 인증번호를 올려 달라”고 말하며 학생 개인만이 아닌 가족들의 인증번호까지 요구했다. 김씨는 “교수님이 인증번호를 올릴 때까지 계속 재촉했고 가족이 많은데 왜 3명밖에 못했냐며 타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대학 무용학과에 비해 인증번호 수집 실적이 좋지 않다며 걱정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B교수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그룹인 ‘더불어포럼’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학교와 여의도 정가(政街)에 양다리 걸치는 폴리페서로 인한 1차적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몫이 된다. 본업인 수업 준비보다 부업인 정치 활동에 집중하는 교수들 때문에 학교마다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 일러스트 정찬동

폴리페서 역대급 규모…수업권 침해 우려

 

서울의 C대학교는 정치권에 발을 들인 교수들이 유독 많은 학교 중 하나다.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이 대학 D교수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특정 대선후보 지지에 앞장섰다. 그 과정에서 지지하는 인물이 바뀌어 ‘철새 교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D교수는 현재 학교에서 3시간짜리 강의 1개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수업 중에 정치색을 드러낸다는 말이 나올까봐 한마디 할 때마다 극도로 조심한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수업 중에 “중립적으로 말하자면…”이라든가 “특정 이념적 입장에서 말하는 게 아니다”와 같이 조심스러운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해당 수업을 듣는 3학년 이은희씨(가명·22)는 “원래 ‘진보와 보수’에 대해 논하는 수업인데 ‘진보와 진보’ ‘진보와 복지’를 논한다는 강의평이 많다”며 “언론 기사에서 교수님 이름을 볼 때마다 ‘수업 내용에도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워했다.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 ‘폴리페서(polifessor)’.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폴리페서’는 대학교수 100여 명이 대거 출마했던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대학교수들의 무분별한 정치참여를 비판하는 의미로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정치권에 선거판이 짜이면 어김없이 ‘한자리’ 차지하려는 이들의 줄서기 행렬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조기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폴리페서들의 ‘정치 활동’이 활발하다. 이에 대해 권상집 동국대 교수는 “리스크 대비 효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교수 활동을 상당부분 포기하면서 1년을 투자해야 했던 과거 대선과 달리, 이번엔 단 3~4개월만 활동해도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교수들의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실제 캠프에 참여한 주요 교수들 중 80% 이상이 휴직계를 내지 않고 교수직을 유지한 채 캠프 활동에 임하고 있다.

 

3월15일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캠프에 영입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왼쪽), 김광두 서강대 교수(가운데), 김상조 한성대 교수(오른쪽)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학교와 여의도 정가(政街)에 양다리 걸치는 폴리페서로 인한 1차적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몫이 된다. 본업인 수업 준비보다 부업인 정치 활동에 집중하는 교수들 때문에 학교마다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서울 소재 모 사립대학에 다니며 현재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한 교수의 수업을 수강 중인 조형우씨(가명·25)는 “교수님이 선거 때마다 정치에 참여해 오신 걸로 아는데 그 때문인지 수년째 수업 내용에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조씨는 “시험 문제도 매년 비슷하게 출제돼 ‘자다가 학점만 따가는 수업’으로 유명하다”고도 덧붙였다.

 

양다리 교수들의 부실한 수업 준비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휴직계를 내거나 수업을 줄이는 것이 해법이 되진 못한다.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 한 대선후보의 자문기구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아무개 교수는 안식년을 제외하고 매 학기 진행해 온 전공수업을 이번 학기에 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해당 학과 한 학생은 “열릴 줄 알았던 수업이 안 열려 화가 났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정치 참여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서울 신촌 일대 대학생들을 만나 물어본 결과, 10명 중 4명은 “정치 참여 자체가 교수 본분에 어긋난다”고 답했으며, 나머지 6명은 “교수 개인의 자유이므로 참여 자체가 문제될 건 없다”고 했다. 다만 이로 인해 수업에 소홀하거나 정치색을 강요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

 

폴리페서에 대한 학교의 시각은 학생들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서울 소재 사립대 소속의 한 교수는 “학교에선 해당 교수가 공직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면 그만큼 학교에 든든한 ‘빽’이 하나 생기는 격이기 때문에 되레 묵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 학교는 왜 보이스 파워를 가진 폴리페서가 없느냐’고 말하는 교수들도 있다”고 밝혔다.

 

 

공직 전문성 부족·조직 부적응 문제

 

폴리페서 문제는 비단 교정(校庭)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들이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한 후 발생하는 문제 또한 적지 않다. 우선 각자가 ‘개인 사업자’에 가까운 교수 생활과는 확연히 다른 조직문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이들은 주로 단계적 승진이 아니라 단번에 장·차관 등 고위직에 임명되는 경우가 많아 조직을 리드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교수 출신으로 보기 드물게 실무직을 맡아 재직 중인 강병구 국가기술표준원 표준정책국장은 “교수는 누구와 협업할 일이 거의 없고 자기 스케줄대로 주로 움직인다”면서 “기본적인 출퇴근부터 의사결정 하나하나까지 처음엔 어렵지 않은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례로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초기 청와대 수석들 상당수가 교수 출신이었는데 ‘새벽형’인 이 전 대통령 패턴에 맞추느라 꽤나 힘들어했다는 전언이다.

 

공직에 오른 교수들 중 맡은 자리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기보다 오히려 정권의 하수인 역할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종 전 문체부 차관 등 교수 출신 관료들이다. 사태 초기 이들이 소속된 학교에는 ‘교수님이 부끄럽다’ ‘복직을 반대한다’ 등의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대학교수들의 활발한 공직 진출은 우리나라 고유한 특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해외에선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다. ‘폴리페서’라는 용어 자체도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교수 출신들이 행정부 내각 요직을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다. 장관 등 고위직에 곧장 임명되는 일은 더욱 드물다. 오바마 정부에서도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을 비롯한 교수 출신 장관들이 있었지만, 이들 중 학교를 떠나자마자 장관이 된 경우는 없다. 모두 이전에 국장, 차관보 등의 자리를 단계적으로 거치며 충분한 실무 경험을 쌓는다.

 

2월23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교수·전문가들로 이뤄진 지지그룹 ‘전문가광장’ 출범식에 참석해 교수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수 사회에서도 자성 목소리 나와

 

현재 트럼프 정부에서 교수 출신을 찾기란 더더욱 어렵다.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에 참가했던 피터 나바로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유일하다. 이들이 정치권을 나와 학교로 돌아갈 때도 경력과 업적에 대한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권상집 동국대 교수는 “미국 교수들은 기본적으로 학문과 정치를 전혀 별개의 영역으로 본다”면서 “교수들도 스스로를 어드바이스해 주는 존재로 여기지, 우리나라 폴리페서처럼 정계 진출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 계절마다 폴리페서가 사회문제로 부각되다 보니 교수 사회에서도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3년 교수신문이 대학교수 6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수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 ‘교수들의 무분별한 정치 참여’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폴리페서의 학교 복귀 규정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진 학교나 정치권 어디에도 이들을 규제할 장치가 없어 폴리페서 수는 해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이번 대선만 봐도 각 후보 캠프에 참여한 폴리페서 규모는 가히 ‘역대급’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는 출범과 동시에 500명 이상의 교수들이 합류했다. 현재는 1000명을 훌쩍 넘긴 상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 교사’였던 김광두 서강대 교수와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를 도왔던 김호기 연세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캠프 산하 자문기구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 수장을 맡아 문 후보의 경제 구상을 총망라한 ‘J(제이)노믹스’를 만들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캠프 역시 800명 이상의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안 후보 개인 싱크탱크인 ‘정책 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상용 고려대 교수는 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경제 분야를 이끌고 있는 박원암 홍익대 교수는 2012년 대선 때부터 안 후보와 함께하며 당시 안 후보의 핵심 정책인 ‘혁신경제론’ 내용을 채우는 역할을 했다. 안 후보 캠프는 지난 2월 전국 교수들이 결집한 외곽조직 ‘안철수와 함께하는 전문가 광장’을 출범시켜 문 후보 측과 ‘폴리페서’ 세(勢)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중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는 대선 후 원하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여의도를 빠져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돌아갈 곳은 명확하다. 수업이 진행 중인 교수들은 그대로 하던 수업을 이어 가고, 휴직했던 교수들도 아무런 절차 없이 복직해 다음 학기를 준비하면 된다. 학교가 사실상 ‘보험’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이들의 정계 진출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막고자 19대 국회 당시 이완영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대학교수가 정무직 공무원으로 임명되는 경우 휴직이 아닌 사직을 해야 한다는 이른바 ‘폴리페서 방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 의원은 “정치 활동을 하는 교수들의 신분 공개를 의무화하고 이들이 학교로 복직할 때 보다 엄격한 제한을 두는 법안을 다시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권상집 교수는 “법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수마다 자신의 가장 기본적 역할이 개인의 명예와 영광을 높이는 일이 아닌 강의와 연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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